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무척 엄하시고 자식에게 감정을 잘 나타내지 않는 무뚝뚝한 분이셨다. 우리 형제자매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았을진대 절대 강요하신 법이 없으셨고, 심지어 공부하라는 말씀 한번 하지 않으셨다. 살아생전 우리를 위해 해 주셨던 것은 ‘언제나 지켜 봐주시는 것’이었다.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참으로 가정적인 분이었던 것 같다. 술도 드시지 않으셨고 퇴근 후엔 항상 바로 집에 오셔서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셨다. 우리들과 함께 놀아주거나 가족들과 자상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자식 한 명 한 명 말없이 살피시며 우리 집안의 중심을 잡아주셨다.한번은 필자가 도둑으로 몰린 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학교 앞 구멍가게에는 새로 나온 장난감이며 오락기 같은 볼거리가 즐비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한참을 서서 구경하곤 했는데, 어느 날 저녁 그 구멍가게 주인이 집에 찾아와 아버지에게 내가 뭔가를 훔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진 내게 정말이냐고 물으셨고 나는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그러자 아버지께선 날 붙들고 그 구멍가게로 데리고 가 다시 한 번 “가게 물건을 가져갔느냐”고 근엄하게 물으셨다. 나는 아니라고 계속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주인이 보는 앞에서 나를 혼내시며 때리셨다. 이 일은 가게 주인이 오히려 ‘됐다고, 괜찮다’고 아버지를 한참 말린 후에야 일단락됐다. 아버지가 그렇게 무섭게 화내신 것을 처음 봤기에 당시 충격과 두려움은 실로 컸다. 어린 마음에 참 억울했지만, 돌이켜보면 이 일은 내 인생에서 ‘내 것이 아닌 것은 함부로 취해선 안 된다’는 마음가짐을 다잡는 데 큰 계기가 됐다.친지들은 형제 중 필자가 성격이나 외모 모두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한다. 필자도 많은 부분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물려받은 것만으론 진정으로 닮기에 역부족인, 기나긴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니 바로 자식에 대한 욕심이다.인간의 본분을 어기는 것에 대해선 무서우리만큼 엄하셨지만 아버지는 정작 자식들의 성적이 오르고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거나 하지 않으셨다. 그저 지켜봐 주실 뿐이었다. 살아생전 공부하라는 말씀을 한 번 하지 않으셨으니 말이다.초등학교 시절에는 매달 우등상장을 타오던 필자가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반에서 33등을 했을 때도 아버지는 ‘잘했다, 못했다’라는 말씀을 일절 하지 않으셨다. 평소 표정 그대로 “다음엔 좀 더 열심히 해라”라는 짤막한 말씀뿐이었다. 화를 내거나 다그치는 일이 없었고 언제나 말씀은 ‘잘해라’가 아니라 ‘열심히 해라’였다.그래서였을까.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반에서 11등, 3학년 때는 5등, 고등학생 때는 줄곧 1등을 차지했을 정도로 계속 성적이 올라갔다. 매번 1등을 하게 된 후로도 여전히 아버지의 말씀은 열심히 하라는 말씀뿐이셨다. 사춘기이던 그 시절 아버지가 성적이 떨어졌다고 혼내고 좀 더 잘하라고 다그쳤다면 과연 내 스스로 공부를 재미있어 하고 열심히 했을까. 그때도 성적이 계속 오를 수 있었을까.진로를 결정할 때도, 아버지는 당신의 기대보다 나의 선택과 판단을 존중해 주셨다. 의대에 들어갔을 때 정말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마도 그 표정은 당신의 기대에 부응한 자식에 대해 대견하다는 말로는 다하지 못한 감정을 나타내신 것이리라.필자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친다. 성적이 떨어지면 속상한 표정이 말투와 얼굴에 이내 나타난다. 아버진 어떠하셨던가. 자식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지 않고 현재 그대로의 우리 형제들을 존중하고 지켜봐 주셨다. 요즘 난 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지켜본다는 것은 때론 도(道)를 닦고 수행이 필요한 그 이상의 경지가 필요한 과정이라고 여긴다.당신 앞에 놓인 맛있는 반찬을 슬쩍 내 앞으로 밀어주시는 것으로 당신의 애정을 말없이 보여주시던 아버지. 오래 전 우리 곁을 떠나신 그리움만 가득한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지금도 지켜봐 주시고 계시는 듯하다.1965년생. 한양대(학사)와 고려대(석사)를 거쳐 가톨릭대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등에서 수면의학 과정을 연수했다. 현재 명동하나이비인후과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박상욱·명동하나이비인후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