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타타그룹의 시련

지난 11월 26일 저녁, 인도 뭄바이 남부의 집에 머무르던 라탄 타타 타타그룹 회장은 계열사 타지호텔그룹 크리슈나 쿠마르 사장의 전화를 받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증조부가 지었고 그룹의 자존심으로 여겨져 온 뭄바이의 최상급 타지마할 호텔이 테러범들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뭄바이 테러는 12명의 호텔 종업원을 포함해 200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300여 명의 부상자를 낳은 비극으로 끝났다.자동차와 철강 등 다양한 업종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승승장구하던 인도 최대 기업 타타그룹이 혹독한 시련기를 맞고 있다. 타타그룹은 1년 전만 하더도 과감한 글로벌 M&A로 주목받고 두 자릿수의 매출 증가세를 기록하던 ‘잘나가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기 침체 여파로 자금 부족과 영업실적 부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다 지역 정치인이 주도한 주민의 반대 시위로 완공 단계의 ‘나노’ 자동차 생산 공장을 이전해야 했고 타지마할 호텔마저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되는 등 잇단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를 ‘타타그룹 140년 역사 중 최악의 해 가운데 하나’라고 표현했다.타타그룹은 지난 1991년 라탄 타타 회장이 취임한 후 글로벌 M&A를 통해 급성장했다. 인도가 경제 자유화에 착수할 즈음에 그룹을 맡게 된 타타 회장은 먼저 그룹을 현대화해 인도 시장에서 해외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 놓은 후 2000년부터 글로벌화 전략을 추진했다. 2000년 세계 2위의 영국 차(茶) 판매 업체인 ‘테틀리 티’를 인수한 데 이어 2006년엔 영국 철강 업체인 ‘코러스’를 사들였다. 코러스 인수로 계열사인 타타철강은 세계 56위에서 일약 5위로 도약했다. 올해 3월엔 영국 자동차의 상징인 재규어와 랜드로버까지 포드로부터 인수했다.타타그룹이 지난해 전 세계에서 거둔 매출은 625억 달러(87조 원). 타타그룹은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동차 철강 통신 화학 등 7개 분야에 9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직원 수는 3만5000명에 이른다.타타그룹은 올초 계열사인 타타자동차가 250만 원선의 초저가 승용차 ‘나노’의 시제품을 선보이며 또 한 차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일부 언론에선 타타 회장을 1920년대 ‘모델 T’를 개발해 미국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연 포드자동차의 헨리 포드 회장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꼬여갔다. 타타자동차는 웨스트벵갈 주 싱구르에 150억 루피(약 4000억 원)을 들여 공장 건설을 추진했으나 지역 출신 정치인 마마타 바네르지가 이끄는 주민들이 토지 수용에 반대하는 폭력 시위를 벌이면서 급기야 완성 단계 직전의 공장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구자라트 주로 공장을 옮기기로 정해졌다.진짜 심각한 상황은 글로벌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에서 비롯됐다. 타타 회장은 지난달 그룹 계열사에 e메일을 보내 “외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영업부문의 일부를 사들인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자금 동원과 영업에 필요한 신용 확보에 중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추가적인 M&A 계획을 모두 중단하고 현재 진행 중인 대출 및 투자 협의를 신속히 마무리해 현금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타타그룹이 지난 3월 인수한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영국 정부에 10억 파운드(2조 원) 규모의 대출 지원을 요청했다. 자동차 판매 부진으로 매출도 뚝 떨어져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자 영국 정부에 24개월간 브리지론 형태로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지난달에도 타타자동차의 판매 대수가 전년 동기 대비 30% 급감하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말 타타자동차의 신용 등급을 ‘Ba2’에서 ‘B1’로 하향 조정하고 등급 전망도 ‘부정적’이라고 제시했다. ‘B1’은 투자적격 등급보다 네 등급 낮은 투자 부적격 등급이다.FT는 ‘현재 타타그룹이 직면한 문제는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중국 인도)의 일원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신흥시장 중 하나로 꼽히는 인도 경제가 글로벌 금융 위기 확산과 함께 얼마나 급속히 곤경에 빠져들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박성완·한국경제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