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지난 9월 1일 2008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기획재정부가 이튿날 한국 조세 정책의 총괄 격인 세제실장(1급)을 전격 교체해 과천 관가에는 뒷말이 무성하다. 이희수 전 세제실장이 물러날 것이라는 소문은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재정부 내에 파다한 상황이긴 했다. 한창 세제 개편을 진두지휘하고 있어야 할 이 실장이 한국 몫으로 배정된 국제통화기금(IMF) 이사에 내정됐다는 소식은 다소 의아한 일이었지만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윤영선 당시 조세정책관(세제실 주무국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식으로 후임까지 거론됐다.결과적으로는 이 전 실장이 세제개편안 발표까지를 마무리 짓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세제개편안은 정부가 결정한다고 그대로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국회 협의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손질이 가해지는 일도 잦다. 한마디로 산 넘어 산이다. 당장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바로 그날부터 야당도 아닌 여당에서 2억 원 이상 과표 구간에 대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시기를 1년 늦추자고 요구하고 나와 정부가 그대로 수용했을 정도다.그런데도 이 전 실장이 세제개편안의 정기국회 처리 과정을 끝까지 처리하지 않고 갑자기 미국 워싱턴(IMF 소재지)으로 간다니 모두 머리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IMF 이사는 한국과 호주가 2년씩 교대로 맡게 돼 있다”며 “17개국을 대표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평판뿐만 아니라 경력과 외국어 능력, 본인 희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 실장을 임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실장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5년부터 2년간 IMF에서 선임연구원(senior economist)을 지낸 바 있어서 보직을 맡는 것 그 자체로는 전혀 이상할 게 없었지만 문제는 시점이었다.항간에는 ‘강만수 장관과 이 전 실장이 코드가 맞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 전 실장이 세제개편안 준비 과정에서 갑자기 ‘병가’를 냈다는 둥 재정부 안팎에서 흘러나온 사소한 소문이 점점 부풀려지면서 “이 전 실장이 강 장관의 감세 정책에 맞서다 결국 문책을 당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이 때문에 9월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민감한 시점에 장관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세제실장을 경질해서야 되겠느냐”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 모든 소문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인사이동 시기가 이례적이었다는 점에는 재정부 누구나 동의하는 바다. 공직자끼리도 세상을 보는 시각이나 지향점이 다를 수 있고, 만약 그로 인해 손발이 맞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물러나는 게 상례긴 하다. 하지만 이 전 실장 본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IMF 이사 자리는 나 스스로 강하게 희망했던 것”이라며 갈등설을 일축했다.예상대로 이 전 실장의 후임에는 윤영선 조세정책관이 임명됐다. 윤 실장은 행시 23회로 1980년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부 조세지출예산과장, 조세개혁실무기획단 부단장(단장은 정무직으로 사실상 조직 수장), 부동산실무기획단 부단장,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관 등을 거친 명실상부 세제실의 ‘에이스’다. 다소 석연치 않은 분위기에서 세제실장 자리에 올랐지만 전문성과 경험으로만 보면 윤 실장이 세제실 수장으로 가장 적합한 인재라는 점을 부인할 이는 그리 많지 않다.그는 조세 분야에 대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통찰력이 뛰어나다.능력이 우수한 관료지만 윤 실장의 공직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2006년 2월 그는 참여정부가 야심차게 마련하던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이 언론에 사전 유출된 것에 대한 관리 책임을 지고 ‘보직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두 달 뒤 ‘부동산실무기획단 부단장’이라는 자리로 복귀했으나 이미 ‘날개가 꺾여 버린’ 에이스는 사무실보다 과천청사 재정부 뒷산을 홀로 거니는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로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냈다.이제 윤 실장은 ‘MB식 시장주의 개혁’의 결정판이라는 단군 이후 최대 세제개편안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부자들을 위한 감세’라는 야당의 공세 속에서도 윤 실장이 세제 개혁 법안들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 눈여겨보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