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필요한가

올해만 해도 우리는 정부와 기업들이 다양하고 끊임없는 위기 상황들과 맞닥뜨리는 것을 목격했다. 또한 그들이 각각 어떻게 대응해 실패하고 또한 살아남는지 생생히 바라보고 있다.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조직들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위기관리는 중요하다.‘어떤 위기라도 언제든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위기관리 실무자들이 항상 간직해야 할 기본 철학이다. 우리는 ‘위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사실 모른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 것을 알지만 그 죽음의 시간이 언제 다가올지는 정확히 모르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을 전문 용어로 ‘알려진 무지(known unknowns: 항공기가 추락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추락할지는 모르는 것)’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것은 신의 영역이 아니기에 미리 대비(prepared)할 수 있다는 것이 위기관리의 핵심이다.올해 우리 정부는 연이은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엄청난 위기 상황을 맞았고, 이후 금강산 총격 사건, 일본의 독도 관련 움직임까지 연이은 위기 상황과 맞닥뜨리고 있다.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 정부는 반복된 대응 능력 부재와 실수들로 관리 역량을 계속 상실하고 있다.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 확보라는 명제는 이미 지난 여러 정부에서도 위기 때마다 공통적으로 회자됐던 이슈다. 하지만 실제로 위기관리 시스템이 작동돼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사례는 너무나 찾기가 힘들다. 최근 대통령은 ‘위기관리를 위한 통합적인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이 또한 언제쯤 실현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식품 업계 기업들에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연초부터 연이어 터진 각종 이물질 사건들과 식파라치들의 활동, 그리고 유전자변형식품과 각종 가격 인상 이슈들이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소비자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기업들의 품질 관리 의식, 위기 대응의 방식, 적절하지 못한 대응 기조, 늦은 대응 타이밍, 그리고 나아가 해당 기업들의 철학들을 이야깃거리로 삼고 있다.일부 기업들은 네티즌들의 공격과 근거 없는 루머들에 대해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까지 하는데, 분명 이는 기업 전체가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선행됐더라면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상황으로 발전했을 이슈는 아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많은 정부 부처들과 기업들의 위기 사례들을 분석해 보고, 그들 실무자들에게 카운슬링을 해 보면 전반적인 문제는 ‘위기관리를 잘했다, 못했다’라는 기술적·결과적인 부분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전에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직 내에 정확하게 존재하는가’라는 것과 ‘발생한 위기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기업의 철학이 투영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생긴다.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위기관리는 선택의 차원이 아니다. 위기는 기업 및 조직의 철학과 명성을 시험하는 계기이며 이런 계기는 항상 언제든 또는 반복적으로 생겨난다. 적절한 위기관리에 실패한 주체는 부실한 철학과 명성을 가진 기업이나 조직으로 전락된다.위기관리는 어떤 조직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무 순위로 꼽혀야 마땅하다. 관심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는 위기를 발생시킬만한 이슈들에 대한 관심이다. 최고경영자(CEO)의 가장 큰 임무가 무엇인가. 필자가 생각하는 CEO의 가장 큰 임무는 ‘회사를 잘되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그러면 위기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잘못된 위기관리는 곧 매출을 떨어뜨린다. 주주를 실망시키고 직원을 불행하게 하고 소비자들을 화나게 한다. CEO의 임무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이 위기다. 이 의미는 위기를 관리하지 못하는 CEO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뜻이다.그렇다면 위기는 CEO로부터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일까. 하지만 휴렛팩커드(HP)의 칼리 피오리나, 닛산의 카를로스 곤, 크라이슬러의 아이아코카 등 뛰어난 CEO들은 빨간 불이 켜진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구원투수’처럼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있다. 만일 대부분의 CEO들이 위기를 사랑할 수 없다면 적어도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경영상의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새로운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이유는 충격요법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기존 정책이나 사업의 실패는 단순한 경영자 개인의 실수라기보다 조직적인 실패일 경우가 많다. 실패한 사업이나 정책이라도 담당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예산이 투입됐을 것이다. 그러나 어지간한 실패나 실수에 대해서도 조직은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온정주의 성향이나 객관적인 평가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로운 CEO는 취임하면서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 및 제도 정비를 파격적으로 단행하는 경우가 많다.일반적인 위기는 CEO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고치지 못하는 조직의 문제점들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세무, 회계, 유통, 영업 부문 등에서 오랫동안 당연시돼 온 회사나 업계의 잘못된 관행일 수도 있고 조직 내의 뿌리 깊은 파벌, 의사소통 부족일 수도 있다. 많은 경우 이러한 문제점들이 위기 상황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CEO들은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기존 질서의 반발이 크게 약화되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새로운 ‘변화’와 ‘학습’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CEO들에게 위기는 ‘타성’에 젖은 기업을 변화시키기 위한 아주 중요한 ‘기회’가 되는 것이다.이전 정부나 기업들의 위기관리는 대언론 위기관리에 편중돼 있었다. 부정적이거나 불필요한 여론을 미연에 방지하고 사전에 제거하는데 역량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국민들이나 소비자들의 소통 환경은 이전의 그것과 크게 달라졌다. 개인 미디어가 생겨났으며 기존 언론의 하루 단위의 뉴스 생산 주기가 초 단위로 단축됐다. 이 의미는 정부나 기업이 보유하던 예전 형식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이제는 효과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다.김경해·한국위기관리전략연구소장 kyonghae@com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