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이 주택 시장에 미치는 영향

남태평양에 살기 좋은 섬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에는 집이 딱 1000채만 있고 이 섬에 유통되는 돈은 1000억 원만 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집을 사는 데만 돈이 들어간다고 가정해 보자. 이 섬나라의 평균 집값은 1억 원(=1000억 원÷1000채)이 될 것이다.그런데 이 섬나라에 희귀 광물이 발견되고 수출이 늘면서 섬나라의 부가 늘어나게 됐다. 10년의 세월이 흐르자 이 섬나라에서 유통되는 돈은 2500억 원으로 늘어났다. 그러면 집값은 어떻게 되었을까. 평균 집값은 시차를 두고 자연스럽게 2억5000만 원으로 올라 있을 것이다.누가 집값을 올린 것일까. 집 소유주가 집값을 올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집을 오래전부터 소유한 것 이외에 아무런 일도 한 것이 없다. 반대로 집을 산 사람이 올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도 집값이 내리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일부러 집값을 올릴 이유가 없다.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섬나라에 유통되는 돈이 많아지자 각자의 주머니 사정이 이에 비례해 좋아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 입지가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려는 욕구가 생기게 된다. 이때 주택의 수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경쟁적으로 매수에 나서게 돼 가격이 오르게 된 것이다. 결국 집값을 올린 주범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불리는 시장의 기능이다. 공급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의 유동성 증가는 바로 집값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현실의 세계로 돌아와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유동성이 얼마나 늘었는지 살펴보자. 시중에 돈이 풀리는 정도를 측정하는 유동성 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현금 통화와 결제성 예금의 합을 말하는 M₁(협의 통화)이라는 개념도 있고 M₁에다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2년 미만의 정기예·적금 등 금융 상품을 포함한 것을 M₂(광의 통화)라고 한다. 시중에 얼마나 돈이 풀렸는가를 이야기할 때는 보통 M₂ 지표를 많이 사용한다.M₂ 기준으로 볼 때 10년 전인 1997년의 평균 잔액은 482조4379억 원이었던 것이 2007년에는 1197조948억 원으로 148%가 늘었다〈표1〉. 앞서 예로 든 1000억 원의 통화량이 10년 만에 2500억 원이 됐던 섬나라와 비슷한 유동성 증가를 보인 것이다. 1997년에 1억 원짜리 자산을 취득했다고 하면 2007년에는 이 자산이 2억4800만 원은 되어 있어야 본전을 한 셈이다. 그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그 자산이 주식일 수도 있고 부동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주식의 경우 변동성이 크므로 어떤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상승률을 계산하는 것은 작의적일 가능성이 높다. 예로 1997년 초에 투자해 2007년 초에 판 경우 수익률은 120%에 불과하지만 1997년 말에 사서 2007년 말에 판 경우 수익률은 무려 404%에 이른다.그러므로 이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 매월 고가와 저가의 평균을 내어 1년간 평균치를 구해 보자. 이를 기준으로 보면 1997년도에 유가증권시장(KOSPI)에 투자했다면 10년이 흐른 후 159%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통화량 증가율 148%보다 약간 상회하는 수치다. 이 정도라면 자신의 자산을 잘 지켜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부동산 시장에서도 어디에 투자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같은 기간 전국 주택의 상승률은 42%에 그쳤지만 서울 지역 아파트에 투자했을 때 상승률은 137%에 이른다. 돈 가치가 떨어진 것 이상의 수익을 거둔 것이다. 이렇듯 유동성 증가는 자산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그러면 이러한 유동성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인가. 7월 9일 발표된 한국은행의 통화 및 유동성 지표 동향에 따르면 2008년 5월의 M₂는 1356조6129억 원으로 1년 전인 2007년 5월의 1171조1484억 원에 비해 15.8%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표2〉. 이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시중에 자금을 많이 풀었던 1998년의 23.7%와 1999년의 13.6%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참여 정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토지 보상금 등도 원인이지만 최근에는 국내외 금리차로 인한 국제 자본의 유입이 그 원인이 되고 있다. 시중은행이 외화를 단기 차입해 시중에 돈을 푸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해외에 본점을 둔 외국계 은행의 경우는 자연스럽게 외화를 유입할 수 있다.외국 기관투자가의 경우 조달 원가가 싼 자금을 가지고 들어와 채권 등 안전 자산에 투자하더라도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대내외 금리차가 크면 클수록 외국 자본의 유입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그러면 이런 유동성 증가가 주택 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시중에 유동성이 증가한다고 해도 이 자금들이 단기간에 주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기에는 제약 사항이 많다. 그 이유는 2007년 초부터 강화된 금융 규제 때문이다. 과거에는 담보물의 가치에 따라 대출을 해주는 LTV(Loan To Value)만 규제 대상이었기 때문에 담보물의 가치가 늘면 따라서 대출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시중의 흘러넘치는 유동성이 주택 시장으로 흘러들어가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돈을 빌리는 개인의 상환 능력까지 고려하는 DTI(Debt To Income)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에 담보 가치가 충분해도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1996년의 25%부터 시작해 2006년의 38.5%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났던 평균 LTV가 DTI 규제가 시작됐던 작년에는 오히려 35.9%로 급격하게 줄었다〈표3〉. 이런 현상은 DTI 규제 때문에 대출 한도만큼도 대출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그러므로 현 상황 하에서는 금융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넘쳐나는 자금이 직접적으로 주택 시장으로 들어가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은행의 입장에서는 대출을 통해 수익이 생기게 되므로 보다 공격적인 영업을 강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규제가 많은 주택 담보 대출 시장보다는 중소기업 법인 대출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에 대한 신용 대출 비중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출을 받기 어려운 일반 봉급생활자와 대출이 상대적으로 쉬운 전문직 종사자 간 자산 취득 차별화로 이어지게 돼 훗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이런 시점에서는 자신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채가 많은 사람은 이자가 높은 악성 부채를 갚아나가야 하겠지만, 부채가 없는 사람은 돈 가치 하락에 대비한 헤징 수단으로서의 자산 취득에 대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마케팅 회사의 최고재무관리책임자(CFO)로 재직 중이며 국내 최대 부동산 동호회인 ‘아기곰동호회’의 운영자이자 저명한 부동산 칼럼니스트다.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는 객관적인 사고와 통계적 근거를 앞세우는 과학적 분석으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기조를 정확히 예측한 바 있으며 기존의 부동산 투자 이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최근 신간 ‘부동산 비타민’을 내놓았다.아기곰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