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시장 빅뱅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통신 시장에 빅뱅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지난 3년을 끌어 온 통신 산업 재편안이 지난 5월 24일 모습을 보인 것. 6개의 통신 회사를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 차이나텔레콤 등 3개사로 재편하는 게 골자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재정부 등 3개 부처는 공동 명의로 발표한 이번 성명에서 통신 산업 재편과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라이선스 발급을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3개사로의 재편이 끝나는 대로 3장의 3세대 이동통신 라이선스를 발급하기로 한 것. 중국 통신 산업 역사상 4번째 재편안이지만 그 파급 효과는 예전보다 훨씬 클 것으로 관측된다.이번 통신 산업 재편은 2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하나는 차이나모바일이 독주하다시피 한 중국 통신 서비스 시장의 구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통신 장비와 단말기 업체들에 커다란 3세대 시장이 창출된다는 것이다.중국 통신 산업은 이미 고정 전화에서 이동전화로 주도권이 빠른 속도로 넘어가면서 차이나모바일의 독주 체제가 가속화돼 왔다. 중국은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4월 말 현재 5억8350만 명으로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올 들어 4개월간 늘어난 이동전화 가입자는 3620만 명에 달하지만 고정 전화 가입자는 540만 명으로 되레 줄었다. 이 같은 추세는 중국 최대 이동통신 업체인 차이나모바일의 입지를 더욱 강화해 왔다. 차이나모바일의 가입자 수는 3억9960만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지난해 차이나모바일이 거둔 순익은 871억 위안(13조650억 원)으로 2위 이동통신 사업자인 차이나유니콤과 중국 1, 2위 유선통신 사업자인 차이나텔레콤 및 차이나넷콤 등 3개사의 순익을 합친 것보다 2배를 웃돈다. 덕분에 차이나모바일은 최근 2년간 주가가 3배 뛰면서 제너럴일렉트릭(GE)과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시가총액 기준 세계 4위 기업으로 올라섰다.하지만 차이나모바일이 중국 이동통신 가입자의 70%를 장악할 만큼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다른 업체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결국 중국 당국은 3년간의 논의 끝에 “건전한 시장 경쟁과 독점 방지”를 내세워 3개사로의 재편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 방식 전환의 키워드인 ‘균형 발전’이 통신 산업 재편 논리이기도 한 셈이다.이번 재편으로 차이나모바일은 중국철도통신을 인수하고 유선통신을 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갖게 된다. 차이나텔레콤은 차이나유니콤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사업부와 중국 위성통신을 인수하게 된다. 차이나유니콤의 CDMA사업부는 가입자 수가 4300만 명으로 골드만삭스는 최근 1110억 위안(16조6500억 원)의 가치를 가질 것으로 추정했다. CDMA 사업을 매각하게 된 차이나유니콤은 유럽식 GSM 사업부와 차이나넷콤을 합치는 식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에 따라 통신 업계는 유무선 통신 사업을 하는 3개의 전국구 기업으로 재편한다는 게 중국 당국의 설명이다. 통신 시장의 재편은 대륙 시장을 노크해 온 글로벌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현재 한국의 SK텔레콤과 영국의 보다폰, 스페인의 텔레포니카 등 3개 통신 서비스 회사만이 중국 시장에 진출한 상태다. SK텔레콤은 중국이 독자 개발한 시분할연동 부호분할다중접속(TD-SCDMA) 기술의 핵심 기업인 중국 다탕이동통신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며 6.6%의 지분을 보유한 차이나유니콤을 통해 3G 이동통신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5월 28일 베이징 중관춘에 위치한 한·중 이동통신 서비스 개발센터에서 3세대 기술을 이용해 한·중 간 영상통화를 시연함에 따라 SK텔레콤의 중국 통신 사업은 탄력을 받게 됐다. SK텔레콤은 지난해 TD-SCDMA 개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데 이어 이 기술 개발을 위한 ‘한·중 이동통신 서비스 개발센터’를 설립하는 등 중국 3G(세대) 서비스 상용화에 적극 참여해 왔다. 이번 통신 산업 재편이 3세대 서비스를 위한 정지 작업인 만큼 SK텔레콤으로서는 호재가 겹친 셈이다. 문제는 SK텔레콤이 어떤 기술로 중국 3세대 시장을 공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차이나모바일에 TD-SCDMA, 차이나유니콤에 WCDMA, 차이나텔레콤에 CDMA2000이라는 3세대 이통 라이선스를 발급할 것으로 보인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들 3개 기술 능력을 모두 갖고 있다고 내세우지만 한국이 가장 먼저 상용화한 CDMA에서 발전한 CDMA2000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다른 경쟁 업체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는 WCDMA 서비스를 할 것으로 보이는 차이나유니콤이다. 홍콩 언론들은 SK텔레콤이 차이나유니콤의 지분을 팔고 차이나텔레콤의 지분을 인수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건 없다.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이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통화 시연을 한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은 규모나 발전 속도 면에서 무한한 성장성을 보이는 세계 최대의 통신 시장”이라며 “SK텔레콤은 중국의 3세대 기술 표준인 TD-SCDMA는 물론 4세대까지 포함하는 차세대 기술 표준의 공동 연구 개발에 협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차이나유니콤과의 협력 관계를 지속하면서 현재 중국이 검토하고 있는 3개 3세대 이동통신 기술 전 분야에 있어 다양한 사업 기회를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번 통신 산업 재편은 통신 장비와 단말기 업체들에도 호재다. 중국 언론들은 3세대 이동통신 장비와 단말기 시장 규모가 4500억 위안(67조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화웨이 중싱 등 중국 기업과 삼성전자 LG전자 노키아 알카텔-루슨트 등 글로벌 기업 간 3세대 이동통신 장비와 단말기 시장 쟁탈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중국 일간지 신경보는 최근 이 시장 규모를 TD-SCDMA와 WCDMA가 각각 2000억 위안(30조 원), CDMA2000은 500억 위안(7조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3세대 이통 장비와 단말기 시장은 내년이 돼야 본격적으로 열릴 전망이다. 3세대 이통 라이선스가 올 4분기에 발급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3세대 이통 서비스가 본격 상용화되는 시점은 내년 3분기나 4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홍콩 문회보).하지만 이 시장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 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이나모바일은 지난 4월 1일부터 베이징 상하이 톈진 선양 광저우 선전 샤먼 친황다오 등 8개 도시에서 TD-SCDMA 방식의 이동통신 시범 서비스에 들어가면서 삼성전자 LG전자 등 2개 한국 업체와 중싱 롄샹 하이신 신유퉁 등 4개 중국 업체로부터 3세대 휴대폰을 납품 받았다. 그러나 1차 납품 물량 7만5000대의 TD-SCDMA 휴대전화 가운데 90%는 중국 회사들이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나모바일이 이번 시범 서비스를 위해 200억 위안(3조 원)을 투자해 구축한 최대 8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3세대 이동통신망 역시 중국 기업이 도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중국 정부는 이번 통신 산업 재편안을 발표하면서도 자국 개발 제품을 우선 사용하도록 못 박아 향후 수주 경쟁에서 중국 기업이 우위를 점할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