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10년과 달러의 위기

1999년 1월 1일 도입된 유로화가 출범 10년을 맞았다. 유로화는 1999년 1월 1일부터 2001년 12월 31일까지는 ‘가상 화폐’로 은행 계좌 이체 등 현금이 필요 없는 거래나 회계적 목적에서 사용되다 2002년 실물통화가 도입됐다. 출범 당시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11개국만이 단일 통화로 유로화를 채택하고 통화 정책의 주체를 개별국 중앙은행으로부터 유럽중앙은행(ECB)으로 이양했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경제 상황이 천차만별인 여러 나라가 단일 통화를 쓰는 유로화 체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이 많았다.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유로화는 기축통화로 거론될 만큼 입지를 구축했다.유로화의 국제적 위상이 향상된 가운데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경제 및 교역 규모 확대와 경제 통합 등의 성과를 거뒀다. 유로존의 1999년 국내총생산(GDP)은 미국 GDP의 73.9%에 불과했으나 2008년엔 97.9%로 확대됐다.유로화는 역내 물가 및 경제 안정에도 기여했다. 물가 안정에 최우선 순위를 둔 ECB의 일관된 통화 정책 덕택이었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평균 2%를 약간 웃도는 선에서 억제됐다.유로화는 채권시장에선 이미 미 달러화를 제쳤다. 유로화 표시 채권은 2008년 9월 말 현재 6조 달러로 세계 총채권 발행 규모의 48.5%를 차지했다. 미 달러화 표시 채권은 4조 달러로 32.1%에 그쳤다. 또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외화보유액 가운데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출범 초기 18%에서 28%로 늘었다. 미 달러화(62.5%)에 이어 2위다.가입국도 늘었다. 유로화 출범 이후 그리스 슬로베니아 키프로스 몰타 등이 유로를 공식 통화로 채택했다. 2009년 1월 1일 슬로바키아가 유로를 도입함에 따라 유로화 채택 국가(유로존)는 16개국으로 늘어났다. 유로화 사용 인구도 3억2860만 명으로 불었다. 영국이 유로존에 합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특히 글로벌 금융 위기로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유로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조사 기관 해리스가 최근 6165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스페인(70%) 프랑스(67%) 이탈리아(62%) 독일(58%) 등 유럽 주요국 국민들은 유로화가 2014년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화를 제치고 기축통화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8년 11월 15일 워싱턴에서 열린 G20 금융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해 왔던 달러화가 더 이상 그런 지위를 유지해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떠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유럽연합(EU) 순회의장이던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달러 기축 체제를 유로로 다극화하려는 유럽의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여졌었다.반면 세계의 기축통화로 군림해 온 달러는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달러의 가치가 추락하며 기축통화 지위를 상실할 것이란 ‘달러 폭락론’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달러는 미국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엔화를 제외한 모든 주요국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확산되면서 뭉칫돈들이 최고의 안전 자산으로 인식되는 미 국채 등을 사기 위해 회귀하고 있는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란 진단이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와 ‘제로금리’가 결국 달러의 가치를 끌어내리고 달러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미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다. 더욱이 구제금융과 경기 부양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를 찍어내면서 미 재정 적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4550억 달러를 기록한데 이어 2009년엔 2배가 넘는 1조 달러로 치솟을 전망이다.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08년 12월 16일 금융 위기 해소와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를 연 0~0.25%로 낮췄다.블랙먼데이를 예고해 ‘닥터 둠(Dr.Doom)’이란 별명을 얻은 마크 파버는 “미국은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한정 달러를 찍어낼 것”이라며 “당분간은 달러 가치 강세가 지속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폭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유병연·한국경제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