‘울산마저도….’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 울산 경제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울산 면적은 남한의 1.1%, 인구는 2.2%에 불과하지만 제조업 생산량은 12.8%, 수출 기여도17.2%, 수입 15.5%, 항만물동량 15.4%를 차지한다(2007년 기준). 제조업의 국가대표인 울산이 무너지면 국내 제조업의 뿌리까지 흔들리는 것이다. 지금 울산은 버틸 만큼 버텼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불황을 극복할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기로에 선 울산 경제와 민심을 직접 들어보았다.‘절단 났뿟는기라.’ 울산중소기업협회(울산중기협) 실무자는 울산 경제 현황을 묻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경상도에서 자주 쓰는 어휘인 ‘절단나다’는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울산 지역 경제 상황에 대한 그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주는 말이다.울산 제조업은 크게 3부문의 주력 산업으로 이뤄져 있다.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이다. 2007년 수출 비중은 자동차 20.5%, 석유화학 24.6%, 조선 15.6%, 기타 39.3%다. 이들 중 가장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자동차 부문이다. 현대차 측이 2009년 1분기에 30% 감산할 것이라고 밝힐 정도로 타격이 현실화됐다.현대차의 감산은 곧바로 1차, 2차, 3차 협력 업체들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차 하청 업체들이 모여 있는 달천농공단지의 한 업체는 “현대차의 2차 밴드(협력 업체)로 현대차가 텐텐(주야간조 각 10시간 근무)에서 팔팔(주야간조 각 8시간 근무)로 바뀐 뒤 우리도 ‘팔팔’로 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 등 CKD(Complete Knock Down: 현지조립생산) 물량이 80%를 넘는데 해외시장이 죽어버리니 고스란히 타격을 입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공단 주변에서 이 업체가 거의 ‘조업 중단’상태라는 얘길 들었지만 업체 측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이 업체는 판매처가 대기업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지만 그 옆 볼트·너트를 만드는 공장 등 판매처가 불특정한 곳은 불황의 영향을 고스란히 떠안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달천공단의 어려움은 공단 내 공동 식당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기 어려운 업체들의 직원들을 위한 공동 식당인 만큼 영세한 업체의 직원들이 주고객이다. 식당 주인은 “식비를 4~5개월 치 내지 못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식당도 경영난에 빠졌다. 경험상 5~6개월 치 식비를 내지 못하는 업체들은 결국 문을 닫더라”며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울산중기협 관계자는 “달천공단 78개 업체는 울산에서도 가장 영세한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식당에 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중 30%는 도산 직전으로 추정된다”며 “조선업도 현대중공업은 3년 치 일감이 밀려 있어 조업 단축은 없지만 소규모 회사는 허덕이는 곳이 많다. 현대중공업처럼 큰 업체도 신규 수주를 해야 선수금으로 운영자금을 돌리는데 수주가 안 되니까 자금 사정이 예전만 같지 않다”는 설명을 곁들였다.그는 “그중 석유화학은 나은 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SK, S-Oil, 삼성정밀 등 큰 업체들의 수출입은 아직까지는 타격이 덜한 편이다. 그러나 석유화학 제품은 장기 계약이 많기 때문에 계약 갱신을 하는 시기가 되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울산항만공사는 “액체 화물도 상반기에 불황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실제 2008년 울산항의 물동량은 전년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울산항은 액체 물류 중심 항만으로 전국 액체 화물의 35%가 이곳을 통해 이동하기 때문에 석유화학 공업의 지표가 되는 곳이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은 독자적인 부두를 보유하고 있다. 2008년 울산항만공사 소유 부두의 전체 물동량은 1억7069만 톤으로 2007년 1억6865억 톤에 비해 0.9% 증가했다. 항만공사에 따르면 “보통 3개월 단위로 계약하다 보니 11월에는 오히려 늘었다”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컨테이너 화물은 9월부터 곧장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울산항만공사에 따르면 컨테이너 화물은 전년 동기 대비로 9월에는 2.8% 하락, 10월은 4.1% 하락, 11월엔 25.9%가 하락해 불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기자가 울산항의 유일한 컨테이너 부두인 6부두를 찾은 1월 13일, 평소 같으면 하루에 3~4척의 배가 들어와 부지런히 컨테이너를 날라야 하지만 이날은 배가 한 척도 들어오지 않은 채 매서운 바닷바람만 불고 있었다. 6부두 경비원은 “어제는 한 척 들어왔는데 오늘은 한 척도 들어오지 않는다. 오늘 밤이라도 배가 들어올지 잘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건실한 중견 석유화학 업체도 불황을 비켜가진 못했다. 자동차용 윤활유 등 산업용 특수유를 생산하는 한국하우톤은 지난해만 해도 월 20억~25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우량한 회사였지만 올해 울산시가 지원하는 저리의 자금 대출 신청을 했다. 이 회사는 현대차에 매달 8억 원어치를 납품했지만 지금은 3억 원이 줄어든 5억 원만 납품하고 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납품처가 모두 물량을 줄여 전체적으로 매출액의 30%가 줄었다. 울산중기협 관계자는 “규모가 큰 업체가 이 정도면 소규모 회사들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울산공단 전체에 용수·전기·스팀을 공급하는 유일한 업체인 ‘한주’의 가동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도 제조업체의 어려움을 반영한다. 울산상공회의소 측은 “한주의 가동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전했다.타 지역에 비해 건설업의 비중이 낮은 편이기는 하지만 1월 들어 지역 건설사 4곳이 부도를 맞았다. 1월 5~6일에는 해동엔지니어링 해동건설 기린산업 휘림건설 같은 주력 업체들의 부도가 이어지면서 하도급 업체까지 연쇄 부도가 예견되는 상황이다. 울산의 미분양 규모는 약 9000가구다.자금 사정이 어려운 울산의 기업체들을 위해 울산시는 저리의 지원금을 2007년부터 풀고 있다. 2008년 1000억 원이 집행됐는데 2009년에는 1월 2일부터 1주일 만에 700억 원의 자금이 집행됐다. 구·군 단위의 지원금 150억 원을 합하면 850억 원이 지원된 것이다.3~4월에 지원될 자금을 지난해 12월부터 앞당겨 집행된 것이다. 각 업체들이 “1월에 빨리 지원하지 않으면 절단난다”고 아우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원금이 회수돼 다시 다른 업체들에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지만 지난해 지원금을 받은 업체 대부분이 상환을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도 나온다. 기업체들은 “추가 자금을 지원하든지 상환을 유예해 달라”며 시청과 유관 단체들에 민원을 쏟아내고 있다.기업체들의 불황은 그대로 울산 지역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생활경제고통지수’에서 7대 도시 중 울산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분기 울산의 고통지수가 높아진 것은 2분기 1만4000명이던 주당 근로시간 17시간 이하 취업자가 3분기에는 3만6000명으로 늘어나면서 체감 실업률이 9.7%로 치솟았기 때문이다.울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물가가 비싼 데다 제조업 하청 근로자가 많아 경기가 침체되면 체감 실업률이 높게 나타난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제 유가 하락과 경기 침체로 물가가 떨어지겠지만 실물경기 위축에 따라 일자리 증가가 정체되면서 체감 실업률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실업률도 석 달 연속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1월 15일 통계청 울산출장소가 발표한 2008년 12월 울산 고용 동향에 따르면 울산의 실업자 수는 2만5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만1000명(81.3%) 증가했다. 실업률도 4.6%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고 증가 폭도 전년 동월 대비 2%포인트로 가장 높았다. 11월과 10월도 실업률이 4.5%, 4.2%였다.12월 취업자 수는 52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6000명(1.2%) 증가했지만 11월보다 7000명(마이너스 1.2%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부 고용안정센터 울산사무소는 “울산의 실업률이 높게 나와 의외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가계가 어려워져 주부들이 대거 구직 등록을 하기 시작해 실업률이 높게 나왔다”는 해석을 내놓았다.이에 따라 실업급여 신청자 수도 크게 늘고 있다. 울산 고용안정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월평균 76명이 실업 급여를 신청했지만 12월에는 110명, 올해 1월에는 벌써 170명이 신청했다. 센터 관계자는 “실업 급여자 수는 보통 1월에 크게 증가한 뒤 낮은 수치를 보이는 L자형을 그린다. 정년퇴직자나 계약 기간 만료자들이 1월에 실업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는 11월부터 올라가기 시작한 것을 보면 기업의 폐업, 구조조정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석유화학 쪽의 일부 업체들에 소규모 구조조정이 있었고 자동차 부품 업체 중 희망 퇴직 절차가 소규모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경기의 영향에 민감한 음식업의 경우 불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울산음식업협회는 “수치상으로는 아직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공장은 부도 나면 곧바로 문을 닫지만 식당은 권리금을 받고 명의변경을 해야 정리되는 것인데, 새로 가게를 인수하려는 사람이 없다 보니 적자가 나는 상태에서도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영업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울산에 약 1만2000개의 음식점이 있는데 대다수가 매출이 30~40% 떨어졌고, 특히 현대자동차 공장 부근에는 50%까지 떨어진 곳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울산 최고 번화가인 삼산동의 한 식당 주인은 “12월까지는 괜찮았는데 1월이 되니까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단체 손님이 확실히 줄었다. 예전엔 7~8명씩 왔다면 지금은 개별적으로 2~3명씩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손님들의 예약 상황을 보면 자동차 관련 업체들이 쑥 줄어들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자동차 관련 업체들만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석유화학 쪽 손님들은 꾸준히 온다”는 설명이었다.울산 경제의 중요성은 울산이 대구·경주·부산 등의 지방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대구와 경주 같은 곳은 산업이 거의 죽은 도시라고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은 포항·울산 같은 제조업 기반의 도시들 때문”이라고 얘기한다.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울산의 ‘순이출’ 규모는 22조9130억 원이다. 울산의 지역총생산(GRDP) 46조4040억 원과 비교해 보면 지역에서 생산한 부가가치의 절반 이상이 외부로 빠져나간 것이다. 순이출이란 한 해 동안 울산에서 소비(또는 투자)됐거나 재고로 쌓인 재화와 서비스보다 빠져나간 재화와 서비스가 더 많다는 얘기다. 반대로 들어온 것이 더 많으면 순이입이다.울산의 순이출 규모는 2위인 서울(15조6630억 원)과 3위 충남(9조5920억 원)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수치다. 반면 순이입이 큰 지역은 경기도(12조6760억 원) 부산(11조4970억 원) 대구(9조4150억 원) 순이었다. 통계청은 “울산은 전국 최대 공업도시에 걸맞게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GRDP 규모가 큰 반면 인구가 적어 지역 내에서 소비되는 것보다 외부로 빠져나가는 순이출 규모가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미뤄 울산 경제가 휘청하면 영남지역 전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울산이 불황을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울산시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는 미국이 튼튼했기 때문에 수출 비중이 높은 울산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수입처가 ‘빌빌’거리고 있기 때문에 울산도 맛이 갔다. 현대차도 1분기 30% 감산 계획은 세웠지만 실질적인 1년 계획은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며 한숨을 쉬었다.울산=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