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내에서 공기업 인사를 실질적으로 조율한 것으로 알려진 실세 수석 및 비서관들이 ‘쇠고기 정국’의 유탄을 맞고 줄줄이 물러나면서 앞으로 각 부처 산하 공기업 수장 임명을 누가 하는지에 관가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6월 26일 기준으로 294개 공공기관 중 기관장 선임이 완료된 곳은 128개다.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잔여 임기를 채우는 것으로 ‘재신임’받은 유임된 기관장 69명을 빼면 새로 뽑힌 사람은 59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66곳의 공공기관장 자리가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지금까지 뽑은 사람보다 앞으로 점 찍을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 때문에 공기업 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은 물론이고 용퇴한 선배들의 뒷배를 봐줘야 하는 현직 관료들까지 청와대의 권력 이동 양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0일 천하’로 끝난 예전 청와대 실세들로부터 인사권의 바통을 이어 받는 게 누군지가 관심의 초점이다.우선 실세로 알려졌던 전임 박영준 비서관 때문에 ‘왕(王)비서관’으로 통하던 기획조정비서관은 업무가 대폭 축소되고 명칭도 기획관리비서관으로 바뀌었다. 이 자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대변인을 지낸 정인철(47) 전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이 차지했지만 예전만큼의 힘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그렇다면 이번 청와대 개편에서 정무수석으로 기용된 SBS 뉴스8 앵커 출신 맹형규 전 한나라당 의원은 어떨까. 개편된 조직도에 의하면 정무수석은 경제수석과 함께 대통령실(옛 청와대 비서실)을 이끄는 양대 팀장으로 대우받는다. 또 당청 간의 가교 역할은 물론이고 야당 등 범정치권과의 교섭에도 앞장서게 된다. 이런 위치 때문에 맹 수석이 향후 한나라당의 낙천·낙선자 그룹의 자리 마련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쓰나미(지진해일)급’ 물갈이 속에서도 수석급 중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킨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 이동관 대변인 역시 대통령 신임을 토대로 청와대 실세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박형준 전 의원이 맡게 된 수석비서관급 홍보기획관은 인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하마평’ 등을 수집·보고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이런 상황에서 공기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요직이자 ‘알짜’로 통하는 금융 공기업 수장 인선이 어떻게 결론 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임 유재한 사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임한 뒤 벌써 대여섯 달째 후임 사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주택금융공사가 새로운 청와대 비서진의 영향권에 있는 첫 금융공기업 인사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6월 26일 현재 금융위원회는 진병화 전 국제금융센터 소장과 임주재 전 금감원 부원장보, 강종만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 등을 3배수로 추천해 둔 상태다. 이들 중 유력한 후보로 꼽히던 한 사람은 지금은 물러난 예전 실세의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청와대 개편으로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상관없이 사장 자리에 안착할 수 있을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한편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이 주무부처인 대형 공기업과는 달리 농림수산식품부 노동부 등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산하단체 기관장 자리에 차관이나 1급 출신들이 특별한 견제 없이 줄지어 임명되면서, 관료들 사이에서 ‘우리 부처 산하기관장 인사에 청와대가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결론적으로는 ‘쇠고기 문제’에 휘말려 자잘한 공공기관의 인사에는 청와대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아울러 기존 공기업 수장의 재신임은 반드시 ‘잔여 임기를 채우게 하는 방식’으로만 진행하기로 방침이 정해졌다. 지금까지는 사표를 일단 수리한 뒤 공모를 통해 재임명되면 그것으로 새로 3년 임기를 보장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일각에서 “그럴 거면 뭣하러 사표를 받았느냐”는 비판 여론이 일면서 잔여 임기 보장으로만 재신임을 하는 것으로 청와대의 방침이 굳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사표를 반려하고 ‘남은 임기를 채우라’는 통보를 받지 못한 이는 ‘재신임 탈락’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차기현 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