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에 부는 ‘녹색바람’

중국 자동차 시장에 신에너지를 내세운 ‘녹색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배럴당 130달러가 넘는 고유가 시대로 접어들면서 에너지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데다 올해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계기로 자동차에 의한 환경오염 문제가 집중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베이징의 경우 올림픽이 열리는 8월까지 자동차 보유 대수가 3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루에 1000대 이상의 신차가 베이징의 거리로 나오고 있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한다. 특히 중국에서 자동차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16%를 차지하지만 일산화탄소의 80% 이상, 산화질소의 40% 이상을 배출하는 오염원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달리는 자동차는 현재 3800만 대에 불과하지만 자동차 보급률이 미국 수준으로 높아지면 전 세계에서 굴러다니는 자동차가 지금의 2배 수준에 달해 환경에 커다란 재앙을 안길 수 있다(일본 NHK)는 지적도 나온다.중국 지도부가 입에 달고 다니는 경제 성장 방식의 전환 키워드가 바로 에너지와 환경오염 감축이다. 이미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국내총생산(GDP)당 에너지 소모량을 4%씩 감축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하지만 지난해 GDP당 에너지 소모량은 실제 전년보다 1.2% 줄어드는데 그쳐 목표치에 크게 미달했다. 중국 정부가 관련 정책을 내놓고 국내외 기업들이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신에너지 자동차의 개발과 생산에 앞 다퉈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미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녹색 자동차가 또 하나의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신에너지 자동차는 연료 전지 자동차, 전기 자동차, 수소 자동차,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이 개발되고 있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하이브리드 자동차라는 게 자동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의 자동차 컨설팅 회사인 사이노트러스트의 쑨치 애널리스트는 “올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해가 될 것”이라며 “지금 당장 에너지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아마도 휘발유과 전기를 동력원으로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에너지 소모량을 10~50% 줄인다.선두 주자는 세계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까지 석권하고 있는 일본의 도요타다. 도요타는 지난 2006년 1월 중국에 자사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를 선보였다. 높은 가격 때문에 지금까지 판매된 프리우스는 3000대에도 못 미치지만 향후 전망은 밝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이 때문에 중국 토종 업체들도 앞다퉈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 4위 자동차 회사인 창안자동차는 작년 12월 토종 업체로는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자동차 양산에 나섰다. 6년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개발된 이 자동차는 조만간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중국 과학기술부는 창안자동차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해 엔진과 하이브리드 동력 시스템에 대해 중국 기업이 특허를 갖게 됐다며 중국이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핵심 기술을 마스터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슈류핑 창안자동차 사장은 “중국 정부의 첨단 기술 연구 프로젝트인 863플랜의 일환으로 추진된 전기 자동차 개발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라고 말했다. 이 자동차는 연료 소모량을 20% 줄이고, 배출가스 기준도 중국에서 가장 엄격한 표준 4를 만족시킨다.치루이자동차도 이미 우후시의 택시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시험 운행 중으로 올 하반기에 이 차량을 정식 출시할 계획이다. 치루이는 특히 신에너지 자동차 개발을 위해 중국 최대 정유 업체인 시노펙과 제휴를 맺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휴대전화 전지 업체에서 자동차 업체로 변신한 BYD자동차 역시 올 하반기에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 자동차 가격은 15만 위안(2250만 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리자동차와 창청자동차도 이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창청자동차는 메탄올로 달리는 자동차를 비롯해 4개의 신에너지 자동차 프로젝트를 진행 중으로 내년에 모두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중국 언론들은 신에너지 자동차들이 전시회장에서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한다.중국 정부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국에서 정부 주도의 신에너지 자동차 프로젝트는 개혁 개방 직후인 1983년 산시성에서 시작한 메탄올 자동차 프로젝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아직도 메탄올 국가 표준이 없을 만큼 지지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잇따라 하이브리드 자동차 육성을 위한 정책을 내놓은데 이어 지난 5월 30일엔 정부 내에서 신에너지 자동차 발전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여기엔 도요타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PSA 등 4개 다국적기업 관계자들도 참가했다.이와 함께 최근엔 7개의 신에너지 자동차 모델의 생산을 승인했다. 올림픽 기간 달릴 상하이GM 파사트 모델의 연료 전지 자동차를 비롯해 승용차가 3개 모델이고 나머지는 버스 등 상용차였다. 또 올 하반기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해 취득세를 면제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17%의 부가가치세를 낸 뒤 자동차 가격의 10%를 내야 하는 취득세를 면제하는 것. 상하이시 정부는 2010 상하이 엑스포 전시장을 배출가스 제로 지대로 만든다는 계획 아래 이미 상하이자동차 등과 공동 개발한 수소 전지 자동차를 일부 지역에서 시험 운행하고 있다.중국 정부가 신에너지 자동차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에너지 절감과 환경오염 감소라는 과제 외에도 최근의 유가 급등으로 인해 사회 불안 조짐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중국 베이징 주요 순환도로나 고속도로는 주유소마다 트럭들이 기름을 넣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면서 교통 체증까지 유발되고 있다. 특히 베이징 외곽의 개인 직영 주유소들은 정부가 휘발유나 디젤유 가격을 올릴 수 없도록 가격 통제를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름 값을 30% 이상 불법 인상, 운전자들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베이징 주요 도로변 주유소 직원들은 기름을 넣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트럭 운전사들에게 “디젤유가 없다”면서 차량들을 돌려보내고 있다고 인민일보가 최근 보도했다. 그러나 트럭 운전사들은 “다른 주유소도 사정이 마찬가지”라며 “차 안에 기름이 없어 다른 주유소로 갈 수도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기름을 넣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10일 전부터 주유소를 찾아도 기름을 넣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면서 “기름을 넣기 위해 아예 주유소 입구에 차를 세워 두고 밤을 지새운다”고 하소연했다.이에 대해 주유소들은 공급받는 기름 자체가 턱없이 부족해 방법이 없다면서 차량 1대당 최대 200위안(3만 원)어치까지만 기름을 넣어주는 제한 판매제를 실시하고 있다. 트럭으로 화물을 운송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개인 사업자들은 “예전에는 하루에 운송할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기름이 없어 4일이 걸린다”면서 “수입이 4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전사들은 “낮에는 장거리를 뛰고 밤에는 주유소에서 밤을 새운다”면서 “운송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베이징시에 공급되는 생활필수품이나 공산품 가격도 뛰고 있다”고 말했다.이와 관련, 시노펙 대변인은 “전체적으로 디젤유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여름철 디젤유 수요가 늘어나면서 개별 주유소별로 일부 문제가 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노펙 직영 주유소 직원들은 “최근 국제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가격 인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면서 “어떤 기업이 손해를 보고 기름을 팔겠느냐”고 반문했다. 중국 경화시보는 베이징 외곽의 주유소들이 리터당 판매가가 최고 5.29위안으로 제한된 디젤유를 리터당 6.8위안에 판매하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시노펙 직영 주유소 앞에 장사진을 이룬 트럭이나 버스 운전사들은 “주요 도로변의 개인 직영 주유소들은 디젤유를 리터당 6.2∼6.4위안에 팔고 있다”고 전했다. 디젤유 주유난은 지난달 하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한 이후 극심해지고 있으며 국제 유가 소폭 하락에도 주유소 줄 서기나 판매 제한 현상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중국의 양대 석유 업체인 페트로차이나와 시노펙이 최근 석유 제품의 수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것도 이 같은 휘발유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단기적인 해결책일 뿐 근본적인 방안은 신에너지 자동차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중국에 녹색 자동차 바람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