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순위 - 경제·산업

이번 조사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분야는 바로 ‘경제·산업’이다. 최고의 싱크탱크 후보로 오른 연구소만 71개에 달했다. 이 중 62곳이 추천 점수 1점 이상을 얻었다. 다른 분야를 압도하는 수치다. 이를 반영해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에 경제·산업 분야 연구소 40곳이 포함됐다. 설문에 응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경제 싱크탱크로 단연 삼성경제연구소를 꼽았다. 충분히 예상된 결과다. 정부 출연 연구소의 대표 격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근소한 차이로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3위부터는 점수 차가 컸다. 이는 삼성경제연구소와 KDI의 양강 체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것이다.삼성경제연구소와 함께 기업 경제 연구소 ‘3총사’로 불리는 LG경제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원도 상위권에 포진했다. LG경제연구원은 삼성경제연구소, KDI에 이어 3위에 올랐고 현대경제연구원은 7위를 차지했다. 흥미롭게도 이들 3총사는 같은 해에 설립됐다. 1986년 LG경제연구원(4월), 삼성경제연구소(7월), 현대경제연구원(10월)이 경쟁이라도 하듯 차례로 문을 열었다. 기업 연구소 가운데는 이 밖에도 포스코경영연구소(10위), SK경영경제연구소(20위), 현대차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36위) 등이 순위에 들었다.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등 6대 그룹 중 롯데를 뺀 5개 그룹이 경제·산업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정부 출연 경제 연구소에도 ‘3총사’가 있다. KDI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산업연구원이 그 주인공이다. 예상대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4위)과 산업연구원(6위)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반면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5위에 오른 것은 다소 의외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부속 연구소로 대중적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금융·통화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전문가들이 높게 평가한 결과로 풀이된다.이번 조사의 최대 이변은 19위에 오른 김광수경제연구소다. 지난 2000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수년 전부터 날카로운 경제 분석과 대안 제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정부와 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 싱크탱크’를 표방한다.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김광수 소장은 노무라연구소 서울지점 연구부장 출신으로 1997년 외환위기 때 대처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정책 담당자들에게 제시해 주목받았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연구소를 설립하고 부동산 거품 등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최근에는 다음 카페와 지역 포럼 등을 통해 일반인들과 직접 대화에 나서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연구원 5명 안팎의 소규모 연구소다.개혁적 목소리를 내온 비정부기구(NGO) 연구소들도 빼놓을 수 없다.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와 경제개혁연대가 나란히 13위와 14위에 올랐다. 경제개혁연대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2006년 독립한 것이다. 대표적인 소비자 단체인 한국소비자연맹이 23위에 오른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갈수록 커지고 있는 소비자 운동의 파워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극복’을 내건 금융노조 금융경제연구소도 38위를 차지했다.1위에 오른 삼성경제연구소는 민간 연구소의 성공 모델로 꼽힌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미국의 싱크탱크들이 그렇듯이 의제 파악과 문제 제기, 대안 제시에서 기동성과 현장성을 강조한다. 천천히 해서 완벽한 연구 보고서를 내는 것보다 트렌드를 빨리 포착해 대응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 이러한 변화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작됐다.삼성경제연구소도 처음에는 삼성그룹의 수요를 의식했지만 점차 한국 사회 전체를 염두에 두는 공공 연구로 방향을 잡았다. 한국 사회 전체 수준을 연두에 둔 연구가 아니면 삼성그룹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때부터 연구 성과를 공공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삼성경제연구소의 성장은 삼성그룹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다른 그룹들은 연구소에 대한 지원을 대폭 줄였지만 삼성은 달랐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 투자가 아닌 이상 웬만한 정부 연구 기관에 버금가는 규모의 경제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삼성경제연구소는 1997년 7월 연구 자료 데이터베이스(DB)를 외부에 전격 공개했다. 일반인들도 누구나 연구 보고서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성경제연구소의 인지도와 영향력은 몰라보게 올라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 보고서는 그동안 이런 보고서의 혜택을 보지 못하던 중소기업과 대학생 등에게 큰 도움을 줬다. 정보 공개가 삼성경제연구소를 새로운 지식 중심, 지식 권력으로 부상시켜 준 것이다.KDI는 한국 경제 발전과 선진화를 위한 초석을 마련한 주역이다. 1971년 사회과학 분야로는 국내에서 최초로 설립된 연구소다. 1970~80년대 KDI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립과 시행에 참여하는 등 경제 발전과 관련된 정책 연구, 장기 전망 등에 초점을 맞췄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 경제가 계획경제 체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이행되고 경제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시장기능을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각종 제도연구와 사회복지를 포함한 사회 발전 정책으로 연구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이후 1990년대 들어서는 법·경제, 북한 경제 연구 등을 포함하는 경제 전반에 걸친 폭넓은 연구를 수행하는 국내 유일의 종합 정책 연구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