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6년 2월까지 중국의 대기업의 하나인 TCL그룹(集團) 및 TCL 톰슨전자에서 근무하다가 곧바로 3월에 현재의 (주)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로 부임해 2년을 넘기고 있다. 아마도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투자기업이나 합작기업이 아닌 순수 중국 대기업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때문인지 여러 지인들로부터 중국 회사 내부의 일상이라든지, 상담, 또는 거래할 때 유념해야 할 부분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특히 인간관계의 특징으로 회자되는 ‘관시’에 관해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관시(關係)’는 인간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관시는 동서고금,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다 존재하며 나름대로 비즈니스를 포함해 일상생활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주는 요소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중국 회사 내부의 관시는 우리들의 그것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첫째, 많은 중국 회사 내부에는 특정한 간부(반드시 고위 간부가 아닐 수도 있다)를 정점으로 하는 비공식 그룹들이 존재한다. 직원들은 회사의 공식적인 조직도에 따라 일을 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이 소속된 그룹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언제나 염두에 둔다. 예컨대 자신의 공식적인 상사가 지시하는 일이 소속된 그룹의 이해에 상반된다면 겉으로는 순종하는 듯이 행동하지만 어떻게 하든 소속 그룹을 보호하려고 한다.둘째는 이런 그룹의 존재가 매우 양성적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당신은 누구의(또는 어느 쪽) 사람이지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펄쩍 뛰며 부인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중국 회사의 내부에서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게 금기시되지 않는다. 회장(총재)이나 사장(총재 또는 총경리)도 이것을 인정하고 이 그룹들의 상호이해를 조정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중국 회사는 내부 의사소통이나 조정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한다. 직원들도 그것을 인정하며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반성하기도 한다. 또한 한 간부가 부서를 이동하면 몇몇 부하 직원을 함께 데리고 가는 일도 흔하다.세 번째는 이러한 그룹들이 대개는 반영구적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회사를 옮기는 일이 우리보다 훨씬 흔한데 그룹에 속하던 사람이 다른 회사로 옮긴 뒤에도 일정한 유대를 유지한다.필자도 중국 회사를 떠난 지 1년 반이 지나 홍콩에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선전에서 가까이 지내던 간부들 15명이 버스를 타고 필자를 만나러 왔으며 그중 4~5명은 이미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네 번째는 앞의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조직원의 소속 그룹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중국 회사 내부에서는 어떤 그룹의 일원이 되지 않고는 실력과 경륜이 있어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일부 중국 사람들은 ‘스몰 그루피즘(Small groupism)’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현대적인, 또한 서양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우 불합리하게 보이나 중국 회사에서는 이것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도 있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필자도 경영에 참여했던 회사에서 이러한 그룹의 대략을 파악하는데 거의 반 년 이상의 기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중국 회사와의 비즈니스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중에는 관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꽤 있는 듯하다. 단순히 식사를 하고 술을 몇 번 마시고 선물을 주고받았다고 해서 관시를 맺었다고 생각하면 실수하고 마는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아울러 지난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문화적 특성인 관시를 중국 회사들이 어떻게 진화·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중국 회사의 미래의 모습도 변할 것으로 생각된다.약력: 1949년생. 삼선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77년 LG전자 상품개발 담당. 97년 LG전자 디스플레이 사업 해외영업부문 총괄. 2004년 TCL톰슨전자 수석운영관. 2006년 강원랜드 대표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