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11월 22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6거래일 연속 오르며 달러당 930원 선을 넘어섰고 원·엔 환율도 1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해 100엔당 856원75전을 나타냈다. 이 같은 환율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선물환(외화 종류, 환시세 등 거래 조건을 미리 정해 놓은 외국환)을 과도하게 매도했던 기업과 수입 업체들은 가파른 환율 오름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11월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4원70전 오른 933원60전에 마감됐다. 이는 9월 18일 이후 두 달여 만에 930원대에 진입한 것이며 11월 들어서만 32원90전 오른 것이다.환율 급등세는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한 모습이 이어지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화에 대한 선호로 나타나고 있다. 또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 자금의 환전 수요도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반면 이날 엔·달러 환율이 하락, 원·엔 환율은 100엔당 5원33전 오른 856원75전을 나타냈다. 엔·달러 환율은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0.13엔 하락한 108.96엔에 거래됐다. 이는 엔 캐리 트레이드(저금리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것) 청산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엔화에 대한 수요가 컸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은 작년 5월 16일 858원80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원·달러 환율의 급등세는 외환 선물 스와프 시장의 대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은행들이 수출 업체의 선물환 매도를 받아주는 과정에서 자체 환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달러를 조달했던 스와프 시장이 달러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또 펀드 쏠림 영향으로 예금이 빠져나가 돈(원화)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은행들은 외화(달러) 자금조차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외환위기 재연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스와프 시장의 달러 부족 현상은 현물환 시장에까지 심리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환율 급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한국은행이 스와프 시장에 달러를 공급해 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지만 정부와 한은은 “은행들의 한은 개입 요구는 일종의 모럴 해저드이며 자율적인 시장 메커니즘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스와프 시장에 달러 공급이 끊어진 것은 달러 공급 역할을 해 온 외국 은행 지점들이 글로벌 신용 경색 우려로 본점에서 달러를 빌리기 어려워진 데서 기인한다. 게다가 올 들어 단기 외화 차입이 급증하면서 한국은행이 외화 차입에 대한 규제를 엄격히 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장으로 차입 금리가 급등, 국내 은행과 기업들의 해외 차입이 사실상 중단됐다.그러나 환율 급등·주가 급락 움직임을 ‘건전한 조정’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은 11월 22일 한국경제연구학회 기조연설에서 “현재 국내 금융시장은 해외 요인으로 인한 영향과 그동안 다소 지나쳤던 쏠림 현상이 건전한 조정을 받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금융계는 “심리적 안정을 주기 위한 립서비스”, “금융시장 전반의 투자 심리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해야 하는 의례적 멘트”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한편 환율 급등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은행의 한 외환 딜러는 “향후 환율 움직임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 해소 여부에 달려 있다”며 “외국인의 순매도가 지속되는 한 달러 수요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