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의 라이

내가 아는 분 중에 항상 70대 후반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골퍼가 있다. 모 기업의 임원인 그분과 어느 날 라운드를 했었는데 나는 그날 그의 실체를 알게 됐다.그는 항상 클럽으로 볼을 건드리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라이가 좋건 나쁘건 상관없이 일단 건드려서 볼을 앞쪽으로 빼내고 어드레스를 취했다. 그의 그러한 습관을 아는 동반자들은 그가 세컨드 샷을 할 때 일부러 옆에서 지켜봐 주지 않았다. 동반자들은 항상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린만 바라봤다.나는 처음 몇 홀은 무척 어색하고 혼란스러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볼을 건드리며 골프를 하는 그의 모습도 이상했고, 그의 이상야릇한 플레이를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동반자들에게도 어이가 없었다.그렇게 18홀이 모두 끝났고 나는 그때까지 꾹 참아왔던 말을 그제야 꺼냈다.“제가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어보았고 그의 대답을 정리하자면 이렇다.그는 10년이 넘도록 소위 접대 받는 골프만 했다. 골프를 50대가 다 되어서 시작한 그로서는 초보자 시절부터 접대 골프를 하면서 골프가 아닌 스코어에 연연했고, 그에게 좋게 보이려는 동반자들은 스탠스가 조금만 좋지 않아도, 볼의 위치가 조금만 좋지 않아도 항상 “좋은데다 놓고 치세요~”라고 말했다.이제는 자기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고 해도 볼을 건드려 다시 놓지 않으면 도통 불안해서 골프를 할 수 없게 됐고,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자꾸 볼을 건드리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나는 골프 매너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단호하게 말했다.“지난 10년보다 앞으로 더 많은 날 골프를 할 겁니다. 그 습관은 절대적으로 고쳐야 합니다.”자식과 골프는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한다.우리는 필드 곳곳에서 많은 유혹을 받는다. 특히 볼이 어려운 라이에 걸려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 모두가 한번쯤 경험해 봤음직한 일이고, 또한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갈등했을 만한 일이다.드라이버샷이 약간의 슬라이스로 러프에 빠졌는데 가서 보니 공이 너무 깊숙이 박혀 있다면 일단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발끝으로 볼을 살짝 쳐올려서 공을 약간 띄워 놓는 경우가 있다. 필드에서 만나는 수많은 상황들이 있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극복하는 것 또한 골프의 묘미다.모든 사람들이 골프 룰이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매번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골프라는 게임에서 그 많고 복잡한 골프 룰을 다 기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모든 것에는 기본이 있고 원칙이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골프 룰이 다소 혼동된다면 이것 하나만은 반드시 기억하도록 하자. 모든 플레이의 원칙은 ‘볼이 있는 현재 상태에서 플레이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그 볼을 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약력: 명지대 졸업. 크리스탈 밸리CC 총지배인. CEO 역임. 지금은 골프 컨설팅사 대표이며 이미지 메이킹 강사로 활동 중.최성이·골프 매너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