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요즘 부쩍 조바심을 내고 있다. 목적세 정비 관련 법률안이 쉽게 처리되지 않고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세목 수와 세금의 신고 납부 횟수가 경쟁국에 비해 너무 많아 기업 환경 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은 목적세의 기본인데 한국에서는 세금을 내는 이와 관련 재정의 혜택을 받는 이들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도 윤 실장은 잘 알고 있다. 한국 최고의 세제 전문가로서 평소 그는 자신이 세제실장으로 있을 때 반드시 이런 불합리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고 있다.세계은행의 ‘두잉 비즈니스(Doing business)’ 기업 환경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세제 분야에서 106위를 기록(2007년 기준)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의식해 납세 협력 비용을 절감하겠다며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농어촌특별세 등 3개 목적세를 없애거나 본세에 통합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납세자 부담은 늘어나지 않도록 하되 다른 세금에 얹는 형태의 세금(sur-tax)인 목적세를 걷어내고 본세로 단일화한다는 목표다.하지만 목적세 관련 법률안은 지난해 12월 정기국회와 1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그동안 정부는 여섯 차례의 관계 부처 회의와 공청회(2008년 7월 31일, 조세연구원)를 거쳐 목적세법 폐지 및 재원 보전 방안을 마련했지만 이 중 교통세법 폐지안만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했을 뿐 교육세 및 농특세는 그대로 계류 중이다.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반발과 주무 부처의 미온적인 태도, 여당의 입법 의지 부족 등으로 아직 없애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한나라당은 국회의장 직권 상정 방식으로 예산안과 함께 감세 법안을 일괄 처리하는 과정에서조차 목적세 개정안은 감세법안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그런데 교통세 폐지를 전제로 구성한 개별소비세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완전히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며 “교육세와 농특세 폐지 법안이 계속 계류 상태로 있으면 조세체계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내년 세입 예산을 확정하지 못해 예산 편성에도 곤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재정부가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데도 여권이 법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이를 무릅쓰고 강행 처리를 시도했다가 역풍을 맞을까 염려한다는 얘기다. 일부 시도 교육감과 교원 단체는 교육세가 본세에 통합되면 교육 재정이 줄어들까 우려된다며 교육세법 폐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 재정 비율을 6%까지 올리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목표 달성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하지만 정부는 “교육세가 본세에 통합되면서 대신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떼 주는 지방 교육 재정 교부금률을 올리게 되면 오히려 교육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특히 교육세의 경우 내국세 전체의 증가 속도(지난 8년간 평균 증가율 10.1%)가 교육세(2%)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따로 교육세를 걷는 것보다 내국세에 일정 비율로 연동하는 게 교육 재정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현재 내국 세수의 20%인 교부율을 20.5%로 올릴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교부금과 교육세를 따로 따로 받는 지금보다 교육 재정이 1000억 원가량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만약 국세분 목적세가 모두 폐지되고 현재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인 지방세 분야 목적세 정비 계획까지 완료되면 현재 30개인 세목이 20개로 단숨에 10개가 줄어들게 된다. 정부는 목적세 폐지와 관계없이 납세자는 지금까지 내던 만큼만 내면 되고 목적세에서 재원을 가져가던 곳에는 그만큼 예산 배정을 더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재원 배분을 달리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걷고 쓰는 틀만 옛것을 새것으로 갈아 끼운다는 의미다.정부 관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단체가 자꾸만 감세로 교육 재정과 농어업 분야 지원 재정을 줄이는 것처럼 선전하면서 반대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며 “하나의 세원에 덕지덕지 여러 가지 세금을 붙이는 후진적인 세제를 언제까지 계속 가져가야 하느냐”고 말했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