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 GM대우 ‘베리타스(Veritas)’

베리타스는 호주에서 완성차 형태로 생산되지만 국내 브랜드로 판매돼 실질적으로는 ‘외제차’면서 명목상은 ‘국산차’다. 2007년 5월 서울모터쇼에서 공개된 쇼카 ‘L4X’를 기반으로 개발돼 호주에서는 홀덴의 ‘카프리스’로 판매되는 모델이다. 국내 출시를 위해 GM대우의 한국 디자이너들이 호주에 파견돼 국내 판매용 베리타스를 완성했다.현재 국내 대형차는 현대차 에쿠스와 쌍용차 체어맨W가 경쟁 구도를 이루고 있지만 노후화된 에쿠스를 누르고 체어맨W가 판매에서 앞서가고 있다. 올해 1~11월 누적 판매 대수는 에쿠스 4567대, 체어맨W 6179대다. 현대차와 쌍용차의 볼륨을 감안하면 체어맨W가 쌍용차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년 초 에쿠스 후속 모델(프로젝트명 VI)이 나올 때까지는 이런 시장 구도가 유지될 듯하다.2007년 초 스테이츠맨의 단종 이후 대형차가 없었던 GM대우의 베리타스 출시는 체어맨W의 판매에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출시하자마자 금융 위기를 맞은 점이 불운이다. 출시 시기를 좀 더 앞당겼으면 좋지 않았을까.베리타스의 외관만 봤을 때는 기존의 국내 디자인을 뛰어넘는 스타일링이 한눈에 들어온다. 측면 프로포션(비율)만 봐도 전면의 짧은 오버행(타이어 중심과 범퍼 사이의 거리)과 긴 트렁크가 벤츠의 S클래스, C클래스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휠하우징의 림을 감싸듯 돌출된 모양은 벤츠 S클래스와 비슷하다.곡선의 완벽한 조형미를 이루는 S클래스와 달리 베리타스는 공격적인 직선을 활용해 스포티한 느낌을 살리고 있다. 전면에서 볼 때 좌우로 잡아 빼낸 듯한 휠하우스의 과도한 볼륨감도 이에 일조하고 있다.GM대우는 베리타스의 전후 무게 배분이 정확히 50 대 50을 맞추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이런 프로포션을 통해 BMW처럼 배터리를 트렁크에 넣는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서도 전후 무게 배분을 맞춘 듯하다. 물론 100% 알루미늄 블록으로 만들어진 엔진과 후륜구동이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차체 크기는 국내 대형차 중 최대다. 전장×전폭×전고가 5195×1895×1480mm로 체어맨W(5110×1895×1495mm)와 에쿠스(5120×1870×1480mm)를 넘어선다. 특히 베리타스의 축거(앞뒤 휠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09mm로 체어맨W(2970mm), 에쿠스(2840mm)보다 길고 에쿠스 리무진(3009mm)과 같다. 그만큼 뒷좌석 공간이 넉넉하고 직진 주행 시 안정감이 있다는 뜻이다. 뒷좌석은 여객기의 비즈니스 좌석처럼 등받이가 눕혀지고 시트가 앞으로 슬라이딩되며 헤드 레스트 높이도 버튼으로 조절된다. 안마 기능도 있지만 시트 허리 부분에 내장된 롤러가 상하로 약하게 움직이는 정도라 실제 안마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시승차는 디럭스(4650만 원), 프리미엄(5380만 원), 럭셔리(5780만 원) 중 중간급인 프리미엄 모델로 선루프가 없는 대신 DVD 플레이어와 모니터가 천장에 내장돼 있다.베리타스의 장점은 감각적인 주행 능력에서 발휘된다. 후륜구동(뒷바퀴 굴림차)인데도 가속페달 반응이 즉각적이다.베리타스의 최대 토크(34kg·m)는 2800rpm이라는 비교적 저회전 영역에서 최대의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정지 상태에서나 서행 상태에서 가속력이 뛰어나다. 체어맨W(3.6 모델의 경우 35kg·m/4000rpm)나 제네시스(36.5kg·m/4500rpm)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실제로 대낮에도 수많은 차들로 답답함을 자아내는 서울 강남의 도로에서 베리타스는 시원시원한 드라이빙의 쾌감을 선사했다. 옆 차로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잽싸게 차로를 바꾸며 다른 차들을 추월할 수 있었다. 변속기를 수동 모드로 바꾸듯 오른쪽으로 젖히는 것만으로 스포츠 시프트(sports shift) 모드가 되는데, 이는 엔진 반응과 변속기 민감도를 높여줘 액티브한 주행이 가능하다.반면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50km를 넘어서면서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5단 변속기인데다 저속에서 민감하다는 점 때문인지 그 정도의 고속을 견디지 못하는 듯 보인다. 또 하나 개선해야 할 부분은 정차 시 변속기를 중립(N)에서 주행(D)으로 바꿀 때의 변속 충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중립 모드 변환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운행 중의 진동이나 소음 수준은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다.실내 인테리어는 다소 실망감을 안겨주는 요소가 있다. 특히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모델을 왼쪽 운전석으로 완벽하게 개조하지 못한 티가 남아 있다. 예전 스테이츠맨은 아예 주차 브레이크가 조수석 쪽에 붙어 있기도 했지만, 이런 불만을 고려해서인지 베리타스에는 운전석 쪽으로 바뀌어 있다. 그렇지만 오디오 볼륨이 조수석 쪽에 위치하는 등 오디오 및 공조 기기의 설계는 오른쪽 핸들 차량 그대로였다.내비게이션의 화질은 3~4년 전 제품을 보는 듯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터치스크린 방식이 아니라 조이스틱을 이용한다. 내비게이션을 비롯한 각종 조절장치는 직관적으로 구성되지 않아 설명서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는 온도 조절하는 방법조차 알아내기 힘들었다. 보통 운전석 도어 쪽에 있는 윈도 조작 버튼들도 변속기 레버 근처에 있어 센터패시아 부근이 너무 복잡해져 버렸다. 대신 도어 쪽은 팔걸이만 간결하게 붙어 있기 때문에 좌우 다리 공간을 방해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런 낯선 문화적 차이를 접하면 비로소 이 차가 ‘외제차’임을 실감하기도 한다.커튼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윈도 스크린이 전 좌석에서 자동으로 작동되는 체어맨W 같은 차는 온갖 편의장치를 다 집어넣은 럭셔리 콘셉트의 자동차이지만 베리타스는 그 정도까지는 기대하기 힘들다.수입 대형차에 일반화된 기능인 자동 도어 닫힘 기능도 없다. 사실 승차감은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지만 도어를 닫을 때의 기분 나쁜 충격이 있느냐 없느냐가 큰 차이로 다가오는 것을 감안하면 베리타스는 플래그십(flagship: 한 브랜드의 최대 역량이 집결된 제품) 모델이 되기에 2% 부족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5000만 원대 가격에서 선택 가능한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점이 메리트다.전면의 짧은 오버행과 긴 축거, 대형 트렁크로 이루어진 프로포션(비율)은 벤츠 S클래스를 떠올리게 한다.베리타스는 가속페달 갭(시간차)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민첩성이 뛰어나 운전자와 일심동체가 된 듯한 운전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다만 편의사양이 국내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할지는 미지수다.휠하우스의 과감한 볼륨감과 독특한 사이드 리피터(방향지시등)는 스포티한 느낌을 전해준다(위). 윈도 조작 버튼, 내비게이션 조작부가 변속기 뒤쪽에 위치하는 등 다소 복잡한 모습의 조작부.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