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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자당 의원들에게 책을 한 권씩 돌렸다. 경제 공부하고 정책 연구 더 하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민주당의 원내 사령탑이 돌린 책은 ‘미래를 말하다(The Conscience of a Liberal, 현대경제연구원 출간)’. 저자는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외교학과 교수이면서 뉴욕타임스의 장기 고정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이다. 이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더 알려져 있다.크루그먼은 근래 수년간 줄기차게 조지 W 부시 정부를 비판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부시에 대해서는 아예 수준 이하라는 식이다.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학자적 관점이나 비판 수준을 넘어 매우 강한 톤으로 비난해 왔다. 그 공간이 주로 뉴욕타임스였다. 부시 행정부의 견제나 맞대응도 만만찮았을 텐데 그런 외압을 뉴욕타임스 편집진이 잘 막아주었다며 그는 책을 통해 감사를 표시했다.그렇듯 진보적인 관점에서 보수 정권인 부시 정부를 가차 없이 비판했으니 한국의 민주당이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 의원들이 이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 나는 보좌진 손에 책이 쥐어져 있었다고 들렸다. 이런 것을 보면 민주당이 지지율 10%대의 정당으로 전락한 게 우연이 아니다. 사실상 양당제 골격에 가까운 한국 정치에서 지지율이 10%대를 맴돈다면 이미 공당이라고 말하기조차 쉽지 않은 지경이다.민주당이 의원들에게 수필집이나 처세술류가 아닌 정책 관련 서적을 돌린 데는 다른 배경도 작용한 듯하다. 최근 필자가 만났던 모 인사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먼저 이 책을 200권이나 구입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봉하마을을 찾은 이전의 참모들에게 서명까지 해서 줬다는 것이다. 본인이 쓰지도 않은 책에 서명까지 해 줄 정도라면 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다. 아무튼 지금 하는 행태가 제1야당으로 신뢰를 모으기엔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그래도 책을 돌렸다는 점에서 정책 정당으로 변모에 일말의 기대감은 갖게 한다.한나라당 쪽은 어떤가. 과반수의 집권 여당으로 임기 초반의 대통령과 더불어 정책을 펴기에 매우 좋은 조건이다. 그런데 정책을 보면 역시 신통치 않다. 과정이나 결과도 그렇다. 이박, 친박 등 당내 분쟁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한나라당에서는 정책 이론가를 굳이 외부에서 찾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정도면 좋은 정책통이 될 수 있다. 서울대 교수를 오래 지낸 그는 YS때 청와대 수석을 지냈고 현 정부 들어서도 정책적으로 이런저런 논리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문제는 한나라당 역시 의원들이 정책 공부에 열심이지 않다는 점이다. 여야가 이 문제에 관한한 별반 차이가 없으니 국회에서 건전하고 생산적인 정책 대결을 찾는 것은 애당초 연목구어다.이제 마지막 임시국회까지 끝나면 의원들은 또 방학에 들어간다. 18대 의원들은 지난여름에도 82일간씩 지각 개원해 한참을 쉬고 시작했었다. 어쩌면 이래서 천하에 좋은 직업이 국회의원이라고 하는지 모른다.문제는 국회의원만큼 중요한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법안 의결, 예산안 처리, 국정감사, 국정조사…. 나라 살림이 이들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요즘이다. 더구나 세계는 급변하고 있고, 이번의 국제 경제 위기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다. 사실 위기 극복 방안도 정형화된 것은 없다. 이쪽을 막으면 저쪽이 터지고, 한쪽으로 길을 내면 건너편에서 무너지는 형국이다. 이럴 때 제대로 대응하고 바른 처방을 내리자면 책임 있는 주체가 공부해야 한다. 재경 공무원 몇이서, 은행의 기업 여신 담당자 몇몇이서, 얼떨결에 청와대로 입성한 행정관 몇 명이 서류만 잘 만든다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역사와 국민 앞에 책임지는 의원이라면 임시국회 이후 방학 때 연구해야 한다. 제대로 공부하면 경제 위기 극복도 앞당길 수 있다. 내년도 예산안을 법정 일정대로 순조롭게 처리하느냐, 세밑 끝까지 미루어 예산 집행이 늦춰지게 하느냐에 따라 경제성장이 0.5%포인트씩 왔다 갔다 한다는 국책연구소의 분석도 있다. 공부는 못할망정 국회가 행정부의 발목만 잡아서는 안 된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