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년 만에 일제고사 형태로 치러진 중학교 1학년 진단 평가 성적이 공개됐다. 각 시도 교육청이 이날 공개한 과목별 성적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서울 지역은 영어와 수학 성적이 타지역에 비해 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주목할 만한 것은 강남·북 간의 영어 수학 성적이 뚜렷한 차이를 보인 것. 서울 지역 학생들의 영어 수학 강세는 특히 강남에서 두드러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강남 지역 학교들은 영어와 수학 과목에서 평균 90점을 훌쩍 넘긴 데 비해 강북 지역 학교들은 80점대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등 강남 주요 지역 중학교의 경우 서울 전체 평균보다 과목당 7~12점까지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영어 성적은 강남이 강북보다 평균 10점 이상 높은 경우도 많았다. 강남의 한 중학교와 종로구 학교 간 영어 평균 성적은 22점이나 차이가 났다.또 지난해 서울 시내 일반계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3개 대학 진학률을 분석한 결과 강남권과 비강남권 학교 간 격차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지난달 사설 입시기관 하늘교육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서울 시내 207개 일반계 고등학교 중 165개교(80%)의 진학 성적을 분석한 결과 서울 강남구 고교(16개 학교 중 13개 조사)의 경우 졸업생의 13.4%가 2008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에 합격했다. 이어 서초구 소재 고교가 11.6%였다. 또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고등학교 역시 강남구 소재의 A고교(3.4%)였다.반면 서울 지역에서도 일부 지역은 졸업생들의 주요대 합격률이 강남권과 비교해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그간 ‘강남의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볼때 강남 학생들의 뛰어난 학력은 이제 ‘팩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즉, 타지역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진 ‘강남식 교육’이 현 교육 시스템 하에선 가장 큰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강남식 교육은 역시나 사교육의 힘이 절대적이다. 하늘교육 측은 “이번 조사에서 대입 성적이 좋게 나타난 지역은 학원 밀집 지역으로, 입시에서 사교육의 영향력이 매우 높다는 것이 재확인됐다”고 분석했다. 중학교 진단 평가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강남은 ‘원스톱 사교육’이 가능한 곳이다. 압구정 청담에서 유아 및 초등 교육을, 대치에서 입시를, 교대에서 재수와 편입을, 강남역에서 유학 상담과 외국어 교육을 거치는 식이다. 반경 10km 안에서 국내에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그리고 최상위급의 사교육 시스템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이들 학원은 피 튀기는 경쟁을 하며 하루에도 몇 개씩 생기고 쓰러져 나간다. 콘텐츠가 부족하고 시류에 맞춰 변화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유명 학원일지라도 부모들의 입소문 ‘한방’에 무너진다. 결국 경쟁의 원리를 거쳐 남은 승자는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기쁨을 맛본다.조진표 와이즈멘토 대표는 이 같은 사교육 시스템 외에도 강남식 교육의 강점을 세 가지 정도로 분석한다. 첫째, 학부모가 스스로 변화하는 나라 안팎의 교육 제도와 정보에 밝다는 것이다. 타지역 학부모들이 제도의 잦은 변화와 이로 인한 자녀 지도의 어려움을 탓하는 반면 강남 학부모들은 적극적인 이해를 통해 자녀가 달라진 제도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 한다.둘째, 글로벌 교육이 보편화돼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영어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영어 유치원과 단기 유학을 체험하며 교과서 중심의 틀을 벗어난 영어를 배운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압구정 청담 방배 등 최상류층 거주 지역에선 이와 비슷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글로벌 교육이 일반화됐다.마지막으로 우수한 준거집단을 꼽는다. 경제적 상류층이 다수를 이루는 강남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얻으며 부모의 교양이나 행동양식, 인적 네트워크 등 문화적 사회적 자본도 다른 지역보다 쉽게 배울 수 있다. 조 대표는 “입체적으로 받은 사교육과 준거집단의 우수성이 맞물려 높은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고 강조한다.이뿐만 아니다. 공교육도 첨단을 달리고 있다. ‘교육 강남’의 시발점이 경기고 서울고 등 강북 명문고의 강남 이전이 원점이 됐다면 이제는 달려 나가는 사교육에 공교육이 발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강남구청의 인터넷 강의나 강남교육청이 추진 중인 ‘방과후 거점학교’ 등은 이 같은 사실의 대표적인 예들이다.물론 강남식 교육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즉,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문제 풀이에만 익숙한 공부 기계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다. 외고와 과학고 등 특목고 교사들은 “아이들이 정답 없는 문제는 다루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강남식 교육이 지식 기반 경제에 맞는 창의적 인재를 배출해 내지 못하고 강남식 교육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경우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재미있는 건 최근 강남 유아 및 초등학교 교육의 화두는 영어와 창의성인 것에서 보듯 강남의 어린 학생들은 이미 이 같은 ‘창의성’마저도 트레이닝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그간 한국 사회는 국내 명문대 입학이 가장 큰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 이 때문에 대학 입시가 강남식 사교육의 가장 큰 지향점이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열매를 맛봤던 현재의 강남 상류층 부모들의 생각은 다르다. “학교는 외국에 가서 배우면 되고 돈은 벌면 된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조적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최첨단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게 이들이다. 이들의 요구에 의해 재편되는 강남식 교육은 새 시대의 흐름에 맞춰 분명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