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술인 김수영

삼성동에 있는 복운암에는 간판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아담하니 잘 꾸며진 단독주택일 뿐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도 그 인상은 변함이 없다. 잘 가꾼 식물들과 세련된 인테리어는 여느 가정집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어서 오세요.” 미소와 함께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 역시 마찬가지다. 짧지만 멋스러운 헤어스타일에 새하얀 피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모가 인상적인 그녀가 바로 복운암의 김수영 원장이다. 흔히 무속인이라고 하면 떠올리기 쉬운 매서운 눈초리도 아니고, 사람을 압도할 듯한 요란한 화장이나 차림새도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그녀에게서는 무속인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어려서부터 오랫동안 무용을 해서 그런가 봐요. 서른셋의 나이에 신을 받기 전까지 계속 무용을 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하면 무용을 한 것도 모두 이 일을 하기 위한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2남 2녀 중 셋째로 어려서부터 무용에 소질이 있던 그녀였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녀가 무용가로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10년 전, 그녀는 여느 무속인들처럼 거부할 수 없는 무병을 앓았고 자신이 신기와 무병을 거부하는 동안 단란했던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저도 신이란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전부 미신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믿어요. 눈에 보이니까 믿지 않을 수 없지요.(웃음)” 신의 길로 들어선 후, 한동안은 다른 무속인들처럼 사주도 보고 팔괘도 봤다. “그런데 너무 식상하더라고요. 같은 날 같은 사주를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운명은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데 주역이나 사주가 무슨 소용인가 싶더군요. 그래서 영(靈)을 볼 수 있는 훈련을 해야겠다 싶었지요.”삭발하고 홀로 산으로 들어갔다. 깜깜한 산중에서 촛불 하나 의지하고 백일을 버텼다. 처음 보름 동안 두려움에 산을 내려가고 싶다는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 달이 가까울 즈음 산이, 산의 맑은 기가 그리도 편안할 수 없었다. 그것이 3년 전의 일이다. 그래서 전 생시를 따지지 않아요. 사주도 보지 않죠. 그저 나와 독대하고 앉은 이의 마음을 읽고 내 눈에 보이는, 읽히는 그들의 미래를 알려줄 뿐이죠.”믿지 않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허황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찾아온 이들조차 처음에는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보곤 했다. 하지만 ‘당신이 그리 용하면 한 번 맞혀 봐라’는 듯 의기양양한 태도로 앉아 있던 그들은 ‘상담’을 마치고 돌아갈 즈음이면 그녀의 영험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곤 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매스컴을 타지 않고 그 흔한 광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재벌, 기업가들,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꼭 한 번 찾아가 봐야 할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매스컴보다 입소문이 더 무섭더군요.(웃음) 덕분에 아는 사람에게 들었다며 찾아오려는 분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아무나 받지 않습니다. 하루에 다섯 사람으로 한정해, 그것도 미리 예약한 사람들만 보죠.” 단순히 주역이나 사주를 통해 길흉화복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을 읽고 영(靈)과 교류하는 일이다 보니 체력적인 한계가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주요 계약 성사 여부 및 ‘상담’을 하러 온 이들은 미리 묻지 않아도 주변의 소소한 개인사와 가정사까지 모두 맞히는 그녀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다.혜안이 있어 개인의 길흉화복을 이야기할 수 있듯 그녀는 ‘대한민국’의 길흉화복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나 나라나 그때그때의 운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수영 원장은 이미 3년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당선도 미리 예언했었다. 지금에 와서야 무속인이라면 모두들 너나없이 당선을 예측했다고 하는 두 대통령이지만, 기실 그녀처럼 일찍부터 확신을 가지고 말한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그녀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언제쯤 경기가 회복될 것인가’이다.“내년까지는 힘들어요. 아니, 앞으로 2년 정도는 계속 힘들 거예요. 하지만 내년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질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 6~7월에 경제 회복의 계기를 만들 거예요.”그녀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전환기라고 말한다. 내년 봄에는 악순환이 전개될 것이라고도 말한다. “지금의 고용 문제나 환율 악재도 내년까지는 계속될 것 같네요. 그것 외에 내년에 나라에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대형 사고를 말하는 것이냐는 물음에 그녀는 가만히 입을 닫고 고개를 젓는다. “지금은 섣불리 말씀드릴 수 없네요. 가벼운 입놀림으로 많은 분들께 걱정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요.” 개개인의 흉사와 달리 나라의 흉사는 쉬이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그래도 분명 희망은 있어요. 내년 후반기부터 경기 조짐이 바뀔 거예요. 그리고 내후년, 2010년부터는 눈에 띄게 나아질 것이고요.” 특히 그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부동산 분야다. “주식이나 펀드는 앞으로도 당분간 힘들 것 같고. 아무래도 내년부터는 부동산 분위기가 많이 바뀔 거예요. 지금처럼 매매 쪽이 아니라 미국처럼 임대 사업 중심의 부동산 분위기로 전환될 겁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보는 이명박 대통령은 어떨까. “지금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 것 같아요. 추진력도 월등한 것 같고요. 다만 가까운 한두 사람의 영향력에 국한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을 넓혀야 할 것 같네요.”건강 악화설이 나오고 있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3년이네요”라고 단언한다. “아직은 괜찮겠지만 넉넉잡고 3년이 고비일 것 같아요. 늦어도 2010년에는 건강이 악화될 것 같네요.” 그래서 그녀는 통일의 시기를 5~7년으로 본다. “통일 이후에 경제적인 부분이 많이 악화될 거예요. 하지만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제가 본 대한민국의 운은 아주 강하니까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통일 후의 국난도 짧은 시간에 이겨낼 거예요.”원장은 그녀 자신이 죽을 만큼 힘든 고비를 여러 차례 겪었 듯이 인생에서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경제난을 비관해 자살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요즘의 세태를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 “힘들겠죠. 죽을 만큼 힘들겠죠. 저라고 왜 모르겠어요. 저도 죽을 만큼 힘들어 봤어요. 신기를 거부해 집안이 거의 거덜 날 뻔도 했고요. 창창한 무용가로서 선망의 시선을 받다 하루아침에 무속인이 되어야만 했던 제 운명에 좌절할 뻔도 했죠. 하지만 이젠 알아요. 힘든 순간, 딱 그 순간만 넘기면 분명 기회는 다시 온 다는 것, 희망이 있다는 것을요.”“저는 저를 알리고 싶지 않아요. 돈 벌 욕심도 없고 손님을 끌어 모으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서 인터뷰를 할지 말지도 많이 망설였죠. 이 인터뷰 뒤에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내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포기하지 말라고요. 희망이 있다고요. 그게 조금이나마 제가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어요.” 그런 그녀의 꿈은 언젠가 다시 무용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그마한 절을 짓고 싶다는 꿈도 있다. “공양을 바라진 않아요. 돈을 받지도 않을 거예요. 그저 몸과 마음의 보살핌이 필요한 분들을 돌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약력: 조선대 무용과 졸업.서른셋에 접신. 복운암 원장(현).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