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호오페라단 단장

김희정 단장은 참 작고 아담한 체구를 가졌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작은 얼굴에 야리야리한 몸매는 흔히 연상하기 쉬운 풍채 좋은 성악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그 가냘픈 몸집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는 우렁차면서도 섬세하고 또한 풍성한 감정을 담고 있다. “처음 성악계에 몸담았을 때부터 목소리 칭찬을 많이 들었지요. 특히 미묘한 감정흐름을 잘 살린다는 칭찬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그 때문에 오페라 중에서도 여주인공의 비중이 가장 큰 작품 중 하나인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을 가장 많이 맡았다.‘라 트라비아타’는 파리 사교계의 무희 비올레타와 프로방스 출신의 귀족 청년 알프레도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죽도록 사랑하다가 끝내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마는 비운의 여주인공이 바로 ‘비올레타’다. 사교계의 여왕다운 화려한 음색과 죽음에 이르는 그 극한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비올레타’는 프리마돈나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어 하는 역할이다. 김 단장은 그 연기하기 어렵다는 ‘비올레타’를 무려 여덟 번 이상 연기했다.“많은 프리마돈나들이 비올레타를 연기했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마리아 칼라스의 비올레타를 참 좋아해요. 카리스마 있는 음색이나 연기력도 물론이지만 악보를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발랄함과 서정적인 면, 비극적인 면까지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 폭넓은 감정흐름을 닮고 싶었죠.” 그래서 처음 콩쿠르에 입상했을 때보다 비올레타 역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그 순간이 더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한다. 온 몸이 떨리는 긴장감을 안고 마치 피를 토하듯 열정을 다해 비올레타의 아리아를 부를 때마다 새삼 자신이 노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지 깨닫는다고 한다.사실 뛰어난 성악가는 피땀 어린 각고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하늘에서부터 부여받은 천성적인 재능도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보자면 소프라노로서의 김 단장은 축복받은 재능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이북에서 내려온 아버지도 성악을 하시는 분이었다. 친척들 중에도 음악가들이 많았다. 아버지를 닮아 그녀를 비롯한 4명의 딸들도 모두 성악에 재능이 있었다. 그녀가 성악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열두 살 무렵부터 한국소년소녀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며 일찌감치 자신의 재능을 선보일 수 있었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일을 하건 최고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항상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타고난 성정까지 더해져 그녀는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소프라노가 될 수 있었다.“왜 어려움이 없었겠어요. 모든 예술가들이 자신의 재능과 한계에 대해서 아무런 고민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 고민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예술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걸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그분의 곁을 지켜드리느라 유학도 남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인 서른 살 무렵에 갈 수 있었다. 낯설고 물 선 그곳에서 처음으로 혼자가 되어 자신을 갈고닦았다. “유학 중에 많이 아프기도 했죠. 하지만 유학 생활보다 다시 귀국했을 때 나라는 존재를 음악계에 처음부터 다시 알려야 하는 작업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하지만 그녀는 결국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어필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무대를 장악하는 흡입력과 관객석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지는 풍부한 성량으로, 섬세한 감정 표현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연기력 등으로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사랑받는 소프라노가 됐다. 그 때문에 오페라 무대는 물론 음악회로부터의 섭외도 연일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서야 할 무대라면 공연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자신을 향해 환호를 보내주는 관객들을 보며 평생 마리아 칼라스처럼 노래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성악가로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레퍼토리를 개발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더욱 깊게 더욱 넓게 더욱 곤고하게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호그룹의 김태옥 회장에게서 새로 창단하는 시호오페라단의 단장직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문화예술 공연에 관심이 많은 김 회장은 시호엔터테인먼트 내에 시호오페라단을 창단해 사회에 문화로서 공헌하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김 회장에 따르면 “최고의 소프라노일 뿐만 아니라 예술계 혁신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고 있는 훌륭한 예술가”인 그녀야말로 시호오페라단의 초대 단장으로 가장 적임자였다고 한다.“제의를 받고 많이 망설였어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무대 경험은 많지만 오페라단 전체를 지휘하고 통솔하는 막중한 임무를 잘해 낼 수 있을까 하고요.”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대중과 유리돼 있는 클래식을 대중과 보다 더 가깝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후학 양성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후배들이 설 수 있는 다양한 무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후배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너무 없거든요. 그리고 대중들에게도 클래식은, 그리고 오페라는 어렵고 지루하게 여겨지고 있고요.” 그 때문에 대중 속으로 다가가기 위해, 대중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창단된 시호오페라단은 그녀의 도전 의식을 일깨웠다.오는 5월 9일 시호오페라단의 창단 기념 콘서트 ‘사랑으로 큰 사랑으로(Thank you for)’는 그 ‘좋은 무대’를 향한 첫 번째 발걸음이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해설과 함께 김 단장은 물론 박정원 소프라노, 김성길 김동규 김주택 바리톤, 김남두 박현재 테너 등 내로라하는 성악계의 거장들이 한데 뭉친 일종의 갈라 콘서트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오페라 아리아를 선곡해 대중이 공연 내용을 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사실 창단 공연인 만큼 더 많은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무대 세트며 공연 내용이며 공연 환경 등에서 보다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었죠.” 하지만 역시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욕심내고 있는 것들을 모두 보여주기에는 아직도 공연장이며 여러 가지 여건들이 쉬이 따라주지 않았다. 보다 더 좋은 공연, 보다 더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공연 준비에 매달리는 그녀를 보며 많은 이들이 “솔리스트로서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는 걱정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무대를 향한 그녀의 욕심은 기획자로서뿐만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욕심이기도 하다.“물론 전 평생 소프라노로 살 거예요. 그래서 힘들어도 연습은 잊지 않고 꼬박꼬박하죠. 제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리아 칼라스처럼 죽는 그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시호오페라단의 일에 열정을 쏟고 있는 것이에요. 저 자신을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후배들, 그리고 대중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오페라의 대중화와 전문화를 이끌고 오페라의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김 단장. 오페라 음악을 통해 벽을 허물고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시호오페라단을 세계적인 오페라단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약력: 경희대 성악과 학사. 이화여대 성악과 석사. 이탈리아 니노로타 아카데미아. 미국 리버티대 음악교육학 박사. 카네기홀, 이탈리아,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독창회 10회 개최. 시호오페라단 단장(현).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