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6월 국회에서 국가재정법을 고쳐서라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예산을 더 늘릴 생각 말고 있는 예산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쓰라”고 지시하면서 추경은 없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된 줄 알았는데 재정부가 다시 ‘군불 때기’에 들어간 것이다.재정부는 대통령의 발언이 가지는 의미를 ‘4월 국회에서는 추진하지 말자’는 정도로 해석하면서 18대 국회가 출범하고 나면 6월에 임시국회를 열어 새롭게 구성되는 여당 정책 라인과 다시 논의해 보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상 추경을 거세게 반대하면서 정부의 행보에 걸림돌로 자리 잡고 있는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 물러나기만을 기다리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지난주(4월 28일~5월 2일) 재정부의 두 차관은 번갈아가면서 라디오에 출연해 추경 카드를 쓸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해 더 걷힌 세금(세계잉여금 4조9000억 원)을 재정 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쓰겠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추경 카드’가 물 건너간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둔 것이다.반면 여당은 이한구 의장을 중심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서 재정 지출로 경기를 띄우려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4조9000억 원은 정부의 역할이 늘어나게 되는 추경보다 감세나 국가 채무 상환 재원으로 활용하는 게 낫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정부가 이렇게까지 추경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만큼 현재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지난해 2분기부터 상승세를 보이던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는 점을 공식 인정했다. 또 대내외 여건 악화를 반영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당초 3.3%에서 3.5%까지 올리고 고용 창출 목표도 전년 동기 대비 20만 명으로 지금까지 목표로 했던 35만 명보다 대폭 하향 조정했다. 연간 70억 달러 정도가 될 것이라던 경상수지 적자 폭은 100억 달러까지 갈 수도 있다고 고쳤다.‘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안 좋다 안 좋다’라는 말이 경제 주체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쳐 그럴수록 더 안 좋아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가 앞장서서 경기 하강 국면 진입을 선언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에 정부가 가감 없이 경제 상황을 낱낱이 밝혀 위기감을 조성하고 나선 것은 추경을 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여기에는 강만수 장관이 이끄는 경제팀의 다급함도 반영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살리기’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도 지금까지 온통 경기가 좋지 않다는 소리만 들려오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경제팀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따라서 다소 인위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경기를 우선 떠받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더 걷힌 세금을 반드시 올해 추가로 재정 지출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건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변수는 추경 논의의 상대방인 한나라당이다. 세계잉여금 4조9000억 원을 어떤 식으로든 다시 민간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에는 정부와 여당 사이에 이견이 없다. 결국 방식이 문제인데 ‘추경 불가론’을 앞장서서 고수하고 있는 이한구 의장은 “나 말고도 현 경제팀을 신뢰하지 못하는 한나라당 의원이 많으며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책위 라인이 바뀐다고 해도 추경을 뜻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다.반면 정부는 조금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 의장이 주장하는 감세는 전보다 세금을 덜 걷어서 우선 민간의 주머니 사정을 좋게 하고 그게 소비로 연결되는 연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신규 고용 창출 20만 명 선이 무너진 데다 물가는 오르고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등 현재 경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다른 의원들이 추경 필요성에 동의해 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출했다.6월 임시국회가 열리기까지는 이제 한 달가량 남았다. 문제는 역시 여론의 움직임이다. “정부가 새롭게 사업을 만들거나 기존 사업을 앞당겨 재정 지출을 늘리면 당장은 총수요가 늘어나서 경기를 띄울 수 있겠지만 나중에 더 큰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지적에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추경 실현 여부에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