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지난 4월이었다. 해외 순방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귀국하면 해외 식량 기지 확보 방안을 마련하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석유나 광물 자원뿐만 아니라 식량 확보도 중요한 과제라는 설명이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정부의 해외 식량 기지 확보 방안의 큰 그림도 제시했다. “부지 확보 같은 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하고 경영은 민간이 나서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그로부터 2개월 후인 지난 6월 3일, 농림수산식품부(농식품부)는 제1차 해외농업개발협력단 회의를 개최했다. 정학수 농식품부 1차관의 주재 하에 진행된 이 회의에는 농식품부는 물론 기획재정부, 외교통상부 등 관계 부처와 민간 기업들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통한 해외 식량 기지 확보라는 이 대통령의 구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회의의 주제 역시 민관 협력 방안이었다.정부가 해외 식량 기지 확보를 위한 정책을 본격화하는 데엔 크게 2가지의 배경이 있다. 우선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위기감이 크다. 한국은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여서 곡물가 상승에 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경지 면적이 좁아 생산성 확대만으로는 도저히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워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곡물가가 상승하면서 점점 많은 기업들이 해외 농장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이 미흡하다는 것도 정부의 발걸음을 재촉한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농촌공사에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조직이 있기는 하지만 해외 농업 환경 조사와 관련 정보 제공 등 매우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치고 있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아쉽던 상황이었다.이번 해외농업개발협력단 출범과 함께 발표된 정부의 해외 농업 개발 전략은 상당히 공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30년까지 곡물 소비량의 50%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절반은 국내 자급을 통해, 또 다른 절반은 해외 자주 개발을 통해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곡물 자급률이 26.5%임을 감안하면 2030년까지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규모만큼을 해외에서 확보하는 것이 된다. 해외에 또 하나의 한국 농업기지를 건설한다는 표현도 과하지 않은 셈이다.목표 달성을 위한 방향은 크게 3가지로 제시됐다. △민간 주도, 실수요자 중심의 해외 개발 △종합적·장기적·지속적인 정책 접근 △틈새시장 진출, 곡물 생산·유통망 확보가 그것이다. 이에 대한 7개의 구체적인 전략 과제도 정했다. 5개는 해외 식량 기지 구축을 위한 것이고 나머지 2개는 국내 농업의 해외 수출을 위한 방안이다.우선 민간이 주도하는 프런티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료나 제당, 제분 등 곡물 관련 기업이나 곡물의 수입과 유통에 참여하는 종합상사가 해외 농업 개발에 대한 전략과 실행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추진하면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구상이다. 기술과 정보, 외교적 지원, 전문가 교육, 애로 사항 해소 등이 지원 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지원 대상 지역은 농업 여건과 국내 반입 가능성 등을 고려해 결정할 예정이며 국내 생산 작물과 겹치지 않는 작물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농식품부의 조래창 사무관은 “수익성 분석이나 경쟁력 제고 측면을 감안하면 기업이 앞에 서는 것이 유리하다”며 “기업이 계획을 수립하면 정부는 관계 기관과 전문가, 예산 등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장기적 정책도 추진된다. ‘해외농업개발 10개년계획’을 마련해 지역별·유형별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곡물의 유통망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미개발지에 진출해 수입처를 다변화할 방침이다. 해외 동포를 활용해 후발주자라는 불리함을 극복한다는 구상이다.해당국과의 외교적 문제 해결에도 나선다. 해외 식량 기지는 석유나 광물 등의 자원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투자 리스크를 가지는데 해당국 정부와의 관계도 그중 하나다. 정부는 투자 보장 협정 등을 체결해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확보하는 한편 현지 공관을 통해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신속하게 해결할 방침이다.정부 간 협력 체제도 확대한다. 브라질 중국 몽골 등이 참여하는 농업협력위를 통해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해외 농업 개발 유망 지역과 양해각서(MOU)도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또 농업 기반 인프라 조성 등 개도국과 협력 사업을 해외 농업 개발과 연계하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기업 지원 인프라도 구축한다. 우선 농업연수원 등에 전문 과정을 마련하고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를 초정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연구·개발도 확대하기로 했다.이번 정부가 내놓은 해외 농업 개발 방안은 과거의 시행착오에서 배운 바가 많다. 사실 정부의 해외 농업 개발은 처음이 아니다. 1960년대 이후부터 추진했으니 50년 가까운 ‘이력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번번이 실패하거나 중단돼 소득이 거의 없었다. 실패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1960년대 남미 지역의 해외 이민 정책은 현지 사정에 대한 몰이해와 전문성 부족 등이 발목을 잡았다.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 5개의 농장을 개발했으나 경지가 영농에 적합하지 않거나 영농 자금이 부족해 개발을 지속할 수 없었다. 칠레의 경우엔 현지법상 농업 이민이 불가능한 경우였다.1970년대 이후에도 3차례에 걸쳐 정부 주도의 해외 농업 개발이 추진됐다. 모두 국제 곡물가가 폭등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개발에 착수하고 얼마 후 곡물가가 안정되면서 모두 흐지부지됐다. 곡물가의 가격 사이클이 10년 주기로 움직이는 것을 감안하면 다음번 폭등기에 대비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부가 이번에 장기적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일본은 해외 농업 개발 부문에서도 선진국이다. 현재 자국 경지의 3배에 해당하는 1200만ha를 브라질 등 해외에 확보한 상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일본의 성공은 크게 3가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장기적인 관점이다. 일본이 해외 농업 개발에 나선 것은 1973년 미국이 콩 수출을 금지하면서다. 이에 일본은 브라질 정부와 협력해 브라질의 불모지인 세라토 지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이 경지를 제공하고 일본은 설비와 자금, 기술을 댔다. 현재 이 지역의 콩 수확량은 브라질 전체 콩 생산량의 절반에 이른다.직접 생산보다는 유통망 확보로 전략 방향을 선회한 것도 성공 요인이다. 곡물 메이저의 영향 때문에 해외에서 생산된 곡물을 자국으로 들여오기 힘들어지자 해외 생산을 주도하던 미쓰비시와 미쓰이 등 종합상사들은 자체적인 유통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곡물 저장 시설을 확보하고 곡물 수집사와 수출사를 인수하는 등 종합상사의 행보는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현재 일본에 들어오는 곡물의 70%는 이들 종합상사의 손을 거친다. 세계 곡물 메이저에 크게 기대고 있는 한국과 사정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민간 기업이 전면에 나서고 정부는 측면에서 지원하는 시스템도 성공적이다. 농림수산성 산하의 사단법인인 ‘해외농업개발협회’는 민간 기업 지원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기업의 초기 조사비용을 분담하고 진출이 확정되면 해당국과 필요한 협약을 이끌어낸다. 정부가 아닌 민간이 앞에 나서기 때문에 해외 현지에서도 ‘자원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이 적다는 효과도 있다.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