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륜 로지스올 회장

물류는 산업의 혈맥이다. 가전제품에서부터 자동차 철강 식품 농산품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은 물류를 통해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 연결된다. 물류가 원활하지 못하면 상품 수급에 불균형이 생기고 가격이 갑자기 천정부지로 뛰기도 한다.물류(物流)란 원래 물적유통(物的流通)의 준말이었으나 그 의미가 확장돼 물품의 이동과 관리에 관계된 모든 활동을 가리킨다. 이게 원활하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국가 경쟁력이 제고된다. 현대는 스피드 경쟁 시대이고 딜리버리(납기) 싸움이기 때문이다.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로지스올(회장 서병륜)은 물류 분야에서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는 중견 그룹이다. 여기에는 한국파렛트풀을 비롯해 한국컨테이너풀 한국로지스풀 로지스인터내셔널 등 10개의 기업이 있다. 이 그룹의 작년 매출은 약 2500억 원에 달했고 올해 목표는 3200억 원으로 잡고 있다. 전체 종사자는 정규직과 아웃소싱 인력을 합쳐 1800명에 이른다.주력 기업인 한국파렛트풀은 전자 섬유 석유화학 생활용품 농수산물 비료 생산 업체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팰릿 풀(pallet pool)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전국에 보유하고 있는 팰릿은 약 700만 개에 이른다. 이 회사의 팰릿을 이용하는 기업체는 약 6만 개에 달한다. 국내 웬만한 규모의 업체는 대부분 이 회사의 팰릿을 이용하는 셈이다. 전국에 깔려 있는 팰릿은 전자 부품 업체에서 완성품 업체로,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완성차 업체로 실려간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 팰릿은 또다시 원자재 업체 등 거래 업체로 이송된다. 실핏줄을 통한 혈액의 공급이 인체에 산소를 불어넣듯이 팰릿의 이동은 그 자체가 물류이자 산업의 혈맥 역할을 한다.팰릿은 화물을 쌓는 틀이나 대(臺)다. 목재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 단순한 형태의 이 팰릿이 물류 혁신 및 기업의 경비 절감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팰릿이 있기 때문에 지게차로 제품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컨베이어를 타고 만들어진 생산 제품을 로봇 시스템을 이용해 팰릿에 차곡차곡 쌓은 뒤 지게차가 트럭에 실으면 생산 제품의 운송 준비가 완료된다. 도착해서도 지게차로 하역 작업을 하면 된다. 따라서 팰릿은 운송 자동화의 핵심인 셈이다.팰릿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수작업으로 상하차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게차도 기껏해야 목재나 철강 제품 등 거대 중량물을 옮기는 데만 사용됐다. “팰릿은 수작업으로 할 때보다 10배 이상 생산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그만큼 비용과 시간도 절약된다”고 서병륜(59) 회장은 강조한다.한국파렛트풀의 창업자이자 한국물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 회장은 국내 물류 분야의 개척자다. 하지만 이 분야를 국내에 소개하고 자리 잡도록 만드는 데는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서 회장은 서울대 농대에서 농업기계를 전공한 뒤 1977년 대우중공업에 입사하면서 물류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가 배치된 곳은 지게차 생산 공장이었다. 그러다 제2차 오일 쇼크가 터지고 경기가 냉각되면서 지게차 판매가 격감하자 그에게 특명이 떨어졌다. “당신이 책임지고 지게차 판매를 늘리라”는 명령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전격적으로 지게차 마케팅 팀장으로 발탁됐다.앞이 캄캄했다. 전공이 기계인 만큼 생산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갑자기 판매를 맡으라니 난감했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외국의 사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지게차 판매는 팰릿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발로 뛰고 머리를 싸매 팰릿 보급 확대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다 보니 이건 개별 업체 차원을 넘어서는 국가적인 프로젝트라는 점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정부 물류 업계 화주(貨主)기업 등 적어도 수만 개 기업이 힘을 합쳐야 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외국은 대부분 정부 주도로 이 프로젝트가 이뤄지고 있었다. 4년 동안 정부 기관을 드나들고 각계를 설득하고 다녔으나 정작 몸담고 있는 기업체의 영업 실적 향상으로 연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그는 사표를 제출하고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여직원 1명과 함께 한국물류연구원을 설립했다. 체계적으로 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보고서를 만들어 물류의 중요성을 널리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일본 재팬팰릿렌탈(JPR)의 사카이 전무로부터 연락이 왔다. “팰릿을 지원해 줄 테니 아예 당신이 한국 내에서 팰릿풀 사업을 벌여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JPR는 약 5만 개의 팰릿을 제공했다. 1985년 한국파렛트풀이 설립됐다. 팰릿의 렌털과 공동 이용이라는 생소한 사업이 한국에서 시작된 것이다.서 회장은 팰릿의 중요성과 이를 이용할 경우 경비 절감 효과가 상당하다는 점을 업체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설명했다. 또 JPR와 합작으로 한국과 일본 간 국제팰릿풀 시스템도 구축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팰릿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이 사업에 참여하도록 일일이 설득했다. 처음부터 팰릿이 대규모로 필요했으나 그렇다고 맨손으로 창업한 마당에 거액을 들여 이를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외상으로 제공하도록 부탁한 것이다.팰릿 사업은 ‘6·29 민주화선언’을 계기로 크게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노사 분규 여파로 인건비가 급등하자 팰릿 이용이 급증한 것이다. 국내 팰릿 업체들도 더욱 적극적으로 이 사업에 참여했다. 서 회장은 “그동안 투자한 팰릿이 금액으로 약 5000억 원에 이른다”고 밝힌다. 그는 물류 효율화를 위해 아산물류센터를 비롯해 전국에 50개의 물류센터를 구축했고 하루 2000여 대의 운행 차량을 확보하는 등 대표적인 종합 물류 공동 사업 업체로 발돋움하고 있다.서 회장은 국내에서의 팰릿 공동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아시아를 아우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팰릿 공동 이용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배편으로 실려나간 팰릿을 굳이 한국으로 가져오지 않고 중국 내에서 물류에 활용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2002년엔 톈진과 옌타이 등에 물류센터를 만들었다. 이 센터는 팰릿 렌털의 거점 역할을 하는 곳이다. 같은 해에 일본 JPR와 합작으로 싱가포르에 아시아팰릿풀을 설립했다. 아시아의 물류 맹주로 발돋움하기 위한 것이다.서 회장은 팰릿 위에 적재돼 제품을 담는 용기인 컨테이너(큰 상자 형태로 기존의 해상 운송용 컨테이너와는 다른 것)의 공동 이용을 위한 사업에도 나서 자회사로 한국컨테이너풀을 설립했다. 이와 함께 공동 사업 운영 업체와 관리 업체 등을 자회사로 속속 출범시켰다.서 회장은 물류 개선을 통한 기업체 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독자적인 사업 못지않게 사회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 물류협회를 만드는 산파역을 맡았다. 자신이 직접 설립한 물류연구원을 확대 개편해 사단법인 한국물류협회를 발족하고 사무국장을 거쳐 회장을 맡고 있다. 이를 통해 산업계의 물류 표준화 공동화에 나서고 기업과 관계 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하며 물류 효율 향상을 위한 연구 등에 나서고 있다.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서 회장은 건설교통부장관 표창을 비롯해 한국로지스틱스학회 최고경영자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아시아태평양물류연맹 회장도 4년 동안 역임했다.서 회장은 “물류 공동화는 기업체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라며 “이제 비로소 각계에서 이에 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 사업 구상은 크게 하되 시작은 작게 하라)’을 사업 철학으로 삼고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인 듯 “앞으로 아시아 물류 공동 사업 분야의 개척자가 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회사 개요〉창업: 1985년(모기업인 한국파렛트풀 기준)계열사: 한국컨테이너풀 한국로지스풀 등 10개매출: 작년 2500억 원(올 목표 3200억 원)인원: 1800명 주요 사업: 팰릿 렌털, 물류 공동화약력:1949년생. 72년 서울대 농공학과 졸업. 77년 대우중공업 입사. 84년 한국물류연구원 설립. 85년 한국파렛트풀 창업(대표). 89년 한국물류협회 설립(현 회장). 2003년 아시아태평양물류연맹 회장. 수상;건교부장관 환경부장관 및 농림부장관 표창 등 다수.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