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구이 대명사 ‘취안쥐더’의 성공비결

베이징 올림픽은 여러 스타를 탄생시켰다. 베이징의 명물 오리구이도 그중 하나다. 올림픽선수촌에서 전 세계 선수들로부터 가장 인기를 끈 메뉴는 오리구이였다. 베이징카오야(오리구이)로 가장 유명한 취안쥐더(全聚德)는 올림픽 덕분에 세계 브랜드로 부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 인근에 있는 취안쥐더 본점 허핑먼점에서 만난 취안쥐더그룹의 장쥔셴(58) 회장은 “올림픽 선수촌과 기자촌에 매일 300마리 이상의 오리를 공급했다”며 “세계에 취안쥐더의 영향력과 지명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1864년(청나라 동치황제 3년) 창업해 14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최대 오리구이 체인점 업체인 취안쥐더. 베이징 첸먼 시장에서 닭·오리를 팔던 장사꾼 양취엔런(1822~90)이 ‘더쥐취안’이라는 과일 가게를 인수해 차린 오리 요리집이 시초다. 가게 이름 순서를 거꾸로 바꿔 취안쥐더로 개명했다. 문화혁명 시대에는 핍박도 받았다. 양씨 가문의 4대 계승자인 양푸라이는 양돈장에 배정돼 일을 했고 5대 계승자인 양종완은 ‘자본가의 딸’이라는 죄명으로 헤이룽장성에서 10년간 농촌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일개 식당이던 취안쥐더는 지금은 공기업으로 바뀌면서 그룹으로 변모했다. 베이징에 10개를 비롯해 중국 전역에 80여 개의 직영점과 체인점이 운영되고 있다. 여기서 1년에 소비하는 오리만 해도 500만 마리다. 허핑먼 본점은 2000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을 만큼 크다. 2005년엔 ‘중국 베이징 취안쥐더’라는 회사 이름에서 베이징이라는 글자를 빼고 중국 취안쥐더로 고쳤다. 베이징을 넘어 중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라는 것이다.이름만 바꾼 게 아니다. 취안쥐더는 그만큼 강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 변신의 과정을 좇다 보면 작은 식당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중국 기업의 실체를 접할 수 있게 된다. 1993년 전만 해도 베이징에는 취안쥐더 점포가 3곳 있었다. 하지만 지배 구조가 달랐다. 계획경제 체제에 따라 베이징 내 여러 부처가 이들 점포를 나눠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은 그 틀을 깨도록 했다. 취안쥐더가 하나의 지배 구조를 갖는 그룹이 된 것이다.취안쥐더는 2004년 또 한 번의 변신을 단행한다. 유통 업체인 신옌사그룹 및 여행 업체인 소두여행그룹과 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총자산 150억 위안(약 2조2500억 원) 규모의 중국 최대 종합 여행 업체로 탈바꿈했다.2005년 초에는 3개 중국 전통 유명 음식 브랜드도 인수했다. 청나라 궁정요리 전문점으로 유명한 팡샨, 80년 역사의 산둥지역 해산물 요리 전문점인 펑쩌위안, 50년 역사의 쓰촨반점 등이 그것이다. 중국의 음식을 대표하는 국가 대표로서의 명성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취안쥐더를 비롯해 이들 브랜드는 모두 고급 브랜드로 중급과 대중적인 브랜드의 음식점도 연다는 계획이다. 장 회장은 “패스트푸드 업체를 인수할 생각도 있다며 모든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업체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취안쥐더는 세계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는 라이선스 형태로 홍콩 일본 호주에 5개의 취안쥐더를 운영 중이다. 장 회장은 “제대로 된 품질 관리를 위해서는 합작이 필요하다”며 “4개 브랜드의 동반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출 지역에는 한국도 포함된다며 몇 개의 한국 회사들이 합작을 희망해 와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내년에라도 한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해외에서 합작하는 외국 업체들을 본사의 전략적 투자자로 유치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을 분명히 한 것이다.취안쥐더는 중국을 찾는 국가 지도자 등 VIP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 왔다. 여기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본점 직원은 벽에 걸려 있는 ‘취안쥐더는 영원이 존재해야 한다’는 액자를 가리키며 마오쩌둥이 썼다고 했다. 중국 정부는 VIP의 동선에 이곳을 단골로 넣었다. 2004년엔 중국을 극비리에 비공식 방문했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취안쥐더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장면이 TV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베이징 본점 2층에 올라가 보면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 중국 지도자는 물론 김 위원장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국가 원수들이 이곳을 찾았다가 찍은 기념 사진 등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1년 반의 재단장 공사를 끝내고 개방한 첸먼다제 거리에 중국의 대표 브랜드를 입주시켰고 그중 하나가 취안쥐더다. 중국은 첸먼다제를 베이징의 상업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숨기지 않는다. 취안쥐더 측은 이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106억3400만 위안(1조5951억 원)에 이를 만큼 유명 브랜드로 자라 잡았다고 말했다. 세계 38개국에서 상표 등록이 돼 있다. 올해는 취안쥐더의 오리구이 방식이 ‘국가급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우리 식으로 따지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첸먼점에 가면 취안쥐더의 어제와 오늘을 볼 수 있는 박물관까지 있다.장 회장은 일류정신을 강조했다. 뭐든지 해도 일류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 정신은 철저한 품질 관리로 이어졌다. 취안취더의 최고 주방장은 창업 이후 7대째 내려오고 있다. 종업원이 내미는 메뉴판을 받아보니 메뉴판이 아니라 두꺼운 책을 건네받은 느낌이 들 정도다. 오리구이와 함께 코스 요리는 200여 가지가 준비돼 있다. 장 회장은 “20여 개의 오리 양식장을 운영 중”이라며 “사료의 상태 등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오리는 반품 형태로 공장에서 나와 체인점으로 배송한다. 철저한 품질 관리를 위해서다.특히 맥도날드처럼 표준화를 통해 체인점으로 확장하면서서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100년 넘은 역사의 취안쥐더의 확장에 최대 걸림돌은 더 많은 요리를, 더 짧은 시간에, 일정한 맛으로 공급할 수 없는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표준화에 나선 것이다. 오리를 굽는 로와, 구울 때 쓰는 목재, 설정 온도 등을 표준화했다. 정확한 매뉴얼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ISO 인증도 따냈다.장 회장은 다동카오야 야왕 등 경쟁자들이 있지만 이들로 인해 오히려 혁신을 하게 된다며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취안쥐더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체인점은 유리벽으로 요리 과정을 공개한다. ‘중국음식= 불량식품’이라는 편견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다.신뢰 경영도 주효했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태 때 3명이 오더라도 모든 체인점의 문을 열었다고 장 회장은 회고했다. 사스 전 하루 100만 위안(1억5000만 원) 수입이 2만∼3만 위안으로 급감했지만 고객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자세로 문을 열었다는 것.취안쥐더는 이제 단순한 식당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중국 선전 증시에도 상장했다. 홍콩 뉴욕 등 해외 증시 상장도 검토 중이다. “중국 제1의 음식 기업, 세계 일류의 미식 기업이 비전입니다.” 장 회장의 말은 허언이 아닌 듯했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