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 가능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동안 세계 경제는 미국 소비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구매력에 의존해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지난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문제가 터지면서 이런 기조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는 단번에 글로벌 금융시장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문제는 단순히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을 해준 금융회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배후에는 미국 소비자들의 지갑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구실을 한 미국 주택 시장의 침체가 놓여 있다. 그동안 미국인들은 주택을 담보로 막대한 돈을 꾸어다 거침없이 써왔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그동안 미국 소비자들은 자신의 집을 현금인출기로 사용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의 집값이 연일 뜀박질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결국 상승세가 멈추면서 한순간에 상황이 급반전했다. 거품이 꺼진 것이다. 팔리지 않는 집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2008년 미국 주택 가격의 하락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미국 소비자들은 지난 30년래 가장 힘든 시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주택 재고가 소진되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찾기까지는 최소 1~2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세계 경제에 대한 낙관론도 적지 않다. 이들은 대부분 연간 1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등장한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주목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불거진 지난 8월 이후 선진국 주식시장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세계 주식시장을 끌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침체와 아시아의 부상이라는 세계 경제의 지각변동을 예상케 하는 의미심장한 변화다.세계 경제의 기축통화인 달러화는 미국의 금리 인하 추세, 미국의 주택 시장 부실 및 경상수지 적자 등의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달러는 2006년 주요 통화 대비 5%가량 평가절하됐고 이러한 추세는 2007년에도 지속돼 10%가량 추가 절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화 약세는 수출 호조로 이어져 미국의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하지만 전체적으로 2008년 미국 경제는 주택 부분의 저조 지속과 서브프라임 사태 영향, 소비 지출 증가율 감소 전망, 고유가 등의 부정적인 요인으로 인해 1.9% 전후의 낮은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경제의 회복은 중국 등 신흥시장 국가들의 견조한 성장 속에 세계 경제의 호조세가 지속된다는 것을 가정해도 2009년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유럽연합(EU)과 일본의 2008년 경제성장률은 모두 2007년에 비해 다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은 예외다. 중국 경제는 금리와 지급준비율 인상, 투자 억제, 부동산 시장 안정화 조치 등 중국 정부의 거시경제 안정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2007년 2분기 12년 만에 최고치인 11.9%(연율)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국내 소비, 투자, 수출 등 3대 수요 요인이 모두 호조세를 유지한 덕이다. 증시 호황에 따른 소비 여력의 증가, 농민에 대한 조세 부담 경감 등 각종 소비 확대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중국의 국내 소비가 15%대의 견조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2006년 하반기 이후 하향세를 보이던 고정자산 투자 역시 기업들의 투자 의욕이 여전히 높고 농촌, 중서부, 동북 지역 등 소외 지역에 대한 투자가 확대됨에 따라 다시 상승세로 전환됐다. 가공무역에 대한 제한 조치 강화, 수출에 대한 세제상의 혜택 축소 등 중국 정부의 각종 감축 노력과 위안화 환율의 지속적 하락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수출은 여전히 20% 후반대의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다.중국 경제와 미국 경제의 디커플링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 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의 흔들림 없는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제 성장이 멈춘다 하더라도 중국 경제는 내년 9% 이상의 높은 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2008년 중국 경제는 수출 증가율 둔화에 따른 성장 둔화 요인을 국내 소비와 투자의 호조로 보완하면서 경제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해외 수요의 위축을 만회하기 위해 국내 소비 진작책을 강력하게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소득수준 향상과 베이징올림픽 특수, 자산 가치 상승 등으로 2008년에도 국내 소비는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전반적으로 2008년 국제 통상 환경은 2007년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경제권의 성장 둔화는 수입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고, 보호주의적 정책 수단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또한 성장 둔화를 만회하기 위해 이들 선진국들이 수출 증진에 적극 나섬으로써 글로벌 가격 인하 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국제 유가도 불안 요인이다. 국제 원유 가격은 올 들어 급등하기 시작해 배럴당 1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제 유가의 고공 행진은 기본적으로 빠듯한 수급 상황에서 촉발됐다.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신흥 경제국들의 원유 수요는 끝을 모르고 늘어나는데 공급 확대는 극히 제한적인 상황이다. 나이지리아와 이란 등 주요 원유 수출국의 지정학적 위험 요인도 석유 공급에 차질을 불러오고 있다. 달러화 약세로 인해 투기자금이 원유 시장에 끊임없이 흘러들고 있는 점도 유가 불안을 부추긴다. 유가는 달러화 기준으로 고시되기 때문에 유로화나 엔화, 위안화 등 다른 통화를 기준으로 보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덜 오른 것처럼 보여 투기적 매수세가 더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8년 유가를 좌우할 또 하나의 변수는 세계 경제의 성장세다. 세계 경제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일 정도로 경착륙만 하지 않는다면 빠듯한 석유 수급 상황은 계속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2007년 원자재 가격 역시 거침없는 상승세를 지속했다. 금, 구리, 아연 등 주요 금속뿐만 아니라 밀 옥수수 등 곡물 가격도 연일 뜀박질했다. ‘사상 최고치 경신’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빈번했다. 저금리를 기반으로 한 세계 경제의 장기 호황이 원자재발(發) 인플레이션으로 막을 내릴 것이라는 우울한 분석도 나왔다. 2008년 전망도 긍정적이지 않다. 2007년 한 해 원자재 가격을 밀어올린 요인들이 2008년에도 기승을 부릴 확률이 높다.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