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부문 -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LG화학을 이끌고 있는 김반석 부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LG화학에 몸담아 온 정통 ‘화학맨’이다. 공장장 등을 역임하며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았으며 LG석유화학, LG대산유화 등 주요 화학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거치며 변화와 개혁을 주도해 왔다.경영자의 능력은 실적이 말해준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실적이 조직 구성원과 고객의 만족도까지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실적, 직원들의 호응, 고객들의 만족, 이 3박자를 맞추는 것이 경영자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김 부회장은 제조업 부문 올해의 CEO에 뽑히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김 부회장의 좌우명은 무실역행(務實力行: 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함)이다. 이에 걸맞게 2006년 LG화학의 CEO로 취임하면서 강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2006년 화학 업종의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유가, 환율 하락, 석유화학 경기 하락, 중국 업체들의 추격 등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린 상황이었다.시장에서는 LG화학이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왔지만 김 부회장은 기업들이 흔히 택하는 ‘위기 경영’이라는 단기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업의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와 조직 문화 변혁 등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했다.김 부회장은 먼저 임직원들의 모든 의견을 수렴해 비전과 공유 가치를 만들었다. 3월부터 5월까지 긴 시간 동안 전사 465개 팀 1만1000여 명의 임직원들이 비전 회의에 몇 번 씩 참여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설문 조사를 통해 ‘차별화된 소재와 솔루션으로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세계적 기업’이라는 비전을 결정했다. 이와 함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스피드 경영’을 본격 선언했다.스피드 경영은 2006년 7월 임직원 조회에서 선포한 것으로 전략 실행 속도와 조직 문화 변화의 속도를 두 배로 해 비전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김 부회장은 공학도답게 물리학 공식을 언급하며 이를 설명했다. “E(성과)=M(자원)×C(속도)2에서 보듯 속도가 2배면 성과는 4배로 급증하지만 반대로 속도가 2분의 1이 되면 성과는 4분의 1로 약화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행동 양식으로 △남보다 ‘먼저(early)’ △남보다 ‘빨리(fast)’ △남보다 ‘자주(real time)’를 제시했다.스피드 경영이 추진되면서 LG화학 임직원들 사이에는 ‘목표는 반드시 달성돼야 하는 것’이라는 목표 의식과 변화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사결정과 실행의 속도가 빨라졌다.실제로 각 사업부문별로 조그만 성공 스토리들이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학소재사업부의 경우 경쟁사보다 5개월 앞서 신제품을 출시해 모니터용 편광판 제품의 대만 시장 매출을 두 배 이상 늘렸고 NCC/PO사업부는 중동산 제품의 범람에 맞서 범용 폴리에틸렌(PE) 라인을 개조해 고부가 엘라스토머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이러한 변화는 경영 실적으로도 이어졌다. 2006년에는 2분기에 최대 사업부문인 석유화학부문이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만 2007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매출 10조 원을 돌파하고 영업이익도 7636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확실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특히 해외법인 및 자회사를 비롯한 연결기준으로는 영업이익 1조1815억 원을 달성해 영업이익 1조 원 시대를 열었다.이런 상승세는 올해도 이어져 3분기까지 연결기준 매출 12조9810억 원, 영업이익 1조3803억 원의 누계 실적을 달성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김 부회장은 공장장과 사업부장 등을 거치며 현장 경영이 몸 깊숙이 배어 있다. LG화학을 맡은 뒤에도 한 달에 10일 정도를 전국의 사업장과 해외 지사를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열심히 듣고 있다. 사원들의 고충과 현장의 개선 사항을 직접 듣고 일일이 챙기며 경영 활동에 반영하고 있다.김 부회장 취임 후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조직 문화가 유연해지고 창의성 위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가시적인 변화는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는 것. 김 부회장은 “자기 몸이 상하는 것은 회사 자산을 상하게 하는 것과 똑같다”는 경영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잠을 많이 자라. 잘 자는 게 경쟁력이다”, “적자 사업부일수록 빨리 퇴근하라”, “배터리에 파란 불이 들어왔을 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이지, 빨간 불이 들어와 방전되면 쓰지 못한다”며 ‘정시 퇴근’을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LG화학은 6시만 되면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퇴근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정시 퇴근이 자리를 잡았다.LG화학 측은 “퇴근 시간이 빨라지면서 오히려 근무시간에 핵심 업무에 집중해 ‘빨리’ 끝낼 수 있게 됐다”며 “이것이 스피드 경영 중 ‘빨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지방이나 해외 출장 때는 따로 수행원을 두지 않을 만큼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무실에 출퇴근할 때도 사원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직접 직원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취임 직후 회의·보고·퇴근 문화의 변혁을 주도한 것도 격식과 형식을 없애고 가치 있는 일에만 집중해야 조직의 경쟁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평소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취임 초 “좋은 내용은 보고하지 않더라도 향기가 나 알려지게 돼 있다. 문제가 있을 때만 보고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소재 산업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LG화학이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쌓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업무 보고를 줄여서 실행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보고 문화의 정착으로 김 부회장이 결재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최근 3개월 동안 10건 정도를 결재했을 정도라고 한다. 대신 언제든 문제가 생기면 누구라도 대면 보고가 아닌 전화로도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김 부회장은 자기 관리에도 매우 철저한 것으로 알려진다.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해 아침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7시 이전에는 사무실에 도착한다. 해외 출장을 다녀온 후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꼭 사무실로 나온다. 오랜 기간 단전호흡과 국선도를 연마하며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약력: 1949년 서울 출생. 68년 경기고 졸업, 76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97년 LG화학 폴리에틸렌 사업부장 상무. 2000년 LG화학 ABS/PS 사업부장 부사장. 2001년 LG석유화학 대표이사. 2005년 LG대산유화 대표이사. 2006년 LG화학 대표이사. 2008년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현).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