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어라운드 노리는 증시

‘새해 중국 증시는 최고의 이머징 마켓이 될 것이다.’ 메릴린치의 2009년 중국 증시 전망이다. 지난해 천당에서 지옥으로 추락한 상하이 증시가 올해는 반등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 증시가 얼음을 깨는 여행(破氷之旅)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올림픽 개최국 증시가 대부분 이듬해 상승세를 탄 것도 호황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올해 중국 증시가 오르더라도 2007년 10월에 찍었던 사상 최고치 6000선의 반 토막인 3000선이 상한선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지난해 12월 31일 상하이 종합지수가 1820.81에 장을 마친 것을 감안하면 제한된 상승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상승 전망은 우선 주가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에서 나온다. 상하이증시는 지난해 천당에서 지옥으로 수직 추락했다. 지난해 하락 폭은 65.39%로 18년래 최대 폭이다. 상하이 증시와 선전 증시 등 중국 양대 증시는 지난 한해 시가총액 기준으로 20조5774억 위안(4115조 원)이 증발했다. 90% 이상의 종목이 반 토막 났다. 주가 하락으로 상하이 증시의 주가수익률(PER)은 14.85배, 선전 증시는 16.72배로 낮춰졌다. PER가 2007년 10월 70배를 웃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주가가 크게 싸진 셈이다. 도쿄나 뉴욕 증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온 것이다. 템플턴자산운용의 회장 겸 수석매니저인 마크 모비우스는 지난해 11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이머징 국가 주식을) 엄청나게 싸게 매수할 수 있는 훌륭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인도 러시아는 현재 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국가는 막대한 규모의 외화보유액을 갖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외화보유액은 2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경기 부양 약발 받는다= 정부의 소나기식 경기 부양책도 증시 상승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해 12월 23일 1년짜리 대출금리를 연 5.58%에서 5.31%로 인하했다. 중국이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은 미국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보호를 신청한 지난해 9월 15일 이후 다섯 번째로 통화 팽창 정책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기간중 중국의 기준금리(1년 만기 대출금리)는 2.16%포인트 하락했다. 스위스 UBS증권의 천리 애널리스트는 중국 정부의 유동성 공급 확대로 상반기에 통화 팽창 국면으로 회귀할 경우 투자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메릴린치는 올해도 인민은행이 금리를 1%포인트 추가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금리 인하뿐만 아니다. 2010년까지 4조 위안(약 800조 원)을 풀어 경기 부양책을 펼친다는 정책 덕분에 올 하반기 중국 경제가 턴어라운드할 것이라는 관측도 호재다. 중신증권은 4조 위안의 경기 부양이 중국 경제성장률 1.9%포인트 상승 효과를 낼 것이라며 중국 경제가 U자형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광산 업체들이 생산한 금속을 사 줄 뿐만 아니라 수출 업체에는 세금도 돌려주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기계 오토바이 등 553개 제품의 수출부가세 환급률이 대폭 인상된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4번째 수출 부가가치세 환급률 인상이다. 특정 업종에 대한 지원사격도 본격화되고 있다. 항공 업종이 대표적이다. 둥팡항공은 이미 30억 위안과 40억 위안씩 두 차례에 걸쳐 70억 위안(1조4000억 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새해 초엔 9개 지주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육성책도 발표된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철강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섬유 경공업 비철금속 장비제조 전자정보 등을 9개 지주산업으로 꼽았다. 정부가 기업들의 실적 관리를 해 주는 셈이다. 올해 중국 증시에서는 경기 부양 테마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도 건축 소비재 통신 등이 유망 업종으로 꼽히는 것도 경기 부양과 연관돼 있다. 중국 증시에서 올해 뚜렷이 부각될 테마는 인수·합병(M&A)이다. 중국 정부는 9개 지주산업의 육성 원칙 중 하나로 M&A를 내세웠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경제 위기의 돌파구 중 하나로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M&A를 꼽고 있다. 리룽룽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주임(장관)은 최근 국유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가진 올해 정책운용회의에서 “국유기업의 통폐합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현재 143개사인 중앙 정부 소유 국유기업을 2010년까지 80~100개사로 줄이고 이 가운데 30~50개를 국제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으로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중국은 이미 지난해 6개 통신 사업자를 3개사로 통폐합하고 2개 항공기 생산 업체를 합쳐 보잉 에어버스와 경쟁할 중형 항공기 업체인 중국항공공업그룹을 탄생시키는 등 기업 덩치 키우기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발개위는 특히 내년에 집중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할 대상으로 철강 자동차와 함께 석탄 전력 시멘트를 꼽았다. 전력의 경우 화넝 다탕 궈뎬 화뎬 중뎬 등 5대 전력회사를 3개로 통폐합할 것이라는 설이 돌고 있다. 이들 5대 전력 회사가 지난해 초부터 10월까지 268억 위안(5조3600억 원)의 손실을 내는 등 실적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궈뎬이 최근 닝샤잉리터전력 지분 51%를 인수하는 등 이미 중소 규모의 M&A는 시작됐다.중국 정부가 지난해 12년 만에 은행의 M&A 대출을 허용한 것도 M&A 테마주 바람이 불 것을 예고한다. 인민은행은 1996년 이후 은행의 M&A 대출을 금지했지만 최근 국무원(중앙정부)이 이를 허용했다. 이에 따라 은행감독관리위원회는 ‘M&A 대출 리스크 관리 지침’을 공포했다. 이번 조치로 중국 M&A 시장에 유입될 은행 대출 규모는 3000억 위안(약 6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증권시보가 보도했다. 물론 중국 증시에도 올해 악재가 있다. 우선 실적 리스크다. 1분기 중 두 가지 중요한 실적 발표가 예정돼 있다. 하나는 중국 경제의 지난해 성적표다. 경제성장률이 10%에 못 미쳐 2003년부터 지속해 온 두자릿수 행진이 마감됐음이 확인될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는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이다. 최근까지 지난해 실적을 추정한 549개 상장사 가운데 순익이 줄어들거나 손실을 볼 것이라고 밝힌 회사는 249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처음으로 손실을 낼 것이라고 밝힌 회사도 121개사다. 메릴린치가 중국 증시가 상승세를 타더라도 1분기까지는 랠리를 보이기 힘들 것이라고 관측한 이유다. 더욱이 지난해 발표한 4조 위안의 경기 부양책도 효과를 나타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도 1분기 증시를 낙관하기 힘든 배경이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2분기에 바닥을 치고 3분기부터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1분기 비관론을 뒷받침한다. 모건스탠리는 1분기에 상하이종합지수가 1700선을 시험할 것으로 본다. 특히 중국 경제가 바닥을 치는 과정에서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 역시 경기 부양책 효과가 나타나려면 하반기는 돼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