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 유지훈 원할머니보쌈·뚜레쥬르 가맹점 사장

지금으로부터 꼭 4년 전 이맘때, 서른한 살의 초보 장사꾼 유지훈 사장은 빚 1억 원을 내 오픈한 자신의 가게 앞에서 다짐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4년여 몸 바친 직장까지 버렸으니 죽도록 뛰리라, 성공하리라.” 당시 그는 결혼 1년차 새신랑이었다.손에 쥔 창업 자금은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돈 8000만 원이 전부였다. 아파트 담보대출로 나머지를 조달해 안양 박달동 주택가에 원할머니보쌈 가맹점을 열었다. 상권이 좋지 않다며 가맹 허가를 꺼리는 본사를 설득한 끝에 겨우 개업할 수 있었다.그리고 4년이 흐른 지금, 유 사장은 5개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거느리고 연간 2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로 성장했다. 요즘 창업 희망자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메가 프랜차이지(Mega-Franchisee·여러 프랜차이즈 점포를 운영하는 1명의 가맹점주)가 바로 그다.유 사장은 맹렬한 속도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첫 점포 창업 이듬해에 안산 초지점을, 그 다음해에 시흥 은행점을, 그리고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에는 안양 시내에 베이커리 전문점 뚜레쥬르를 오픈했다. 1년에 하나씩 점포를 확장해 온 셈이다.이 모든 성과는 첫 사업이 발판이 됐다. 본사조차 고개를 갸우뚱한 ‘별 볼일 없는’ 상권에서 그는 대박 신화를 실현했다.“번듯한 식당 하나 없던 동네에 원할머니보쌈이 들어서자 폭발적인 수요가 일더군요. 17개 테이블로 하루 300만 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번호표 나눠 주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인건비 아끼려고 아내와 함께 죽어라 매달렸어요. 그렇게 쌓은 노하우로 점포를 늘려 나간 것이죠.”아무리 열심히 뛰었어도 운이 좋지 않으면 힘들지 않았을까, 넌지시 묻는 말에 그는 “정답은 사람”이라고 진지하게 답했다. 스스로 첫 창업 때 품었던 초심을 유지하는 일부터 종업원과 손님을 대하는 것까지 모든 성공의 해답이 ‘사람’에 달렸고 그것을 알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여기엔 의류 회사 영업부에서 쌓은 대인관계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다. 늘 단정한 정장 차림을 고수하고 절도 있게 인사해 신뢰를 주는 것은 기본이다. 인터뷰 중에도 그는 손님이 들어서면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손님과 눈을 맞추며 “어서 오십시오. 이쪽입니다”라며 깍듯한 인사를 반복했다.“어딜 가나 식당이 얼마나 많습니까. 외식업을 쉽게 보는 순간 그 사업은 망했다고 보면 돼요. 1명 유치하기는 어려워도 10명 뺏기기는 쉬운 게 동네 외식 장사이니까요. 천 길 낭떠러지 위 러닝머신을 달리는 심정, 그런 마음가짐으로 할게 아니라면 직장 생활하는 편이 훨씬 낫지요.”유 사장은 매일 5개 점포의 인력 운용과 서비스를 돌보고 있다. 각 점포마다 점장을 둬서 세부 운영을 맡기고 매출은 판매시점관리(POS) 시스템으로 일목요연하게 관리한다. 또 수시로 인터넷 CCTV로 다른 점포 상황을 체크하기 때문에 ‘원격 경영’이 가능하다. 모두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잘 갖춰진 덕에 가능한 일이다.특이한 점은 그에겐 특별한 목표가 없다는 것.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별다른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1년에 하나씩 점포를 늘린 것도 특별한 계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주어지는 기회를 살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수치’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나 스스로 만족할까봐 그게 가장 걱정입니다. 아직은 뭔가를 이뤄가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만족할 수가 없어요. 어떤 사업이든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순간 발전이 멈춥니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뉴스만 나와도 위기감에 휩싸이는데 어떻게 마음을 놓겠습니까. 열심히 뛰는 것, 그게 최고의 성공 비결 아닐까요.”약력: 1974년생. 신원 ‘지이크’ 영업부 근무. 2004년 4월 원할머니보쌈 안양 박달점 개업. 2005~06년 안산 초지점, 시흥 은행점 개업. 2007~08년 4월 뚜레쥬르 2개 점포 개업. 현재 5개 프랜차이즈 점포 경영 중.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