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우리 기업의 신뢰도 제고, 기업 지배 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 및 책임성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 내부회계관리제도,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공개, 주주대표소송제, 회계장부열람권, 이사해임청구권 등의 행사 요건 완화, 사외이사제 도입, 감사위원회 활성화,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내부거래 공시제도 강화, 국제제회계기준 도입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거나 예정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기업 경영 환경을 둘러싼 제반 법규와 제도가 국제 수준으로 선진화돼 가고 있는 상황이다.그러나 이러한 기업 경영 제도의 변화와 환경 변화에 따라 경영 투명성 개선을 실질적으로 추진해야 할 최고재무책임자(CFO: Chief Financial Officer)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도 매우 낮은 상황이다. 우리 기업에 CFO라는 직함이 본격적으로 생기고 집행 임원 가운데 CFO를 공식적으로 임명하기 시작한 것도 2002년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전에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에서조차 CFO를 따로 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출발부터 늦은 셈이다.미국재무인협회(AFP)의 CFO 직무 정의에 따르면, CFO는 자금부문(Treasurership)과 회계 및 통제부문(Controllership)을 모두 총괄 책임지는 재무 담당 최고 임원이다. CFO는 단순한 기획 담당 임원이나 자금 담당 또는 회계 담당 임원이 아니라 이 모든 부문을 총괄 책임지는 자로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보완과 견제를 통해 공동 의사 결정을 하는 CEO의 경영 파트너인 것이다. 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책임성(Accountability)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CFO의 역할과 책임 범위가 먼저 정확히 정의된 후, 이에 맞춰 CFO가 기업 내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사)한국CFO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2007년 현재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상장기업 중 CFO를 공식적으로 임명하고 있는 기업은 약 300여 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상장기업이라 하더라도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CFO나 재무 담당 임원을 별도로 두지 않고 경리부장이 대표이사에게 직접 보고하는 회사도 많았다. 또한 CFO를 임명하고 있는 기업 중에서도 해당 CFO가 자금과 회계를 모두 관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어떤 기업은 자금 담당 임원을, 어떤 기업은 회계 담당 임원을, 어떤 기업은 경영기획 담당 임원을 CFO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경영 투명성, 책임성,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을 위해 선진국의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왔다. 하지만 정작 이를 실천할 가장 중요한 인물인 CFO에 대한 역할과 직무에 대해서는 관련법과 규정에서 아무런 언급도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경영 투명성과 관련한 제반 법규정을 보면 어떤 조항에는 신고를 담당하는 이사로, 어떤 조항에는 내부회계관리자로 명시돼 있다. 또 어떤 조항에는 재무 담당 이사로 명기해 놓고 있다. 책임과 의무를 제각각 주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 CFO를 지정해야 할 어떤 법적 근거나 의무가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설령 기업 경영상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CFO를 지정 임명했다 하더라도 이처럼 재무 관련 보고 채널과 책임자가 그때그때마다 다르다면 특정 임원을 회사 내에서 CFO로 부른다고 해도 그 CFO가 무슨 재무 경영에 대한 책임을 총체적으로 맡을 수가 있을까. 아울러 이런 상황에서 회사 전체적인 경영 책임성이 담보될 수 있는 것인지 모호하기만 하다.외환위기 이후 기업 지배 구조를 포함해 우리 기업의 재무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해 많은 개선과 발전이 이루어졌고, 기업 경영 관련 제반 법과 제도가 국제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 향후 우리 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책임성이 실질적으로 확보될 수 있도록 CFO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내용이 관련 법규정에 반영돼 CFO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학수고대해 본다.※ 이 글은 저자 개인의 의견으로 한국CFO협회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혀둡니다.임우돈(사)한국CFO협회 사무총장 wdlim@cfokorea.org약력: 1958년생. 83년 연세대 대학원 졸업. 87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92년 장기신용은행 증권연구실장. 2000년 한국IR센터 대표이사. 2002년 한국CFO협회 사무총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