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 신유진
‘코디가 안티다.’ 이 말은 요즘 인터넷 연예 기사 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댓글가운데 하나다. 연예인과 입은 옷이 잘 어울리지 않을 때, 그 옷을 골라온 코디네이터를 비난하는 뜻을 담고 있다. 팬들이 그만큼 연예인들의 패션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는 새로운 시대 흐름을 말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요즘은 코디네이터라고 칭하기보다 한 가지 콘셉트를 잡아 연예인의 전신을 스타일링한다는 의미에서 스타일리스트라는 낱말을 더 자주 쓴다. 1세대 스타일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 신유진 씨는 현재 가수 김종국 씨와 여성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 등의 스타일링을 맡고 있는 베테랑이다.“1994년도에 우연히 시작했는데 그때는 스타일리스트라는 개념도 없던 때였어요. 메이크업 담당자가 화장해 주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나면 의상실 가서 괜찮은 옷을 골라 오는 정도였지요. 지금 보면 좀 원시적인 느낌이 들죠.”그녀가 처음 맡은 그룹은 당시 최고 인기 그룹이었던 ‘듀스’다. 공예과를 졸업하고 의상디자인 쪽 유학을 준비하던 중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듀스의 멤버 고 김성재 씨와 우연히 얘기를 나누게 됐다. 그녀가 의상 디자인을 한다는 말을 듣자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자신들이 콘서트에서 입을 옷을 제작해 달라고 의뢰했다. 그것이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시작이었다.듀스와 계속 인연을 맺을 수 있던 건 콘서트 때 만반의 준비를 해간 덕이었다. 텍스타일도 공부했고 디자인 회사도 잠시 다닌 그녀지만 현장에서 스타일리스트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던 시절이었다.‘땀이 날 테니까 얼음을 준비하자, 닦을 수 있는 마른 수건을 챙기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드라이기도 넣자.’ 그녀는 여려가지 상황을 가정해 완벽하게 짐을 꾸려 콘서트장에 갔다고 한다.“정확하게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 다 준비한 거죠. 꼼꼼하게 챙기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성격이 이 일을 오래할 수 있게 해 준 것 같아요. 지금도 어디에 가든 제 짐이 가장 많아요. 첫 콘서트에서 갑자기 백댄서들에게 입힐 여러 벌의 옷이 필요하다고 해서 검은 쓰레기봉투를 찢어 즉석에서 만든 기억도 나네요.”그녀는 여전히 의상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제작한다. 필요에 따라 브랜드 협찬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무대의상 만큼은 100% 스스로 만든다. 일단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콘셉트를 잡아야 하고 상세한 부분까지 결정해야 한다. 헤어와 메이크업은 어떻게 받게 하고 옷과 신발은 무엇을 입히고 뮤직비디오 엑스트라는 어떻게 할 것인지 몽땅 그녀의 몫이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덧붙여 여덟 명의 어시스트와 함께 현장에 내보낸다. 안심이 되지 않는 중요한 촬영이나 무대에는 꼭 직접 나간다.“가수가 서는 무대가 제 의상 발표회니까요. 신체 조건이 뛰어난 모델에게 명품을 입히는 대신 가수마다 특징을 잘 살려 무대에 올리는 나만의 패션쇼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한창 가요계가 호황일 때는 한 가수만 스타일링한다는 조건으로 1년 계약에 선불금까지 받았던 그녀다. 네 팀을 동시에 맡았던 때는 정말 딱 죽을 것 같더란다. 요즘은 불황이기도 하고 일복만큼 돈복이 있는 것 같지가 않단다.그러나 스타일링하고 싶은 가수들을 거의 다 해봤고 한 번 인연을 맺은 가수와는 계속 일을 하고 있어서 그녀는 행복하다.“가수가 원하는 의자를 찾아 청계천에 나가 실어오기도 하고요. 꼬박 한 달 동안 작업실을 빌려 대학생 몇 팀과 무대에 필요한 아이템을 만든 적도 있어요. LA에서 녹음하고 있는 가수를 직접 찾아가 스타일링을 상의하고 공임이 비싸 다시 한국에 들어와 작업하는 등 엄청나게 일을 많이 했었지요. 몸은 고됐지만 제대로 된 스타일링을 이해해 주는 여건을 만난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순발력과 철저함, 그리고 스타일링 감각이 그녀를 14년 넘게 스타일리스트로 주저앉게 만들었다. 처음에 유학을 갈 줄로만 알았던 집에서는 반대가 상당했다고 한다. 믿었던 딸자식이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것이 탐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원거리 촬영이 있어서 공항에 나갔다가 아버지에게 붙들린 적도 있었고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긴 머리카락도 잘려 봤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그녀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아버지가 늘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설득했죠. 이미 계약했으니 끝까지 하게 해달라고 호소했어요. 대신 스타일리스트를 하는 동안 스캔들이 없도록 몸가짐을 똑바로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그녀는 서른 전까지 사석에서는 연예인과 절대 만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했다고 한다. 오래 연예계에 있다 보니 담당 연예인의 사생활을 캐려고 접근하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조금의 정보도 주지 않고 웃음으로 넘어갈 줄도 알았다.“스타일리스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이 아니라 옷이 좋아서 뒤에서 묵묵히 해야 하는 일이에요. 연예인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지만 최대한 공적인 거리를 유지할 줄도 알아야죠. 스타일링을 맡은 연예인을 세상에 내 스타일을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으로서 사랑해야 합니다.”그녀가 일할 때 얼마나 정확하고 열심히 뛰는 사람인지는 가족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광고 계통에서 일하는 남동생이 광고주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그녀가 누나라고 밝히자 담당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누나가 밥이나 먹고 살지 걱정하던 남동생이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전해 듣고 꽤나 놀랐다는 얘기다.“스타일리스트가 되려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연예계의 무서움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돈에만 연연하는 모습도 보이고요. 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지만 깊은 생각 없이 따라다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돼요. 무언가를 하고 싶고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다면 자기 주관이 더 뚜렷했으면 좋겠습니다.”10년 훌쩍 넘게 연예계에 있으면서 그녀를 지탱해 준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이 화려했기에 주변의 화려함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세월이 지나 때로 능청스러운 면도 생겼지만 스타일링에 대한 확신과 열정만은 예전과 변함이 없다. 그녀처럼 진정한 프로가 되기란 어디서나 결코 쉬운 법이 아니다. 프로는 역시 아름다웠다.김희연·객원기자 foolfox@naver.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