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장하성펀드는 지분 보유 기업의 지배 구조 개선을 표방하며 감사 또는 이사 후보를 주주 제안을 통해 주총 안건으로 상정해 둔 상태다. 장하성펀드가 투자 기업들과 사전 협의한 곳은 순조로운 주총이 예상되지만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감사 후보 선임을 위한 우호 지분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여 한판 표 대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상법상 감사 선임 안건은 ‘3%룰’이 적용돼 지분율이 높은 대주주라고 하더라도 3%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도 관전자들의 흥미를 높여주는 대목이다. 장하성펀드가 최근 동원개발 주총에서 삼성투신운용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올해도 기관투자가들이 장하성펀드 측의 손을 들어줄지가 관심이다.장하성펀드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곳은 성지건설. 이 회사 지분 5.11%를 보유하고 있는 장하성펀드는 오는 21일 열리는 이 회사 주총에서 독자 감사 후보를 내는 한편 회사 측이 내세운 이사 후보들에게 모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장하성펀드는 최근 주주들에게 주총 의결권의 위임장을 달라고 권유문을 발송했다.성지건설은 지난달 27일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대주주로부터 지분 24.4%와 경영권을 730억 원에 인수한 회사. 장하성펀드는 금감원에 제출한 참고 서류를 통해 “과거 두산그룹의 비자금 조성 등에 관여했던 박용오 씨의 행적으로 볼 때 경영권 인수는 성지건설의 기업 투명성과 주주 가치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고 밝혔다.장하성펀드는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인사가 필요하다며 배상환 프롤로지스 코리안매니지먼트 사장을 감사 후보로 추천했다. 반면 회사 측이 추천한 이사 후보인 박용오 전 회장의 장남 경원 씨와 차남 중원 씨, 두산건설 상무 출신의 윤양호 씨 등에 대해 모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경원 씨는 두산건설 영업사업본부 상무와 전신전자 대표 등을 지내다 2006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중원 씨는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 영업사업본부 상무를 지내다 두산그룹에서 퇴출된 이후 지난해 3월 코스닥 업체인 뉴월코프를 인수해 8개월 정도 경영한 뒤 경영권에서 손을 뗀 상태다.성지건설에 앞서 17일 열리는 한국전기초자 주총에서도 장하성펀드가 회사가 추진 중인 이사 선임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힐 예정이다. 이 회사 지분 5.07%를 보유하고 있는 장하성펀드는 “2000년 전기초자를 인수한 현 경영진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해 회사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기업 가치와 주주 이익을 크게 훼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난해 11월 추진한 상장 폐지 작업도 기업의 실질 가치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공개 매수가 진행됐다”며 “주주 가치 보호를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장하성펀드는 김석연 경제개혁연대 부소장을 감사 후보로 추천한 반면 회사 측이 내세운 사내이사 후보 4명, 사외이사 후보 2명, 감사 후보 1명에 대해선 모두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했다.장하성펀드는 벽산건설 주총(21일)에서도 조현승 올카인즈 대표이사를 감사 후보로 추천했다. 회사 측은 김용세 현 감사를 재선임한다는 방침이다. 역시 표 대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장하성펀드는 지난해 3월 주총에서 회사 측의 감사 선임 시도에 반대했지만 결과를 뒤집는 데 실패했고 7월 임시 주총에서 자체 사외이사 후보를 내려 했지만 역시 무산됐다.대한제분 주총(21일)에서도 장하성펀드는 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이우찬 다산회계법인 컨설턴트를 감사 후보를 내세웠다. 다른 기관투자가인 알리안츠운용이 유정근 회계사를 또 다른 감사 후보로 추천한 점이 눈길을 끈다. 대주주인 대한제분 측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관심이다.한편 장하성펀드와 회사 측이 지배 구조 개선에 합의해 순조로운 주총이 기대되는 곳도 있다. 한솔제지(28일)가 대표적이다. 장하성펀드는 김진형 마스터이미지 대표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는데 회사가 펀드 측의 요구를 수용한 바 있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김재창 기자 changs@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