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초 삼성전자 각 사업장에는 특이한 포스터가 붙었다. ‘특허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No Patent, No Future)’는 제목의 포스터에는 ‘갈기가 없는 사자는 더 이상 사자가 아니다. 사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 갈기라면, 초일류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특허입니다’라는 내용 등이 들어간 세 종류의 포스터였다. 삼성전자는 이 외에도 방송, 사보 등 사내 홍보 매체를 통해 특허 중시 문화를 전체 임직원에게 확산시키고 있다.이 회사 관계자는 “초일류 기업은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사풍)를 가지고 있다. 인재와 정보, 자원 같은 것은 돈을 들여 사올 수 있지만 ‘문화’는 조직원의 의식, 정신, 관습 등이 수십 년에 걸쳐 쌓여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삼성전자가 이렇게 특허를 강조하게 된 것은 글로벌 경쟁에서 특허의 중요성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시장에서 IBM 다음으로 특허 등록 건수(미국 특허상표국 특허 출원 현황)가 많은 삼성전자로서는 특허 자원을 잘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삼성전자는 미국 특허 등록 순위가 2003년 9위에서 2006년 2위까지 올라섰다.LG전자도 특허 개발 및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까지 전담 인력을 300명으로 늘릴 계획이고, 이를 위해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지역별로 특허 거점을 구축해 체계적으로 전문가를 육성하기로 했다.LG전자는 개별 특허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디스크, DTV 등 주요 핵심 기술에 대한 표준을 리드해 로열티 수익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 북미 디지털 TV 전송 규격 관련 특허 풀(pool)인 ATSC(Advanced Television System Committee) 풀의 핵심 회원사로 가입했다. ATSC 풀은 향후 한국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디지털 TV에 적용될 표준 기술 방식에 사용되는 핵심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향후 디지털 TV 시장의 활성화에 따라 큰 로열티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개별 기업끼리 특허를 교환하는 크로스 라이선스(Cross License) 전략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7월 삼성전자와 에릭슨은 양사가 보유한 무선 2세대(2G), 3세대(3G) 이동통신 관련 특허를 공유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주요 내용에 있어서 양사 간 합의에 의해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양사가 진행하고 있는 모든 특허 소송을 취하했다는 것을 명시했다.특허 때문에 어제까지는 서로 으르렁거리다 오늘은 다정한 미소를 보내는 것을 보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삼성전자와 에릭슨은 지난 2002년 체결한 크로스 라이선싱 계약이 2005년 말 만료되면서 새로운 계약을 하는데 합의하지 못했고 이후 양사는 상대 회사가 특허를 침해했다며 잇따라 소송을 제기해 오던 중이었다.올해 3월에는 LG전자와 코닥이 유기다이오드(OLED)와 관련해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했고 5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펜탁스와 특허 사용권을 교환했다. 디지털 컨버전스가 더욱 가속되는 상황이라 크로스 라이선스는 늘어나는 추세다.LG전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 중동 등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짝퉁’ 제품에 대해 각 지역별 현지법인에 법률 대리인을 두고 현지 사설 짝퉁 전담 조사 기관을 기용해 ‘본사 특허센터-현지 법률대리인-사설 조사기관’의 짝퉁 정보 채널을 구축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특허권 침해를 강하게 문제 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외 기업도 한국 내에서 특허 소송을 할 가능성이 크다.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겨난 특허 전문 회사(Patent Troll)는 특허 소송의 급증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해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 회사는 다양한 특허를 사들인 다음 각국을 돌며 해당 특허를 침해한 업체를 찾아내 배상을 받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제조 기업 사이의 분쟁은 특허를 제품 개발과 판매에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최종 파국 국면까지 가진 않지만 특허 전문 회사는 끝까지 싸워 값을 올리므로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다.그러나 특허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연구·개발 없이 특허가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특허 자체보다 특허를 낼 수 있는 연구·개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특허 전략의 첫걸음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