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순 알카텔진공코리아 사장
〈 회사 개요〉창업: 1995년본사 및 공장: 충남 아산주요 생산품: 진공펌프(반도체 및 LCD 공정용)작년 매출: 약 1200억 원초여름 햇살을 머금은 드넓은 잔디는 싱그러운 초록색 물결로 넘실댄다. 정원에는 수십 종의 꽃들이 빨강 파랑 노랑색으로 형형색색 피어 있다. 연못엔 잉어가 한가롭게 헤엄친다. 레스토랑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레스토랑엔 넓고 푹신한 의자들이 있고 바닥에는 대리석이 깔려 있다. 건물 내 피트니스센터의 로커룸은 골프장의 그것보다 우아하다. 천장에는 성당처럼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돼 오색영롱한 빛을 안으로 빨아들인다.최고급 호텔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호텔이나 콘도가 아니다. 충남 아산시 인주공단에 있는 알카텔진공코리아(대표 박상순)의 공장과 사무동이다. 파란 잔디는 회사 앞마당에 있는 국제 규격의 축구장이다. 그 옆에는 역시 국제 규격의 테니스장과 농구장이 있다. 생산 라인에는 근무 시간 내내 신선한 외부 공기가 들어오게 설계돼 있다. 실내조명은 최대한 자연 채광을 활용했다.이 회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특이한 회사다. 종업원 복지도 남다르다. 예컨대 사무동에는 어린이집이 있다. 직원들은 출근할 때 아이를 데려온다. 이곳은 탁아소가 아니다. 음악 미술 영어 놀이 등을 가르치는 유치원이다. 교사가 배치돼 있어 뮤지컬 등을 견학하기도 한다. 종업원이 대학 진학을 원하면 오후 4~5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1년 이상 재직자에겐 부모 계좌로 월 20만 원씩 넣어준다. 이른바 ‘효도 수당’이다. 10년 근속자에겐 200만 원을 지원해 부부가 해외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수 사원에겐 프랑스 여행을 보내 준다. 올해도 4명이 다녀왔다. 보통 사내에 있는 기숙사와는 달리 이 회사의 기숙사는 시내에 있다. 동호회 활동에 참여하면 활동비를 지원해 주기도 한다. 연말에는 가족 동반으로 스키장에서 송년회를 연다.특이한 제도는 또 있다. 이 회사 임직원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술을 마셔선 안 된다. 사내에서는 물론이고 퇴근 후 개인적인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력 제품인 첨단 진공펌프의 정밀 가공 및 조립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주중엔 동호회 활동 등으로 피로를 풀고 회식은 금요일에 하게 한다. 작업 현장에는 휴대전화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한다.이런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는 것은 박상순(48) 사장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그는 “대당 3000만 원이 넘는 고가 정밀 장비를 만드는데 조그만 실수라도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부품 조립 때 0.05mm의 공차를 지키려면 가장 맑은 정신으로 집중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최고 수준의 복리후생을 제공하고 동호회 활동까지 지원하지만 정밀작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엄격히 금하는 것이다.알카텔진공코리아는 프랑스계 업체다. 지분의 90%를 프랑스 알카텔-루슨트가, 10%를 박 사장이 각각 갖고 있다. 당초 1995년에 창업했을 때는 프랑스의 지분이 51%, 박 사장의 지분이 49%였으나 지금은 프랑스 파트너가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프랑스 측은 모든 경영을 박 사장에게 일임한다. 갖가지 복리후생도 박 사장의 아이디어다. 대부분의 이익을 재투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프랑스 앙시에 본사를 둔 알카텔은 세계적인 통신 및 정밀 장비 업체다. 알카텔진공코리아는 알카텔의 세계적인 진공 기술을 이전받아 반도체 공정용 진공 펌프를 주로 생산한다. 당초 박 사장은 1989년 직원 8명으로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창업해 진공펌프를 수입 판매했다. 몇 년 동안 이 사업을 해온 박 사장은 이 장비의 국내 생산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프랑스 경영진을 설득해 1995년 합작법인을 출범시켰다. 또 외환위기 속에서도 1998년 천안에 진공펌프 조립 생산 및 수리를 위한 공장을 건설했다. 수주가 늘어남에 따라 2007년 아산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했다. 아산공장은 대지 3만3230㎡에 건평 1만1550㎡ 규모다.알카텔진공코리아는 진공펌프에 관한한 알카텔 그룹의 아시아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창업 초기 매출은 연간 30억 원선에 불과했으나 해마다 크게 늘어 작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1000억 원을 돌파해 1200억 원(수출 4000만 달러 포함)에 달했다. 종업원은 250여 명이다.박 사장은 특히 아산공장 건설을 위해 100억 원 규모의 직접 투자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같은 투자 유치와 고용 창출 및 수출 사례 덕분에 이 회사는 충청남도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하기 좋은 충남’의 성공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충청남도는 이 회사가 150명 이상의 신규 고용과 연간 300억 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직간접으로 창출하고 있으며 협력 업체들의 생산 유발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보탬을 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그동안 이 회사는 프랑스로부터 첨단 기술을 단순히 도입하기만 한 게 아니다. 부품의 상당 부분을 국산화했다. 이미 파이프와 고무 프레임 등은 모두 국산화했다. 박 사장은 “금년 하반기부터 진공펌프의 핵심 부품을 가공하기 위해 프랑스로부터 100억 원대에 이르는 최첨단 특수 가공 머시닝 센터(Machining Center)를 들여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설비가 도입될 경우 진공펌프의 핵심 부품까지 가공할 수 있게 된다. 박 사장은 테스트 장비 개발에도 적극 나서 ‘축(shaft)의 왜곡 여부를 측정하는 장비’는 프랑스 본사에서도 구매하고 싶어 할 정도다.이 회사가 생산하는 진공펌프는 반도체 공정 중 웨이퍼가 들어가는 방(챔버)을 진공으로 만들어 주는 장비다. 챔버를 진공으로 만드는 것은 이물질에 의한 오염을 막고 정교한 가공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 회사의 진공펌프는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에 공급되고 있다. 아울러 가스 누출 검지 장비 등도 생산한다.박 사장은 “지방에 있다 보니 우수 인재 확보가 가장 큰 과제”라며 “이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통해 복리후생 시설을 갖췄다”고 설명한다. 그의 경영 철학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자만즉패(自慢則敗)다. 조그만 성공에 도취돼 자만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새로운 변화에 도전을 하자는 의미다. 둘째, 인재 경영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으며 평생 학습을 통해 지적 수양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 사장이 “기술직 고졸 사원 중 대학 교육을 받기를 원하는 사원은 머뭇거리지 말고 지원하라”고 늘 강조한다. “수업 시간에 늦는다면 근무 시간도 줄여 주고 대학 학위를 습득한 후에는 학업 성취에 걸맞은 호봉을 부여하겠다“며 인재 양성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셋째, 상생 경영이다. 박 사장은 “회사와 종업원, 협력 회사는 한 배를 타고 가는 운명 공동체”라며 “가족 같은 회사를 지향한다”고 설명한다. 종업원에게 좋은 복리후생을 제공함으로써 직장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도 그의 일환이다. 아울러 “협력 업체에는 정해진 대금 결제일에 현금 결제를 해주며 명절에는 당초 결제일보다 앞당겨 대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박 사장은 “지난 14년 동안 알카텔진공코리아는 국내의 척박한 진공 산업을 개척해 왔다”며 “창업 초기만 해도 여러 개의 군소 업체 중 하나였으나 이제는 반도체 공정의 진공펌프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발돋움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특히 국산화와 기술 자립도를 높인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그는 “지금까지 반도체 위주의 매출 구조에서 벗어나 올해부터는 액정표시장치(LCD) 및 태양전지 분야의 진공펌프 생산에도 나서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오는 2014년엔 매출 3000억 원(수출 8000만 달러 포함)을 달성하는 것을 장기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와 함께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탈바꿈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