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베어링의 선두주자, SKF

SKF는 세계 베어링 업계의 맏형이자 선두주자다. 가장 오래됐으면서도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통한다. 일단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1907년 설립됐으니 흔히 말하는 ‘100년 기업’에 속한다.하지만 노후하거나 낙후되는 기미는 전혀 없다. 매년 경이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영업이익률은 2005년 10.8%에서 지난 1분기 13.1%로, 같은 기간 자본이익률은 21.8%에서 26.3%로 성장했다.현재 SKF는 25개국에 125개의 생산 시설과 4만30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은 약 8조 원이었다.한국에도 진출한 상태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SKF코리아는 1989년 설립됐다. 설립 초기엔 단순한 OEM 판매를 하다 펄프, 제지,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전기, 조선 산업 관련 부품과 기술 자문과 진단 서비스, 선행정비 등을 제공하는 종합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발돋움한 상태다. 50여 명의 직원 중 절반이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다.SKF의 성장 비결은 끊임없는 혁신과 투자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5년간 연구·개발(R&D) 투자를 매년 20% 이상씩 늘렸다. 이를 통해 60여 개 이상의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3년간 약 6000억 원을 들여 13개의 기업을 인수했다.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더 사들인다는 방침이다.변화와 혁신에 강한 SKF가 지향하는 경영 철학은 ‘지속가능성’이다. 톰 존스톤 SKF 회장은 “사회가 무너지는데 사업을 영위할 수는 없다”며 “지속 가능 경영은 한두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기업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지속 가능 경영 중에서도 SKF가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환경’이다. 고객에게 에너지 효율적인 제품과 솔루션을 제공해 지구 환경 개선에 기여한다는 구상이다.그렇다고 이익 감소를 감수하겠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존스톤 회장은 “기업의 이익과 환경적 이익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양자가 결합해 보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효율성은 높이는 제품을 공급한다면 SKF와 고객사, 환경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얘기다.실제로 SKF의 제품들은 상당한 에너지 절감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에너지 효율 베어링은 기존 제품에 비해 적어도 30% 이상 에너지 소비량을 줄인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하이브리드 피니언 유닛’은 마찰량을 30% 정도 줄여 1km 주행할 때마다 5g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킨다. 대형 디젤엔진용 윤활 시스템을 사용하면 기름 소비를 30%가량 저감할 수 있다.SKF의 기술 혁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신기술 설명회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SKF는 자동차, 철강, 선박 등과 관련한 획기적인 기술들이 소개됐다. ‘고객의 성공이 SKF의 성공’이라는 모토에 어울리는 기술들이었다. 효율성을 높이면서 환경오염을 줄인다는 SKF의 철학이 녹아 있는 것은 물론이다.SKF의 ‘콘로(ConRo)’는 철강 산업의 발전을 위해 개발됐다. 철강 제품 설비 중에 연속 주조기라는 것이 있다. 액체 상태인 철을 냉각해 슬래브 등의 중간 제품을 만든다. 여기에 냉각기 역할을 하는 ‘롤 라인’이란 장비가 있는데 윤활 비용이 많이 들고 윤활제로 쓰는 그리스가 냉각수 분사 노즐을 막아 제품의 품질이 저하되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스와 산화 박편이 롤러에 눌러 붙어 가동을 중단해야 할 때도 적지 않다.콘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일단 ‘그리스 밀봉 유닛’이기 때문에 윤활 관련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운전비용이 기존 제품에 비해 50% 정도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오염된 그리스가 베어링으로 유입되지 않아 롤러의 기능도 향상된다. 냉각수 분사 노즐이 막히는 현상도 차단한다. 기존 롤 세그먼트와 교환될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설치도 간편하다.마그네틱 베어링도 획기적인 제품이다. 이 제품은 냉방 시설이나 산업용 냉장 시설의 컴프레서 등에 사용된다. 종전의 베어링은 기계적인 방식이어서 구동 시 마찰이 발생해 제품이 마모되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단점이 있다. 반면 마그네틱 방식은 마찰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제품 수명이 길어지고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다.마그네틱 베어링 한 대당 절약되는 에너지는 약 23만8661kWh에 달한다. 이는 스웨덴의 24가구의 1년치 전력 사용량에 해당한다. 돈으로 치면 약 2만 유로(약 3200만 원)에 이른다. 이 베어링을 쓰는 원심분리 컴프레서는 연간 1500MWh의 에너지를 저감한다. 7만5000유로(약 1억 2000만 원)에 해당하는 에너지다.온라인 진동 모니터링 장비인 DMx도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제품은 가스터빈, 모터, 펌프, 컴프레서 등 중요 설비의 진동을 통해 설비의 이상 유무를 판단, 기계의 고장이나 파손을 방지한다. 기존 제품에 비해 크기가 작아 공간 활용도를 높인 것도 장점이다.톰 존스톤 SKF 회장은 SKF 직원들의 성공 모델이다. SKF에 사원으로 입사해 회장에까지 올랐다. 베어링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니 업계의 현실과 현장의 분위기를 꿰뚫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도쿄에서 만난 그는 SKF의 혁신 전략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굳은 자신감을 보여줬다.중요한 것은 현재 있는 기술이든 앞으로 개발될 기술이든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SKF는 쉬지 않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 기술이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시장의 니즈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이다. SKF의 기술은 이 점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고객들은 보다 효율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설비를 원한다. SKF의 신기술은 이를 만족시킬 것이다.초기 구매 비용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품의 생애 비용을 계산해 보면 결국엔 구매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만큼 효율적인 제품이고, 게다가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이것이 경쟁사에 비해 SKF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의 핵심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 된다는 점을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생산성 향상을 통한 회사 내부의 원가 절감과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올해 목표 영업이익률을 12%로 설정했는데 현재까지는 목표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철강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변동 등 거시적인 요인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목표 달성엔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그렇다. 유망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룹 전체적으로 봐도 아시아 지역의 매출 비중이 6년 전 12%에서 현재 18%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고용과 설비 투자를 더욱 늘리고 인수·합병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아시아는 지역적으로 SKF그룹의 리더가 될 것이다.역시 중요한 시장이다. 지난해 아시아에 신규 건설된 8개의 공장 중 2개를 한국에 지었을 정도로 기대가 크다. 향후에도 투자를 늘려나갈 계획이다.도쿄 일본=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