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헌 청조사 대표

청조사는 ‘우동 한 그릇’ ‘화려한 일족’ 등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출판사다. 좋은 책에 대한 자부심으로 청조사를 이끌고 있는 송성헌 대표가 얼마 전 자신의 책을 출판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언제나 젊은 열정으로 글과 더불어 살아가는 송성헌 대표를 만나보았다.청조사(靑潮社)라는 이름은 송성헌 대표가 문학에 대해 가진 열정을 잘 보여주는 이름이다. “푸를 청자에 조수, 물결 조자를 써서 ‘푸른 물결’이란 뜻을 담았습니다. 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푸르게 흐르는 물결 같은 출판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삼십여 년 넘게 출판사를 이끌고 온 그인 만큼 ‘좋은 글과 좋은 책’에 대한 자존심과 자부심은 세상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문필가로서 제 자신을 더 성숙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제 자신이 출판사를 하고 있다고 해서 제 책을 낸다는 것은 프로페셔널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또 작가는 자신의 글에 대해, 자신의 책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돈을 주고 책을 사서 읽는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가로서 제 자신을 다듬을 필요가 있었습니다.”그래서 그의 첫 책은 지난 11월에서야 비로소 세상에 그 존재를 나타낼 수 있었다. ‘따스한 손’이라는 이름의 수필집이다. 문학 평론가인 김우종 전 경희대 교수는 이번 수필집에 평설을 써주며 그의 수필 세계를 “긍정의 시각으로 따스한 세상 찾기”라고 정의했다.사실 ‘긍정의 시각’은 단순히 그의 작품 세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삶에 있어서도 그는 늘 ‘긍정의 시각’으로 자신을 가다듬어 왔다.어릴 때부터 유달리 책을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사춘기 시절 삶과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했을 때도 책은 늘 그의 손에 있었다. 좋은 글은, 좋은 책은 그를 성장시키는 최고의 양분이었다. 이 때문에 군대를 갔다 오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그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출판사를 선택했다. “사실은 당시에 최고의 출판사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에 공채로 합격했었어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건 중소 규모의 출판사였죠.” 어찌 보면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높은 보수의 안정된 직장을 마다하고 규모도 훨씬 작고 보수도 훨씬 적은 작은 출판사를 선택한 건 그 나름의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날의 치기라고 할 수 있지만(웃음) 그 당시의 제 목표는 빨리 내 출판사를 가지는 것이었거든요. 서른이 넘어서는 월급쟁이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지요.” 큰 회사에서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오히려 규모가 작은 출판사가 일을 배우기에 더 적합해 보였다.일을 배운 지 3년, 결국 그는 처음에 세운 목표대로 독립을 선언했다. 그의 나이 서른이 되던 해였다.“당시만 해도 이례적인 일이었죠. 특히 당시만 해도 출판사에서는 영업하던 이들이 종종 독립하는 경우는 있어도 편집부 쪽에서 독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잘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많았어요.”하지만 그 자신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좋은 책을 만들면 세상이 인정해 주리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사를 세울 때부터 원칙을 세웠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진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에게, 내 가족들에게 부끄러운 책은 내지 않겠다는 원칙이죠. 다행히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원칙을 잘 지켜올 수 있었던 것 같아 뿌듯합니다.”흔들릴 수도 있었다. 세상과 영합해 좀 더 ‘돈’이 되는 책을 출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 중요한 것처럼 스스로에게 한 약속도 중요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결제를 미룬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 출판사를 설립할 때 세운 ‘좋은 책을 내자’는 원칙도 꼿꼿이 지켜나갔다.덕분에 청조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출판계의 불황이 거듭됨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출판사로, 언제나 감동을 전하는 출판사로 독자들의 곁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물론 어려웠던 시절도 있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몇 줄의 글귀를 트집잡혀 정보기관에 끌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눈에 띄는 성공도 있었다. ‘뿌리’ ‘오싱’ ‘우동 한 그릇’ ‘화려한 일족’ 등 내로라하는 베스트셀러들을 만들어내며 짜릿한 성공의 기쁨도 맛봤다. 큰 출판사들도 선뜻 계약하기 어려운 외국 작품들의 판권을 쉽사리 얻어낼 수 있었던 건 모두 청조사와 송 대표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었다. 사소한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작은 약속도 소중히 여기는 회사라면 분명 좋은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란 기대감 때문이었다.“오랜 시간 동안 좋은 작가들을 만나고 좋은 책들을 펴내게 되면서 저도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힘들다고 해서 마냥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치열하게 정진하는 다른 작가들을 마냥 부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으로 글 쓰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글을 쓴다고 해서 생활인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난 이후에는 단 하루도 편히 쉬어 본 날이 없어요. 회사 일이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늘 글을 쓰곤 했습니다.” 그의 글은 자기 수련의 결과였다.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그의 소망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글쓰기는 늘 그에게 있어 행복한 작업이었다.그렇기 때문에 그의 수필집 ‘따스한 손’이 출판됐을 때 가장 기뻐해 준 것은 바로 그의 가족과 동료 문인들이었다. 그가 얼마나 글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인지, 얼마나 글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좋은 글에 대한 갈망으로 노력해 온 사람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이들이었기에 그의 책이 출판됐다는 사실에 마치 자기 일인 양 기뻐해 준 것이다. “고맙죠. 어쩌면 단순히 립서비스일지도 모르지만(웃음) 잘 썼다고 칭찬해 주시니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일들도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책을 통해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하는 일반 독자들의 평이다.“인터넷을 통해 서평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한 줄 한 줄의 감상들이 모두 고맙기 이를 데 없죠. 작가로서는 무명에 가까운 제 책을 사고 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 분들이 있기에 저는 앞으로도 계속 작가로서, 출판인으로서 제 자신을 더 갈고닦을 생각입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예정이다. 좋은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세상은 분명 따뜻한 것이라고,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는 계속 꿈꾸는 문학 청년으로 살아갈 예정이다.약력: 1945년생. 도서출판 청조사 발행인. 에세이문학회 회장.(사)국제문화친선협회 이사장. 공저 ‘허공에서 길을 찾아’, 저서 ‘따스한 손’.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