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사막 ③ - 여행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브라이언 트레이시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때로는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할 정도로 고통을 동반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게 태양과 모래바람뿐인 사막을 건너는 경험일 수도 있고 700km가 넘는 스페인의 ‘순례길’이 될 수도 있다. 스티브 도나휴는 20대 시절 사하라사막을 건넌 경험으로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으로 유명해졌고 브라이언 트레이시 역시 20대에 사하라사막을 횡단하고 책을 썼는데 ‘내 인생을 바꾼 스무 살 여행’이라는 제목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마흔 살 때 순례길을 다녀온 이후 ‘연금술사’를 내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섰다. 이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데 필요한 인내심과 끈기, 그리고 오만한 자아를 다스리는 절제심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같은 덕목을 체득하게 된 것일 게다.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산티아고라는 양치기 소년이 꿈에서 암시받은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보물이 있다는 이집트의 피라미드까지 갔지만 결국은 자신이 양치기할 때 잤던 성에서 보물을 찾는다는 내용. 아마도 꿈 혹은 보물은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자신 혹은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 있다는 암시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코엘료는 자주 성경의 마태복음(6:21)에 나오는 보물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산티아고는 신학교에 다니다 돌연 아버지에게 신부의 길을 포기하고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다고 말한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생활을 벗어나 아들이 집안의 자랑이 되어 주기를 바라던 아버지는 그 아들이 길을 나서겠다고 하자 이내 허락한다. 아버지는 스페인의 옛 금화 세 개가 든 주머니를 아들에게 주면서 이것으로 양들을 사서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라고 말한다. 이때 아들은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돌며 여행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 누구나 갑갑한 현실을 떠나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꿈꾸기를 갈망하는데, 이게 소설의 핵심 개념인 ‘자아의 신화’다. 누구에게나 항상 이루기를 소망해오던 것이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꺼져간다. 소년의 아버지 역시 자아의 신화가 꺼져가고 있는 경우다. 다행히 양치기 소년에게 ‘자아의 신화’가 이뤄지게 도와주는 이들로 살렘의 왕이 나온다. 꿈을 이루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조력자나 지혜로운 스승, 즉 멘토가 필요한 것이다. 인생을 살맛나게 해 주는 건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것이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꿈은 꿈속의 여인과 같이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안정된 삶은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팝콘 장수의 예가 등장한다. 팝콘 장수도 어릴 때 양치기를 하며 떠돌아다니기를 소망했지만 양치기보다는 남 보기에 근사한 팝콘 장사를 택한다. 양치기들은 별을 보며 자야 하지만 팝콘 장수는 자기 집 지붕 아래 잠들 수 있고 또 사람들도 딸을 떠돌아다니는 양치기보다는 팝콘 장수와 결혼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도 팝콘 장수처럼 2년 동안의 익숙한 것(안달루시아 평원에서 양치기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모험을 떠나기가 두렵지만 결국 모험을 선택한다.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산티아고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 말고는.안달루시아 평원을 떠나 아프리카의 탕헤르에 오게 된 산티아고는 도와주겠다고 접근한 젊은이에게 돈을 몽땅 털리게 된다. 그러자 갑자기 그 도시가 낯선 곳으로 변해버린다.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조금 전 느꼈던 절망을 털어내자 더 이상 낯선 곳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였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야말로 그가 원하던 일이었다. 그는 진정 새로운 세상을 알고 싶어 했다. 그 순간 산티아고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 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산티아고는 이내 걱정 따위는 접고 느긋하게 언덕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양들과 함께하며 배웠던 것들을 새롭게 깨치며 이 낯선 세계에 적응해 가자고 마음먹었다. 언덕에 이르자 크리스털 가게가 있었다. 산티아고는 상점 주인에게 더러운 그릇을 닦아주겠다며 접근한다. 주인은 산티아고가 온 이후 물건이 잘 팔리자 그게 ‘좋은 표지’의 신호라면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표지’의 인연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기회가 가까이 오면 우리는 그걸 이용해야 합니다. 기회가 우리를 도우려 할 때 우리도 기회를 도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은혜의 섭리’라고 하고 ‘초심자의 행운’이라고도 합니다.산티아고는 상점 바깥에도 진열대를 만들면 물건을 더 팔 수 있다고 주인에게 제안한다. 그러자 주인은 바깥에 진열하면 깨질 수 있다며 반대한다. “제가 양들과 함께 초원을 돌아다닐 땐 양들이 뱀에 물려 희생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은 양과 양치기들에겐 삶의 일부일 뿐이지요.” 산티아고의 제안대로 바깥에 물건을 진열하자 손님이 점점 많아진다.한번은 한 남자가 언덕길을 올라왔는데 목을 축일 만한 곳이 없다고 불평했다. 이에 산티아고는 크리스털 잔에 차를 팔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이 역시 성공해 가게는 더욱 번창해지고 마침내 산티아고는 이전의 양을 두 배나 사고도 남을 돈을 모은다.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생각과 실천이 행운을 불러온 것이다.1년 후 산티아고는 당초 스페인으로 돌아가 양치기를 다시 할 계획이었지만 마음을 바꾼다. 양치기는 다시 할 수 있지만 피라미드에서 보물을 찾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초 양치기를 한 이유도 세상을 많이 보고 알기 위해서였다. 양치기는 세상을 보기 위한 수단이었지 진정 자신이 원하던 꿈은 아니었던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면 미지의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그가 있는 탕헤르에서 안달루시아 평원까지는 배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보물이 있는 곳은 사하라사막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는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안달루시아 대신 방해물이 놓여 있는 사막을 택했다. 그곳을 건너면 자아의 신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꿈꾸기만을 계속하려고 한다. 크리스털 가게 주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에게도 오랜 꿈이 있다. 이슬람의 계율 중 하나인 성지 메카로 순례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은 메카로의 여행을 가고 싶지만 가지 않는다고 한다. 꿈을 이루고 난 후의 허탈감이 두렵기 때문에 꿈꾸기만을 계속하겠다는 것.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해 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진열대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저 크리스털 그릇들, 그리고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메카를 여행하는)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우리에게는 사막이 삶의 일부가 아니어서 사막은 먼 자연으로만 여겨진다. 그런데 사막을 소재로 한 책들은 오래전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사막이 우리의 삶의 일부로 들어와 ‘소비’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인생이 때로 사막과 닮아있어서일 것이다. 새해 계획에 ‘사막 여행’을 포함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타오른다. 마지막으로 사막의 속담을 음미해 보자. 한번 일어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