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식 대성쎌틱가스보일러 대표

충북 음성에 5일장이 서는 날엔 근처의 광혜원 금왕 대소 맹동 등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천막을 치고 좌판을 벌이면 배추 상추 고추 고구마 등 농산물들이 수북이 쌓인다. 닭 오리 등도 눈에 띈다. 족발 빈대떡 막걸리 장사들이 이 대목을 놓칠 리 없다.지난 2002년 어느 날 음성 5일장의 북적대는 장터 한쪽에 작업복 차림의 중년 남자들이 들어섰다. 이들은 막걸리와 파전 족발을 주문한 채 뭔가를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음성에 본사와 공장을 둔 대성쎌틱가스보일러의 고봉식 공장장과 이 공장의 노조 간부들이었다. 이들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몇 시간 동안 심각하게 토론과 논의를 거듭하고 있었다.고 공장장은 “우리 회사가 아주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어 기존의 방식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과 “강도 높은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조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의 토론은 대성쎌틱가스보일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고 변화의 시작점이었다.이날 고 공장장의 리더십과 회사의 미래를 위한 직원들의 열정이 합쳐져 대성쎌틱가스보일러 노조는 회사에 임단협을 위임했고 5년 연속 무교섭 타결을 이뤄냈다. 2007년 노동부장관으로부터 신노사문화사업장으로 지정받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당시 대성쎌틱가스보일러는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1982년 프랑스의 보일러 업체 사포토에모리와 합작 투자 및 기술 제휴로 출범한 이 회사는 초창기에는 순풍에 돛단 듯 항해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역풍을 만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주로 기계식 방식의 가정용 가스보일러를 생산해 왔는데 1990년대 들어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이에 늦게 대처한 것이다. 2년 정도 늦게 전자식 가스보일러 개발에 나서면서 시장을 따라잡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보일러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첨단 제품으로 승부를 걸었어야 했는데 이런 점에서 한발 늦었던 것이다.영남대 기계설계학과를 나와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엔진 부품 설계를 담당했던 고봉식 대표는 유압 제품 업체인 대성나찌(NACHI)유압에 입사한 뒤 2002년 대성쎌틱가스보일러의 음성 공장 공장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회사 전반을 파악한 뒤 이 상태로는 안 된다며 세 가지를 중점 추진했다.첫째,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이다. 변화의 시작은 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 고 대표는 제일 먼저 학습 조직을 만들었다. 제품 및 부품을 모르면 품질이 절대 좋아질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연구·개발(R&D) 직원과 협력 업체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함과 동시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6시그마라는 품질 혁신 활동을 시작했다. 직원들은 출장을 갈 때도 6시그마 관련 책자를 가지고 다니며 공부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잉여 시간에 교육을 실시했다. 이런 직무 교육은 직원들의 혁신 작업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자식들에게 공부하는 부모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직원들은 퇴근 후에도 교육 내용에 대한 시험 준비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둘째, 생산 혁신 활동인 ‘도요타생산방식(TPS)의 도입’이다. 기존의 컨베이어 방식을 모두 없애고 셀(Cell) 라인을 도입했다. 이는 고객의 요구에 정확히 대응할 수 있는데다 손실을 줄여 30%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 특히 전 직원이 작업의 시작과 끝에 외치는 ‘오늘 할 일은 오늘, 지금 할 일은 지금, 해보고 생각하자’는 구호는 변화와 혁신의 모토가 되고 있다.셋째, 첨단 보일러 개발에 나섰다. 기존 방식으로는 시장에서 승부를 거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를 통해 2004년 열효율이 높은 콘덴싱 보일러를 개발했다. 대성쎌틱 ‘S라인 콘덴싱’ 설계는 연소 가스 배출이 원활한 상향식 연소와 내구성을 높인 투룸(Two Room) 방식으로 소음을 줄이고 수명을 늘리는 한편 열효율을 향상시키는 등 3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한 국내 토종 기술이다. 이들 제품에 대해 이 회사는 고효율 에너지 기자재 인증과 유럽안전규격(CE)을 얻었고 에너지위너상도 받았다.이 회사 직원들은 미국 안전 규격인 ETL 획득을 위해 인증 실험이 진행되는 미국의 인증 기관 근처 호텔에서 1년여간 먹고 자며 2008년 마침내 국내 최초로 이 인증을 획득했다. 고 대표는 “S라인 콘덴싱 보일러의 경우 열효율을 높여 가스비를 평균 15~20%, 겨울철에는 최고 35%까지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고 대표는 국내 보일러 시장이 연간 100만 대에 이르고 있지만 더 이상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유럽과 러시아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미국의 경우 순간온수기 시장의 약 90%를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기술면에서 우리가 더 앞섰기 때문에 이 시장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밝힌다. 시장조사를 위해 여러 차례 미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해 시장 동향을 파악했고 소비자들의 기호도 면밀히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순간온수기 딜러들은 가격이 비싸고 설치가 불편한 스테인리스 스틸 연통 대신 싸고 편리한 일반 플라스틱으로 된 연통을 선호하는 것을 알아냈다”고 설명한다. 플라스틱 연통은 쉽게 가공하고 연결할 수 있어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연통은 배기가스 온도가 섭씨 180도의 고온이라도 상관없으나 플라스틱 연통은 섭씨 80도 이하를 유지해야 돼 잠열(潛熱)을 철저히 회수하는 시스템 개발이 선결 과제였다.그는 “1년간의 연구 끝에 이를 개발했고 ETL도 획득했기 때문에 이제는 시장 공략만 남은 상태”라고 밝혔다. 콘덴싱 보일러 개발 기술을 순간온수기에 접목해 비교적 쉽게 개발한 것이다.“유럽은 가스보일러의 본고장”이라고 고 대표는 설명한다. “1980년대에는 초기 유럽 기술을 도입해 제품을 생산했지만 이제는 독자 기술로 유럽에 역수출할 경우 해외시장 개척에 날개를 달 수 있다”며 “조만간 유럽에 제품을 선적할 계획”이라고 덧붙인다. 아울러 “내년 중에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에 보일러 공장도 지을 예정”이라고 덧붙인다. 러시아 경제가 살아나면서 새로운 거대 시장을 떠오르고 있어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겠다는 것이다.대성쎌틱가스보일러의 지난해 매출은 약 500억 원 수준이다. 이 중 85% 이상을 가스보일러에서 올리고 있으며 나머지는 실내온도조절기 각방온도제어시스템 환기시스템 등 기타 제품에서 올린다. 한마디로 가스보일러 전문 업체라고 할 수 있다. 또 매출은 국내 시장에서 90%, 해외시장에서 10%를 각각 올리고 있는데 앞으로 해외 비중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고 대표는 기계설계를 전공한데다 오랫동안 한·일 합작 법인인 대성나찌유압에서 몸담았던 경험을 살려 기술 개발과 품질 향상, 그리고 철저한 서비스라는 제조업체의 기본 3박자를 아주 중시한다. 이 중 서비스의 경우 일반 기업들이 애프터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는데 반해 그는 비포 서비스(before service)를 강조한다. 고객들의 보일러를 미리 점검해 주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한 ‘제품 이력관리제’를 운용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완제품 보일러 생산자 및 일자 해당 제품에 사용된 부품의 생산 업체, 그리고 누구에게 판매됐는지 등이 컴퓨터에 의해 모두 관리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를 토대로 어느 부품의 교환주기가 되면 미리 방문해 비포 서비스를 실시해 준다”고 덧붙인다.그는 “가스보일러는 외관으로 볼 땐 간단한 제품 같지만 24시간 365일 사용되는 제품이어서 고장이 나면 안 되는데다 기계 전기 전자 제어 기술이 종합된 메커트로닉스 제품”이라며 “앞으로 해외시장에서 세계적인 메이커들과의 불꽃 튀기는 싸움에서 승리해 한국 제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고 포부를 밝힌다.약력:1958년 진해 출생. 84년 영남대 기계설계학과 졸업 및 대림자동차 입사. 88년 대성나찌유압 입사. 2002년 대성쎌틱가스보일러 공장장. 2005년 대성쎌틱가스보일러 대표이사(현). 수상;산업자원부 장관 표창(2회).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