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코리아 열풍과 닮아…장기 상승 추세는 여전히 ‘굳건’

마치 커티삭 위스키의 로고를 흉내 낸듯한 범선이 대양을 누비는 그림, 심장박동 수가 빨라지는 배경음악, 그리고 피날레를 장식하는 압도적인 광고 문구가 어울려, 전 국민이 지금 당장이라도 창구로 달려가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 냈던 바이코리아의 신화가 무너진 지 꼭 7년째다.당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은 지수 6000을 외치며 전국 강연장을 누볐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에 열광했다. 그는 주식시장의 신화를 썼고 바이코리아 펀드에서 수익을 거둔 투자자들에게 그는 시장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신화는 하무하게 무너졌고 기대와 환호는 그보다 더한 열패감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우리들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간과한 것은 그 이면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이코리아의 성공과 실패가 준 교훈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놓친 것이다.타임머신을 돌려서 1999년 말로 돌아가 보자. 1999년 말 성장주의 돌풍이 일면서 주가가 2년 전 최저점 대비 무려 300% 이상의 상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9년 말 지수가 연일 고점을 경신하면서도 시장은 정보기술(IT) 업종의 단일 상승으로 슬림화되고 있었다. 처음 증권, 은행, 건설의 트로이카와 제약, 유화, 자동차, IT로 이어진 종목군의 확대 양상이 1999년 들어 현저히 변화하면서 IT 주도 논리가 만들어졌다.시장의 논리는 단순했다.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는 것, 과거의 잣대로 보면 당장의 이익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지만 이제는 미래 이익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 결과 주가수익률이 100배에 이르는 주식과, 순자산배율이 10배를 넘는 주식들에 여전히 저평가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1999년 말 각 증권사의 2000년 코스피 목표치는 3000을 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하지만 이때 간과하지 말아야 했던 것은, 설령 그런 주도 논리가 진리라 하더라도 시장이 건강하다면 그 주도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투자자들의 힘 역시 만만치 않았어야 한다는 점이다.그러나 시장은 그렇지 않았다.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는 가운데 미래 가치는 몰라도 최소한 자산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주식들은 연이어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반면 소수의 상승 종목군은 IT로, 다시 IT 내에서도 가치 측정이 어려운 주식들이 중심이 되어 52주 신고가를 연일 경신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시장의 논리가 어차피 가격을 설명할 수 없다면 차라리 설명이 불가능한 주식이 더 매력적이라는 해괴한 심리가 팽배했던 것이다.이러한 움직임에 처음에는 회의하던 투자자들과 전문가들이 두 손을 들고 결국에는 모두 새로운 흐름에 동참을 결정했을 때 시장은 이미 올가미에 걸려들고 있었다.여기에서 감춰진 진실 하나는 바이코리아 펀드의 역할이다. 이 펀드는 설정 후 자신의 힘을 과신하게 됐다. 손을 대는 종목들은 속속 상승 주도주의 대열에 올라서고 마음만 먹으면 시세를 만들 수도, 시세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바이코리아 펀드가 규모가 커도 시장 전체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바이코리아는 스스로 만든 시장 주도 논리의 포로가 되어 갔다.지수가 오를수록 시장은 점점 더 많은 유동성을 필요로 했고, 지수가 상승할수록 주식들의 가격은 올라갔다. 2만 원을 오르내리던 데이콤 주식이 60만 원까지 치솟았다. 결국 펀드는 점점 다른 종목에 투자할 여력을 잃어가고 기존 편입 종목의 수익률 관리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유입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2만 원에서 60만 원이 되는 과정에서 주가는 30배가 오른 것이지만 편드의 평균 매수 단가는 30만 원이 된다. 이 말은 개인 투자자가 2만 원에 사서 60만 원에 파는 것은 30배의 수익을 고스란히 챙긴다는 의미지만 펀드가 2만 원대에 매수해 주도 종목군으로 올리고 다시 평균 매도 단가 30만 원 이상에서 이익을 실현하려면 추격 매수자들의 여력이 커서 펀드가 개입하지 않고도 추가 상승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의미가 된다.하지만 이미 시장은 힘을 잃고 있었다. 주식시장의 호황으로 넘쳐나던 유동성은 금리가 인상되면서 급속도로 줄어들었고, 시장은 이미 전체의 성벽이 무너진 가운데 성곽만 남은 상황을 맞은 것이다. 물론 추격 매수자들이 일부 이익 실현의 기회를 주기는 했지만 바이코리아는 이미 너무 깊은 데까지 발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환매가 시작되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반대로 바이코리아가 편입한 주식일수록 하락폭이 커지는 악순환을 맞이하게 됐고 당황한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는 가격 지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이런 사태를 글로벌 증시 환경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판단 오류다. 만약 당시에 다수의 건강한 펀드들이 활동하고 그들 사이에 다양성이 존재했다면 종목별 변동성의 차이는 그 절반의 폭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즉, 성장형 주식에서 몰락한 가장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특정 펀드가 패권을 가질 때의 위험이다.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주가는 저점 대비 400% 상승하고 상승의 주도 논리 역시 중국의 성장이라는 꿈에 전적으로 매달려 있으며 상승 종목은 점차 슬림화되고 바이코리아에 필적할 만한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라는 괴물이 시중의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기가 서서히 경고음을 울리고 금리가 상승하며 현대중공업 한 주를 사기 위해서는 불과 1년 전에 비해 몇 배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이런 현상의 중심에 이미 미래에셋의 펀드들이 있었다는 점은 더욱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미래에셋이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주가는 돈의 힘으로 더욱 올라가고, 올라간 주가에는 가격을 합리화하기 위한 각종 이유가 만들어졌다. 그 다음에는 미래에셋 와처(watcher)들의 추격 매수가 일어나고 주가는 더욱 상승했지만 미래에셋은 아직 그들이 스스로의 지분을 모두 팔았을 때 이익을 내는 구조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 상황에서 만약 미레에셋 펀드에 환매가 몰린다면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항상 시장은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한곳으로 쏠리면 위기이고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면 기회다. 그렇다면 증권, 자산운용, 맵스자산운용, 생명을 아우르는 미래에셋 자금들의 힘은 곧 현재 우리 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유발할 것이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진리는 금융시장에서도 적용된다.다만 2007년 말 현재 한국의 증시는 단기적으로는 아직 ‘대단히 큰 폭’의 추가 조정을 필요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산업 구조의 변화와 인구 사회 구조의 변화가 맞물리며 어지간해서는 자산시장의 장기 상승 흐름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6개월이건 1년이건 간에 시장의 조정기에 이러한 쏠림이 전체의 흐름을 방해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면 우리는 의외로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것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불변의 진리이듯, 운용자들도 다양한 철학을 가진 다수의 운용자가 포진하고 있어야 그 시장의 건강성과 미래가 담보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미래에셋의 독주는 그리 머지않아 의외의 일격을 맞을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인사이트 펀드는 글로벌 자산에 운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문제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글로벌 시장의 운용에 있어서 경험이 일천한 한국의 운용사가 책정한 상품 운용 보수가 백년 전통의 글로벌 운용사들보다 50% 이상 비싸게 책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의 투자심리가 얼마나 탐욕화돼 있는지, 또 투자 문화가 얼마나 척박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시골의사’ 박경철현직 외과의사이자 국내 최고의 투자전문가로 꼽힌다. 본명보다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유명하다. 투자 분석으로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전문가다. 명쾌한 논리와 유려한 문장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