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김준호 손심심 부부

김준호 1963년생. 한국민속예술원 수료. 2007년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 국악부문 수상. 민속예술학교울림터 예술민속학 전임강사(현). 무형문화재 동래지신밟기 준인간문화재. 저서 ‘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손심심 1963년생. 동아대 무용학과 졸업. 부산시립무용단 단원. 민속예술학교 울림터 회장(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8호 동래야유 전수 보조자. 2007년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 국악부문 수상.국악인 김준호 손심심 부부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7년에 있었던 방송 강연 때문이다. MBC TV의 아침 프로그램인 ‘10시 임성훈입니다’에서 두 사람은 ‘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는 강연을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국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속적인 경상도 사투리로 풀어낸 이 TV 특강은 일약 두 사람을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줬다. 그 후 두 사람은 각종 초청 공연, 초청 특강 섭외 1순위로 등극했고 덕분에 부부의 스케줄 표는 빈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각종 스케줄로 빼곡하다.“MBC ‘TV전국기행’ EBS ‘노노클럽’ KBS 부산총국 ‘오아시스 인생백일장’ 등 현재 고정 출연하고 있는 TV 프로그램만 해도 꽤 돼요. 그러다 보니 자동차 주행거리만 해도 1년에 거의 5만km에 달해요.”(손심심) 게다가 이들 부부는 얼마 전에 퓨전 국악 앨범 ‘우리 둘이’도 냈다. ‘우리 소리’만 고집하던 두 사람이 국악과 대중가요를 접목한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그래서 바쁘죠. 어떤 분들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느라 무리하는 건 아니냐고 하시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모든 활동들은 결국 우리 소리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담긴 노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바쁘지만 늘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김준호)“물론 피곤하고 많이 힘들기도 해요. 하지만 무대에 올라 장구 치고 북 치고 한바탕 신명 나는 소리와 춤판을 벌이고 나면 피곤한 줄도 몰라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느낌도 들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하죠.”(손심심)두 사람은 무대 위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남편의 소리가 아내의 춤을 받쳐주고 아내의 춤이 남편의 소리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공연뿐만 아니라 강연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 없어도 신명이 날 수 없다.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87년의 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문화를 접하고 빠져든 뒤 한국무용을 배워 온 손심심 씨는 당시에 이미 춤 잘 추고 잘 가르치는 유명한 춤꾼이었다.1981년부터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8호인 동래야유(문둥이 과장, 양반 과장, 영노 과장, 할미 과장 등 4과장으로 구성된 탈놀음)의 할미 예능 보유자인 양극수 선생에게서 할미 역을 배웠다. 그 외에도 문장원 선생에게서 양반춤을, 김동원 선생에게서 학춤을 배우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명무들이었던 선생에게서 사사한 만큼 손 씨의 춤 솜씨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부산시립무용단에 들어갔고 뒤늦게 동아대 무용학과에 진학한 이후에는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살풀이춤으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그러던 중 잘 아는 분의 소개로 ‘서울말뚝이’라는 공연의 무당 역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그래서 사무실에 갔다가 만난 게 바로 김 선생이에요.”(손심심)당시 손 씨는 자신의 춤에 반주로 장단을 맞춰 줄 사람을 찾고 있을 때였다.“그때 이미 김 선생은 우리 소리와 구음(입소리, 입장단)에 있어 탁월한 솜씨를 자랑하던 이였지요.”(손심심)“제가 우리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할머니 덕분이었어요. 들일하시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다 보니 할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일하면서 읊조리는 노래며 가락이 자연스레 제 몸에 배게 된 거죠.”(김준호)우리 소리, 우리 가락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자라면서 점점 더 커져갔고 김 씨는 전국 각지를 돌며 우리 소리를 찾고 배우고 공부해 나갔다. 그러던 중 1980년에는 김수악 명인에게서 구음, 판소리, 장구, 북 등을 배웠다. 아울러 고 허종복 명인에게 고성오광대 상여소리를, 고 한윤영 명인에게 가산오광대 중타령을, 고 양극수 양극노 명인에게는 동래지신밟기 풀이, 문장원 명인에게서 동래상여소리 등을 배웠다.“그때 극단에서 ‘서울말뚝이’에 쓰일 소리를 작곡하고 있을 때였어요. 어느 날 어떤 예쁜 여자가 들어왔는데 무당 역을 할 여자래요. 그런데 무당 역을 하겠다기에 소리를 시켜봤는데 영 아니더라고요.(웃음)”(김준호)“그래서 제가 소리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죠. 술 사주고 밥 사주면서 살살 달래가며 김 선생에게 구음을 배웠어요.(웃음)”(손심심)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음치에 가까웠던 그녀가 무당 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낼 만큼 그녀의 소리 솜씨가 일취월장한 것이다.“그 당시 부산교육원에서 춤 강습을 하고 있었는데 김 선생에게 장단을 해 달라고 했어요. 구음을 곁들인 김 선생의 장구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데 그렇게 신명 날 수가 없더군요. 그때 알았어요. 김 선생이 제게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란 것을. 그리고 이 사람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손심심)이후 손 씨는 김 씨와 함께하는 공연 및 강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자신의 공연만이 아니다. 한 팀이 되어 김 씨가 강연하면 손 씨가 장단을 맞추고, 손 씨가 춤을 추면 김 씨가 장구채를 잡고 구음을 하며 장단을 맞추는 ‘한 팀’으로서의 공연을 기획했다. 두 사람의 호흡은 절묘하게 들어맞았고 두 사람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갔다.“하루는 손 선생이 술 마시러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따라갔더니 부모님께 저랑 결혼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얼떨떨하게 있는데 장인어른 되실 분이 저더러 ‘우리 딸하고 결혼할 건가, 밥 굶기지 않을 자신 있느냐, 결혼 날짜 잡을 거냐’고 하시기에 ‘네’ 하고 세 번 대답했죠. 그리고 그때 깨달았죠. 아, 내가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살아왔구나 하고요. 그리곤 바로 결혼했어요.(웃음)”(김준호)두 사람은 결혼 후에도 결혼 전처럼 서로를 손 선생, 김 선생으로 부르고 있다. 부부이기 이전에 함께 공연하고 함께 강연하는 동료 예술가이기 때문이다.“물론 부부인 만큼, 또 함께 공연하는 동료인 만큼 투닥거릴 때도 많죠. 또 예술하는 사람들답게 고집도 세 트러블도 많고요.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아요. 서로 치열하게 이야기하고 치열하게 싸우면서 서로와 소통하곤 하죠.”(손심심)서로의 고집과 서로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잘 알기에 두 사람은 무대 위에서 조금씩 자신을 죽이고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무대 위에서만이 아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8호인 동래야유 전수 보조자로서 한 달에 두 번 이상 수업을 해야 하는 아내 손 씨를 위해, 촬영이나 공연이 없을 때는 민속학과 민예학의 학문적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남편 김 씨를 위해 두 사람은 항상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 서로의 장단을 맞춰준다.“그래서 우리 두 사람의 꿈은 같아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국악, 우리 소리, 우리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하는 방송 출연이나 공연, 강연, 앨범 발매 등은 모두 그 꿈을 위한 노력입니다.”(김준호 손심심)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