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되는 지구촌 식량 위기
최근 들어 국제 원유 및 원자재 가격과 함께 곡물 가격이 급상승해 세계 식량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최근월물 밀 선물의 월평균 가격은 2008년 3월 부셸(약 27㎏)당 1102센트, 옥수수와 대두 가격은 2008년 6월 각각 부셸당 699센트와 1504센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이러한 곡물 가격 상승은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빈민국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곡물 가격 상승과 함께 곡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이를 국부 축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곡물 자원 민족주의의 대두는 세계 식량 위기를 넘어 식량 전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이처럼 곡물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는 것은 곡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반해 공급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곡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원인으로는 중국 인도 등 거대 개발도상국의 곡물 소비 증가, 바이오 연료 개발에 따른 곡물 수요 증대, 투기 자금의 상품 시장 유입에 따른 곡물에 대한 투기 수요 증대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곡물에 대한 공급이 감소하고 있는 원인으로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작황 부진, 곡물 재배 면적 감소, 원유 및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생산비 증대 등을 들 수 있다.첫째,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에 따르는 곡물 수요 증가는 곡물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이다. 중국의 경우 경제성장률이 1999년 7.7%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07년에는 11.5%를 기록했다. 또한 세계 경제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2008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0%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도 역시 1990년 5.6%의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상승세와 하락세를 반복하다 2002년 4.5%를 기점으로 상승세에 직면했으며 2006년에는 사상 최고치인 9.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거대 인구를 지닌 중국과 인도의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함에 따라 곡물 수요 역시 증가한 것이다.둘째, 바이오 연료 개발에 따른 곡물 수요 증가로 곡물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위협 증대 및 최근의 고유가 지속으로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바이오 연료 개발 역시 증가하고 있다. 바이오 연료 중 하나인 바이오 에탄올은 1975년 거의 0에 가까웠으나 2007년 현재 350억 리터 이상을 생산하고 있을 정도로 생산이 급증하고 있다. 바이오 에탄올은 옥수수 밀 보리 사탕수수 고구마 밀 등에서 추출된다. 이에 따라 곡물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하고 있다.셋째,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안전자산을 선호하게 됐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에 유입됐던 투기 자금이 곡물 에너지 광물 같은 상품시장으로 유입되면서 곡물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밀 선물 거래는 2007년 6월 5일 순매도에서 순매입으로 전환됐으며 순매입세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옥수수 선물 거래 역시 2006년 1월 3일 4만2186건에 달했던 순매입 건수가 2007년 1월 2일에는 18만5942건으로 증가했으며 2008년 2월 26일에는 27만9263건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곡물 선물 시장의 순매입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곡물에 대한 투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넷째, 지구 온난화가 진전됨에 따라 기상재해 발생 건수 및 피해액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곡물 생산량 역시 감소해 곡물 가격이 상승했다. 세계적인 재보험사인 뮌헨리에 따르면 1950년대 기상재해 발생 건수는 연평균 21건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 117건으로 5.6배 증가했다. 반면 기상재해로 인한 피해액은 동기간 연평균 480억 달러에서 최근에는 1조1050억 달러로 무려 23배나 증가했다. 이는 기상재해의 강도가 커지고 있고 세계 곡물 생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가 진행될 경우 세계의 쌀 생산성은 1997년 대비 연평균 7%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며 기타 곡물의 경우 9%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다섯째, 세계 곡물 재배 면적이 감소하고 있어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곡물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쌀 밀 대두 옥수수의 재배 면적을 합한 세계 곡물 재배 면적은 2002년 이후 2005년까지 증가했으나 2006년에는 감소했다. 이에 따라 이후 생산 능력이 감소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곡물 재배 면적 감소의 원인 중 하나로 바이오 연료 원료인 옥수수 재배 면적을 늘리기 위해 여타 곡물의 재배 면적을 줄인 것을 들 수 있다.여섯째, 곡물 생산비 증가에 따라 곡물 가격 역시 상승했다. 고유가 지속 및 세계 해상 물동량 증가로 해상 운임이 상승했으며 이에 따라 곡물 교역을 위한 유통 비용이 증가해 곡물 생산비 역시 오른 것이다. 실제로 벌크선 운임지수는 지속적으로 상승해 2008년 5월 20일에는 1만1793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나 2008년 6월 30일 현재 9589를 기록, 여전히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이와 같은 이유로 곡물 가격 상승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구촌의 식량 위기 역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식량 자원은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따라서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이를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빈민국의 경우 식량 확보가 불가능하다. 또한 곡물을 구입할 수 있는 국가조차 곡물 가격 급등에 따라 이를 구매할 수 없는 새로운 기아층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중국 쓰촨성 대지진이나 미얀마의 사이클론 등과 같은 거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국가적으로 폭동 등 사회적인 혼란뿐만 아니라 국가 간 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한국의 경우 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 쌀의 자급률이 현재까지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쌀을 제외한 기타 곡물 및 육류의 자급률이 낮아 국제적으로 식량 위기나 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 역시 식량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실제로 한국의 쌀 수요함수를 추정한 결과 쌀은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밀가루와 대체 관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곡물 가격 상승으로 밀가루 값이 오르거나 사료용 곡물 가격 상승으로 육류 가격이 오를 경우 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이로 인해 한국의 쌀 시장 역시 현재의 초과 공급에서 초과 수요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쌀 가격 역시 급상승할 가능성이 있어 한국 역시 식량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이처럼 곡물 가격 급등에 따른 애그플레이션과 식량 위기 문제는 한국 역시 직면해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식량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어 한국의 식량 안보 역시 낙관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국민의 식량 안보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곡물 가격 상승은 곡물 시장의 초과 수요에 따른 것으로 단기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곡물 자원민족주의가 대두됨에 따라 곡물 가격 상승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단기적인 대응책보다는 중·장기적인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임상수·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happylims@hri.co.kr©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