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페달 밟는 금융허브 경쟁
‘홍콩과 선전 손잡고 파생상품 거래소 공동개설.’ ‘상하이 금융 인재를 위해 1만 채 아파트 건설.’ ‘베이징 국내외 금융회사 본부 유치.’ ‘톈진 금융 개혁 시범구 지정.’중국에서 아시아의 월가를 꿈꾸는 도시들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금융 허브 경쟁의 선두는 홍콩이다. 하지만 상하이가 국제 금융 도시로 급부상하고 베이징과 톈진까지 도전장을 내자 위협을 느낀 홍콩은 중국 남부 광둥성의 선전과 손잡고 금융 허브 위상 굳히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 경제특구 1호인 선전도 홍콩과의 금융 협력을 통해 상하이에 밀린 금융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6월 1일 시행에 들어간 ‘선전 경제특구 금융 발전 촉진 조례’를 보면 홍콩과 선전의 협력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온다. 양측은 증권거래소 간 협력을 강화하고 금융회사 교류를 촉진하며 금융 선물 등 금융 파생상품 시장과 석유선물거래소를 공동 개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쉬종헝 선전시 시장은 “더 많은 홍콩 금융회사들이 운영본부를 선전에 두도록 유치하는 한편 양 도시의 증권거래소 회원(증권사)을 상호 인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국은행 홍콩본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연내 선전 증권거래소에 개설될 것으로 유력한 창업판(중국판 코스닥) 시장을 홍콩의 창업판 시장과 합병하는 등 홍콩과 선전을 중국 최대의 직접 금융 센터로 키워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이에 대해 선전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홍콩 증권거래소는 상장사인 반면 선전증권거래소는 국유 기업이기 때문에 합병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금융 상품 공동 개발 등 협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홍콩과 선전의 금융 통합은 중국 중앙정부의 비준을 거쳐야 한다. 양측은 광둥성의 당서기를 지낸 장더장 산업담당 부총리가 힘이 돼 줄 것으로 기대한다.이에 앞서 베이징은 지난 5월 초 국내외 금융회사 본부를 중점 유치하고 상품 및 지식재산권거래소를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도 금융업 발전 촉진 의견’을 작성,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제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상하이가 새로운 라이벌을 맞이하게 됐다고 평가할 만큼 베이징은 국제 금융 도시로의 변신에 적극적이다. 베이징시는 ‘1주1부3신4후(1主1副3新4後)’의 원칙으로 금융 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현재 국내외 금융회사의 총본부가 모여 있는 베이징 금융가를 핵심지역(1主)으로 하되 베이징 중심상업지역(CBD)을 금융가를 뒷받침하는 금융 비즈니스 중심지역(1副)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중관춘 신흥교통지구 과학기술지구 등 3개 특화 지역에 금융 서비스를 강화하는 한편 퉁저우 등 베이징 외곽 4개 지역에 금융산업지원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베이징시는 CBD에 진출하는 국내외 금융회사에 최대 1000만 위안(15억 원)까지 지급하는 지원금을 상향 조정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베이징시의 방침에 따라 중국 최대 증권사인 중신증권이 본사를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21세기경제보도가 최근 보도했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본부도 베이징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대부분 상업은행보다는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등의 업무를 주로 하는 투자은행(IB)들이 많다. 씨티그룹과 스탠다드차타드를 포함, 중국 개인 대상 위안화 업무를 허가받은 9개 외국계 은행의 법인이 상하이에 있는 것과 달리 중국에서 IB에 주력하는 JP모건과 도이치뱅크가 중국 총본부로 베이징을 택한 게 이를 말해준다. 쏘시에떼제네랄도 올 4분기 베이징에 총본부를 두기로 했다. IB들이 베이징을 선호하는 이유는 업무상 자주 접촉해야 하는 중국의 금융 당국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소유의 대형 국유 기업 수가 100개가 넘어 잠재 고객이 많은 것도 이점이다. 이들 기업은 IPO를 계획하고 있거나 M&A를 통해 덩치 키우기에 나서고 있어 IB에 커다란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베이징시는 금융 본부 유치뿐만 아니라 석유거래시장과 목화거래시장을 개설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출판 음반 영화 등의 판권 거래까지 거래할 수 있는 지식재산권거래소도 설립하기로 했다. 중관춘에 일종의 주식명의개설소도 설립, 벤처 기업에 대한 금융 서비스를 활성화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베이징시는 건설은행장 출신으로 베이징 시장을 지낸 왕치산 금융담당 부총리가 든든한 ‘빽’이다톈진시도 금융 허브 경쟁에 가세한 상태다. 특히 중앙정부가 4대 국유은행의 종합본부를 톈진으로 이전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질 만큼 톈진의 금융 산업은 국가 차원에서 육성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톈진 빈하이신구를 금융개혁시범구로 지정하고 시기는 미정이지만 주식장외시장(OTC)을 개설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위안화 자유화의 첫 번째 실험 지역으로 톈진이 거론되기도 한다.또 현재 보류 상태이지만 홍콩 증시에 대한 직접 투자도 우선 톈진 주민에 허용하기로 하는 등 톈진을 특별 대우하고 있다. 여기엔 톈진이 고향인 원자바오 총리의 지원이 컸다는 후문이다. 특히 지금은 사회보장기금 이사장으로 물러났지만 인민은행 총재 출신의 다이샹룽 전 톈진시 시장의 영향력도 도움이 됐다.상하이도 최근 금융 인재가 금융 허브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보고 이들이 머무를 아파트 1만 채를 짓는다는 구상을 밝혔다. 상하이는 이미 중국에 들어온 외국계 은행 가운데 절반이 진출할 만큼 대륙에서는 최고의 금융 허브로 부상한 상태다. 정영록 서울대 교수는 “상하이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이미 아시아 지역의 금융 중심 역할을 했었다”고 말했다. 상하이의 금융 허브 부상이라기보다는 ‘부활’이 맞는다는 얘기다. 실제 상하이는 세계적 금융회사인 HSBC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HSBC는 영국 자본을 위주로 한 외국계 자본가와 상하이의 토착 유지들이 연합해 1863년 상하이에 세웠다.상하이 개혁 개방의 상징인 푸둥 개발이 진행되면서 동시에 금융 산업이 함께 육성된 것도 이 같은 역사적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 상하이의 11차 5개년 계획(2005~10년)에서도 이미 상하이는 단순한 제조 중심보다는 금융과 물류 중심지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특히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꼽히는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적극 밀어주고 있다는 후문이다.시 부주석은 상하이 당서기였던 지난해 6월 “상하이를 국제금융센터로 키우는 것은 필수적인 국가 전략”이라고 강조하고 “5년 내 기초를 다지고, 10년 내 틀을 마련한 후 20년 내 국제금융센터로 성장시킨다”는 장기 전략을 제시했었다. 상하이는 또 물류 중심지로서의 부상이 국제 금융 허브의 위상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류 중심지에 입주할 국내외 해운 업체들은 보험업계에 큰 시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경제권인 창장삼각주를 배후로 하고 있는 것도 상하이의 금융 허브 위상을 강화하는 요인이다.물론 중국은 아직도 위안화의 자유 태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홍콩을 제외하곤 중국에서의 월가가 국제 금융 허브로까지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위상이 커지고 위안화 자유화도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가능성은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영록 교수는 “중국은 2015년께면 경제 규모가 지금의 2배로 커져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그때쯤이면 자본 거래 자유화도 상당히 진척돼 상하이가 세계 3대 금융 허브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