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정부청사 구내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꼬리곰탕을 급식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공무원 노동조합이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시식을 통해 안전성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장관 발언이었는데 이로 인해 6급 이하 공무원들로 구성된 노조와 갈등을 빚게 된 것.공무원들도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불안을 풀어줘야 할 공무원들이 무턱대고 광우병 괴담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터져 나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 식구 하나 설득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을 납득시키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나온다.사태의 발단은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청문회였다.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과천청사나 중앙청사 구내식당에 미국산 쇠고기 꼬리곰탕이나 내장탕을 올릴 용의가 있느냐”고 묻자 정운천 장관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답했다.이에 대해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중앙행정기관본부는 지난주(13~14일) 과천청사 안내동 식당 등 2곳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미국산 쇠고기 급식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다. 식당 앞에 의견수렴판을 설치한 후 공무원들에게 스티커를 나눠 주고 미국산 수입 쇠고기 꼬리곰탕과 내장탕이 메뉴로 나오면 먹을 것인지, 먹지 않을 것인지 선택해 붙이도록 하는 방식이었는데 스티커를 받아 간 1994명 중 93.4%인 1862명이 ‘먹지 않겠다’는 쪽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노조는 “공무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해석했다.노조 측은 이 같은 조사에 앞서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가 구내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메뉴를 강제로 공급한다면 이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부당하게 공무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주에 노조는 이른바 ‘스티커 설문 조사’ 결과를 들고 각 부처 장관을 항의 방문할 예정이다.사실 쇠꼬리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분류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에 해당되지 않는 부위다. 그런데도 공무원 노조는 정 장관의 ‘꼬리곰탕’ 발언을 문제 삼아 마치 쇠꼬리를 먹으면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살코기보다 높은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나 통할 것 같은 ‘광우병 괴담’을 농림수산식품부가 있는 과천청사 한가운데서, 그것도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6급 이하 공무원들로 구성된 노조가 이처럼 거세게 반발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과천 경제부처의 사무관급(5급) 이상 관료들 중에서는 정 장관이 오죽 답답했으면 그 같은 발언까지 했겠느냐는 동정론도 일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정 장관은 국민의 따가운 여론 탓에 밤잠을 설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 한 국회의원이 미국산 쇠고기 구내식당 급식 제안을 했고 ‘이렇게라도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면’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그렇지만 정작 같은 식구인 공무원들은 장관의 ‘잠 못 드는 사정’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 일로 정 장관은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사실상 ‘쇠고기 청문회’의 연장전으로 치러진 지난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에서 결국 정 장관은 당초 15일로 예정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에 대한 장관 고시를 1주일에서 열흘가량 연기한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입법예고 기간에 접수된 의견 수가 많아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일단 한발 물러선 것이란 분석이다. 소나기가 너무 세게 내리니 ‘작전상 후퇴’했다는 얘기다. 이로써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일정도 자연스레 조금씩 뒤로 밀렸고, 장관들이 정부청사 구내식당에 둘러앉아 웃으며 미국산 쇠꼬리곰탕을 먹는 모습을 보는 일도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