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투자 전략의 핵심 변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작년 9월 이후 계속해 온 금리 인하 행진을 중단했다. 이로써 통화 정책은 ‘완화 위주’에서 ‘중립’으로 완전히 전환됐다. FRB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강조함으로써 ‘긴축 위주’로 전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이에 따라 작년 9월 이후 7차례에 걸쳐 3.25%포인트 인하됐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이제 인상될 것이 확실해졌다. 문제는 시기다. 언제 금리가 오르느냐는 경제는 물론 증시에도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빨리 오를수록 증시엔 악재다.금리 인상 시기에 대해 FRB의 태도는 어정쩡하다.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한 걱정을 강하게 강조하면서도 경기에 대한 우려도 계속해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증시 참가자들은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고비를 넘긴 것처럼 보였던 미 경제에서 숨은 복병들이 여전히 많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월가에서는 FRB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하반기 투자 전략을 짜는데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보고 있다. 다름 아닌 금리 인상 시기, 인플레이션 압력의 강도, 경기 회복 시점이 그것이다.FRB는 지난 6월 2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2 .0%로 동결하기로 결의했다. FRB는 FOMC 이후 발표한 ‘통화 정책 성명서’에서 인플레이션 위험을 곳곳에서 지적한 반면 경기 하강 위험은 줄었다고 분석해 앞으로 통화 정책 기조가 ‘경제 성장 저하 방지’에서 ‘인플레이션 압력 해소’로 전환될 것임을 시사했다.FRB는 우선 고유가의 폐해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다른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에너지 및 다른 상품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감안할 때 인플레이션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다”고 적시했다. 이어 “인플레이션 및 인플레이션 기대치의 상승 위험은 증폭돼 왔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성명서에 포함돼 있던 “근원인플레이션은 다소 개선돼 왔다”는 문구는 삭제해 인플레이션이 통화 정책의 초점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반면 경기 하강 위험성에 대한 표현은 완화했다. 구체적으로는 “전반적인 경제 활동이 어느 정도 견고한 가계 소비를 반영하면서 확장세를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FRB가 그렇다고 당장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플레이션과 경기 상황을 지켜보며 금리 인상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FRB는 인플레이션 위험이 고조된다면서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올해와 내년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점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경기가 확장세를 지속한다고 하면서도 “몇 분기 동안 성장세가 제약될 가능성이 있다”는 종전 입장을 유지했다. 한마디로 인플레이션이 걱정되지만 경기도 안심할 단계는 아닌 만큼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월가 전문가들은 FRB의 이런 태도를 감안할 때 금리 인상 시기가 당초 예상됐던 오는 9월보다 다소 늦춰질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는 금리를 동결한 채 내년에야 금리를 올릴 것이란 의견도 많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54명의 내로라하는 월가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올해는 금리를 동결한 뒤 내년 상반기에 0.5%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는 의견이 많았다. PNC파이낸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로버트 다이는 “FRB의 이런 태도는 당분간 현재의 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라면서 “올해 말까지는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이처럼 금리 인상 시기가 늦춰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하반기 투자 전략도 금리 동결을 전제로 짜는 게 필요해졌다. 금리 인상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현재의 통화 기조가 유지된다는 전제에서 경제와 투자의 밑그림을 그리는 전략이 필요할 듯하다.FRB가 지적했듯이 현재 미국 경제와 글로벌 경제의 당면 과제는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막지 못하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다 보니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일부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상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인플레이션 압력이 얼마나 심화될지 여부는 유가가 쥐고 있다. 배럴당 140달러를 넘은 유가가 과연 지속적인 상승세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하향 안정화되느냐에 따라 인플레이션 압력의 강도가 결정된다.결국은 유가를 예측하는 게 하반기 투자 전략을 짜는 데 중요한 변수다. 물론 현재로선 유가가 쉽게 하락세로 돌아서기는 힘들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락세로 돌아선다고 해도 하락 속도는 더딜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그렇지만 주목할 것은 부쩍 강조되고 있는 ‘원유 투기론’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6월과 7월 합쳐서 총 50만 배럴의 원유를 증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원유 공급이 모자라 유가가 오른다면 얼마든지 증산하겠지만 최근 유가 상승세에는 수급 요인 외에 투기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이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미 의회에서 일고 있는 원유시장 투기 억제를 위한 입법화 움직임이다. 이는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존 딩겔 에너지통상위원회 위원장(민주)은 “정부가 개입해야 할 시기가 됐다”며 “탐욕스러운 투기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조사 결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거래의 71%가 투기 목적의 거래이며 헤지 수요는 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의회는 밝혔다.이에 대해 상당수 애널리스트들도 공감한다. 마스터스캐피털 대표인 마이클 마스터스는 미 하원 에너지통상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정부가 제도적으로 투기를 막는다면 원유 선물 가격은 현재 배럴당 135달러에서 절반 수준인 배럴당 65~75달러로 급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물론 유가 상승이 수급 요인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또 공화당에서는 투기 억제 법안이 시장의 활동성을 해친다며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투기 억제 법안이 입법화되기 힘든 측면도 있다. 그러나 ‘투기 유해론’이 득세하고 유가가 하락이라도 할라치면 투기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FRB가 미 경기에 대해 다소 긍정적인 시각을 표출했지만 우려감이 가신 것은 아니다. 실제 최근 들어 한동안 쑥 들어갔던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와 신용 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현재로선 경제성장률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경기 침체를 면할 공산이 크다. 그렇지만 경기 회복이 예상만큼 빠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부담이다.당장은 주택 경기가 그렇다. 지난 4월 중 미국 집값은 사상 최대 폭으로 하락해 전체적 집값 수준이 4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집값 하락세는 내년까지 지속될 전망이어서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소비 심리도 16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고용 사정은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다 보니 하반기 성장률이 1%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FRB가 선뜻 금리 인상 방침을 시사하고 나서지 못한 것도 이런 점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여기에 최근 들어 신용 위기에 대한 불안감마저 불거지고 있다. 신용 평가 회사인 무디스는 미국 1, 2위의 채권 보증 업체인 MBIA와 암박파이낸셜에 대한 신용 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각각 다섯 단계와 세 단계 떨어뜨렸다. 이 여파로 지방채 금리가 오르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경기와 관련해서 결국은 두 가지를 봐야 한다. 하나는 신용 위기 위험이 더 불거질지 여부다. 관건은 7월 중순 2분기 실적을 발표할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등 대형 금융 회사의 성적표다.다른 하나는 역시 주택 경기다. 주택 경기가 당장 바닥을 치지는 않더라도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거래 증가 현상이 확산될 경우 경기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하영춘·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