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 긴장시키는 반독점법

“중국 기업들이 반독점법 시행에 맞춰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 반독점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MS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사무용 소프트웨어인 오피스의 가격을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상하이증권보)“세계 최대 철광석 업체 BHP빌리턴이 경쟁사인 리오틴토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반독점법이 와일드카드(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될 것이다. 중국은 전 세계 철광석의 절반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BHP빌리턴은 이미 인수 관련 서류를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에 이어 중국 당국에도 제출했다.”(AP통신)중국이 오는 8월 반독점법을 시행하기로 하면서 다국적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의 경쟁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반독점법은 한국은 물론 시장경제를 도입한 대부분의 선진국에 있는 법률이다. 하지만 중국의 반독점법은 공무원에 지나치게 많은 재량권을 부여한데다 제재 강도가 강하고 불투명성까지 더해 다국적 기업들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 반독점법은 57개 조항으로 대부분이 지나치게 단순해 운용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반독점법 시행 이전에 시행세칙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왕샤오예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는 지적까지 나온다.“중국의 반독점법은 불투명한 게 문제다. 중국 기업을 보호하고 외국 기업을 차별할 우려가 있다.” 미국 관리들이 지난 6월 미국을 방문한 왕치산 중국 부총리에게 쏟아낸 불만은 외국 기업들이 중국 반독점법에 갖고 있는 생각을 보여준다. 국영 경제 보호를 예외 조항으로 두고 있어 공무원의 자의적 집행에 의한 외국 기업 차별이 우려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이석준 율촌 변호사는 “산업 육성을 담당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상무부가 반독점법을 집행하도록 해 반독점법이 산업 정책에 밀려 외국 기업에 차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의 지식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많이 경쟁하는데 중국의 반독점법 체제는 이들 부처 업무를 1개 부처에서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난센스”라고 지적했다.중국의 반독점법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부당한 공동 행위(카르텔), 기업 결합(M&A 등) 등을 다루고 있다. 반독점법 시행으로 현지 마케팅 차질이 예상되는 다국적기업은 시장점유율이 높아 시장 지배적 지위를 가진 사업자들이다. △한 사업자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거나 혹은 △2개 사업자가 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3개 사업자가 4분의 3 이상을 차지할 경우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 운영 소프트웨어(OS) 시장의 95%를 장악하고 있는 MS의 윈도를 비롯해 코닥의 감광재, 인텔의 CPU, 미쉐린의 타이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부당하게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낮은 가격으로 구매, 정당한 이유 없는 염가 판매나 거래 거절 또는 끼워 팔기와 차별 대우 등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를 한 경우 제재를 받게 된다. 한국은 하이닉스의 D램(55%)과 삼성전자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46.4%) 모니터(33.1%) MP3플레이어(32.9%) 등을 제외하곤 시장점유율이 높은 경우가 적어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걸릴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하지만 이 변호사는 “중국도 다른 나라 공정거래법처럼 담합에 대해 역외 적용 조항을 둬 한국에서 적발된 카르텔을 중국에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중국에서의 시장점유율이 낮더라도 한국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사업자들끼리 상품 가격을 담합하거나 생산량 또는 판매량을 제한하는 행위를 했다가 문제된 경우 중국 반독점법에 따른 규제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대상국으로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은 4만6000여 개에 이른다.박제현 공정거래위원회 사무관은 “반독점법 시행을 계기로 가격법과 반부정당경쟁법 등 관련 법도 엄격히 집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중국 당국은 이마트와 까르푸를 상대로 최근 리베이트 조사를 강도 높게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중국 반독점법은 외국 기업에 의한 인수·합병(M&A) 시 합병 후 점유율이 25%가 넘어가거나 국가 안보에 우려가 있는 경우 심사를 받도록 해 다국적기업의 M&A에 제동을 걸 수 있게 했다. 국가 안보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공무원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에 따라 3년 전 미국의 칼라일이 중국의 국영 기계 장비 업체 쉬공을 30억 위안(45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하고도 경제 애국주의에 부닥쳐 아직까지도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한 것과 같은 사례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 인수를 통해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중국의 반독점법은 제재 수준도 한국보다 훨씬 강하다. 감독 당국은 담합 행위의 중지 명령은 물론 위법한 소득의 몰수 조치를 취하며, 동시에 전년도 매출액의 1% 이상 10%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담합으로 얻은 불법 이익을 ‘몰수’한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국내에는 이 같은 몰수제가 도입돼 있지 않다. 과징금 산정 기준으로 ‘(담합행위) 관련 매출액’이 아닌 ‘전년도 (전체)매출액’을 적용한다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막대한 과징금은 기업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당해 법위반 행위로 얻은 소득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박 사무관은 “관련 매출액의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한국에 비해 훨씬 강력한 조치”라고 지적했다.이와 함께 과징금 ‘1%’ 이상은 무조건 부과된다는 최소액 규정은 담합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한 단속 의지를 보여준다. 각 나라별로 과징금의 상한선은 마련돼 있으나 최저한도는 정해져 있지 않다.조사 권한도 한국보다 강하다. 반독점 집행 기구에 임의조사권만을 인정하는 한국과는 달리 증거 자료의 압류, 회계장부 및 은행 계좌 조사권 등 강력한 현장 조사권을 부여하고 있다. 법원의 허가 없이도 강제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물론 중국의 반독점법은 행정 독점도 금지하도록 해 지방 보호주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중국에서는 지방 정부가 자기 지역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장벽을 쌓아 왔으나 이 같은 행위가 금지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으로 한국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 기회도 늘어날 수 있다(이 변호사)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반독점법은 중국이 기본적으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전했음을 보여준다”(왕 연구원)는 평가도 있다. 어쨌든 중국 시장의 경쟁 룰을 바꿀 반독점법에 한국 기업들도 세심한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