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완 영동세브란스병원장

‘한국의 의료 서비스 1번지’ 서울 강남 지역을 두고 종합병원들 간의 경쟁이 또다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10여 년 전 삼성병원, 아산병원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시작된 경쟁은 이들의 막강한 자본력과 거대한 규모에 영동세브란스병원, 강남성모병원 등 기존 ‘맹주’들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이었다.특히 25년 역사의 영동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 폐 이식 수술 성공, 심장과 폐 동시 이식, 강남 지역 최초 로봇 수술 시스템 도입 등 높은 의료 수준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낙후된 인프라로 인해 적지 않게 고전해 왔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또 강남의 최중심부에 위치했다는 좋은 지역 여건을 100%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어 왔다.하지만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영동세브란스병원이 ‘재도약’을 선언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최적화된 공간 배치를 통한 ‘속도’의 향상으로 의료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초대형 병원이 놓칠 수 있는 환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도 보다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이처럼 ‘강남의 터줏대감’ 영동세브란스 병원이 부활의 날개를 힘껏 펴자 몇 년간 조용했던 이 지역 종합병원들의 경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때 영동세브란스와 자웅을 겨루던 강남성모병원까지 새 병원 건물의 준공을 앞두고 있어 ‘지역의 최강자’ 타이틀을 놓고 벌이는 각 종합병원들의 경쟁이 더욱 흥미진진해지고 있다.영동세브란스병원의 새 도약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희완 병원장을 만나 전략과 비전을 들어봤다.“약 2년여의 기간이 소요된 리모델링의 핵심은 지난 1983년 지어진 본관 2개 동을 전면 새 단장한 것입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8층까지 9개 층 총 2만6290㎡ 면적이 진료 공간, 환자 편의 공간으로 새롭게 변신했습니다. 공사 마무리 결과 연면적 8만6782㎡에 860여 병상을 가동하는 새로운 병원으로 재탄생했습니다.구조도 크게 변했습니다. 지하 1층 및 지상 1층 로비를 확장하고 지상 2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진료 시설까지의 접근을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달라진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고기 위해 특실 병동을 추가로 만들고 구석구석 최고급 마감재를 썼습니다. 밝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조명 시설도 크게 개선했습니다.”“규모보다는 공간 재배치로 의료 서비스의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즉 빠른 진료, 빠른 치료를 위한 ‘속도’의 확보가 키워드입니다.내과부 접수를 이원화해 외래 대기 시간을 단축했으며 따로따로 운영되던 진료과 및 검사실, 치료실을 통합해 접수와 진료, 치료까지 걸리는 시간과 동선을 최소화했습니다. 이 외에도 10대의 무인 수납 및 처방전 발행기를 추가로 설치했으며 원무팀을 거치지 않고도 진료비 수납과 진료 예약을 가능케 하는 등 병원 이용 시간을 단축하는데 투자를 집중했습니다.이와 함께 건강검진, 로봇 수술, 소화기 내시경, 심혈관, 치과병원 등을 핵심 분야로 선정해 집중 투자했습니다. 예를 들어 심혈관센터에는 혈관촬영기를 추가 도입했고, 건강검진센터는 VIP 검진 시스템을 보다 확대하기 위해 대대적인 시설 및 장비를 확충했습니다.”“원래 영동세브란스병원은 낙후된 강남의 의료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 독일에서 제공된 장기 저리 차관으로 지어졌습니다. 독일에서 일하다 돌아온 간호사들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자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1983년 당시만 해도 주변에 식당이 없어 직원들이 주변 포장마차에서 점심을 때울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곳이 지금은 최고의 부촌으로 거듭났으니 정말 ‘상전벽해’죠. 사실 오래 일한 직원 중에는 이곳에 당시 터를 잡아 집값이 크게 오른 덕을 본 직원들도 있습니다(웃음).”“영동세브란스병원은 우리나라 의료 기관을 선도하는 연세의료원의 위상에 걸맞게 의술 분야에서 큰 두각을 보여 왔습니다. 지난 1984년에는 국내 최초로 수핵용해술(chemonucleolysis) 기법의 척추 수술을 시행해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1996년에는 장기 이식 수술 중 가장 힘들다는 폐 이식을 국내 최초로 성공한 이후 지금까지 최다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또 1999년에는 국내 최초로 난치병인 근육병 환자에게 근육세포 이식 수술을 시도했고, 2003년에는 국내 최초로 630g의 극저체중아에게 장천공 수술을 성공시키는 등 연세 의학의 우수성을 널리 펼쳤습니다.또 새로운 장비와 시스템도 앞장서 들여왔습니다. 영동세브란스병원은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3.0T 핵자기공명장치(MRI), 63Ch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최첨단 의료 시스템을 일찌감치 구축했습니다. 최근에는 강남 지역 최초로 ‘꿈의 방사선 암치료’라고 불리는 토모세라피(Tomotherapy) 로봇 수술 시스템을 도입해 올 4월 100건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실적을 거뒀습니다.이에 따라 지난 5월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의료기관평가’에서 의료 서비스 15개 평가 전 분야, 임상질 지표 3개 부문, 입원 환자 만족도 등 모든 평가 분야에서 ‘A등급’을 얻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500병상 이상의 전체 86개 의료 기관을 대상으로 조사된 이 조사에서 중환자실 진료 등이 포함된 임상질 지표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은 10개 병원 중 의료 서비스 15개 항목도 모두 ‘A’를 받은 병원은 7개 병원에 불과했습니다.”“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주변 대형 병원들이 병상을 확장하고 독립된 암센터를 세우는 등 공격적인 물량 공세를 펼치는데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지역 개인 병원들이 전문화를 표방하며 서비스와 시설을 고급화하고 마케팅을 강화하는데도, 대학병원이라는 울타리에 안주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우리 병원에선 얼마 전 인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최근에 침체됐던 원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주민들 대다수가 영동세브란스병원을 ‘대학병원’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강남 지역의 여타 병원에 비해 시설이 노후화됐다는 점, ‘영동세브란스’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부족했다는 점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42%의 응답자가 영동세브란스병원이 연세대학교의과대학 병원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응답했습니다. 또 70% 이상이 영동세브란스병원의 특화된 진료 과목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희망적인 사실은 응답자의 64%가 리모델링이 끝나면 병원을 찾을 의향이 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리모델링을 계기로 환자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을 발전시키는 노력, 의료진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자신감을 높이는 노력 등이 계속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이번 리모델링은 병원의 변화가 완료된 게 아니라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 걸쳐 투자가 이뤄지고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육성을 통해 대학 병원으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또 지역 주민들과의 적극적인 교감을 통해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중추병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힘쓸 계획입니다.”박희완 원장은…1948년생. 77년 연세대 의과대 석사. 86년 연세대 정형외과학교실 조교수. 96년 대한교통의학회 회장. 99년 영동세브란스병원 기획관리실장. 2002년 소아정형외과학회 회장. 2006년 대한정형외과학회 이사장(현). 2007년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병원장(현).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