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고유가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단순한 유가급등으로 국내의 에너지 수급에 차질을 빚을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에너지절약과 자원확보 등 기존 정책을 차질 없이 이행하는 데 주력해왔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그간 논란이 돼왔던 ‘유류세 인하’가 단행되는 것 아니냐는 데 무게추가 기울고 있다.정부는 지난 25일 관계 부처와 에너지공기업 등이 참여하는 고유가대책기획단 긴급회의를 비공개로 소집했다. 조석 산자부 에너지정책기획관은 “이날 회의에서 현재 고유가는 시장의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에 따른 것으로 일시적인 상승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정부는 고유가 대응 기본방향으로 ‘유가만 상승할 경우 자율적 에너지절약 시책을 추진하고 가격급등과 국내 원유수급에 차질이 발생하면 에너지소비를 억제한다’는 원칙을 세운 바 있다. 이에 따라 현재는 ‘유가만 상승하는 단계’로 인식하고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하지만 사상 초유의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며칠 사이에 정부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그간 무작정 거부해 오기만 하던 유류세 인하문제가 최소한 검토대상에는 올랐음이 이전보다 강하게 감지되고 있다.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유가상승에 대한 대책마련을 지시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재부 장관도 17일 국정감사에서 유류세 인하요구에 대해 “국제적으로 유가가 올라갔다고 세금을 깎아주는 사례는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여야가 합의하면 생각해 보겠다”는 단서를 달은 바 있다.실제 유가가 올랐다고 세금을 깎아주는 사례가 없다는 권 부총리의 언급과 달리 정부는 국제유가의 가파른 상승세가 시작됐던 2004년 4월 유가 상승요인과 상승수준에 따른 단계별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석유수입 부과금과 관세, 내국세 인하 등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또 권 부총리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정부의 유가 관련 대책과 관련해서 “국회 여론을 수렴 중이고 세입 관련 예산 부수 법안들을 처리할 테니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국회에 공을 넘기기도 했다.따라서 100달러를 오르내리는 유가의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고유가가 항구적으로 지속되지 않아 재정 건전도를 심각하게 침해할 정도가 아니라는 전제조건이 마련되면, 이 제도를 이용해 국내의 유가충격을 줄이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만큼 관련 대책에 대한 종합검토를 벌이고 있다”라며 “유류세 인하도 검토대상”이라 밝히기도 했다.하지만 정부는 국회에서 발의한 유류세법 관련 개정안처럼 ‘영구성’을 띠기보다는 시행령 개정을 통한 ‘조건부’ 탄력세율을 도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법 개정이 필요한 법정세율 직접 인하보다는 시행령에서 허용하는 탄력세율의 최대치인 30%를 적용하는 방안이 더 수월하다는 것이다. 또 조건부 탄력세율은 일시적으로 세율을 조정할 수 있어 정부로서는 중장기 세입 확보라는 관점에서 유리하고, 올해의 세입 초과액이 11조 원으로 예측돼 재정여유도 있다. 정부는 현재도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교통세를 법정세율에서 20% 정도의 탄력세율이 적용된 505원과 358원을 부과하고 있다. LPG부탄은 275원의 특소세가 부과되고 있다. 만약 탄력세율을 시행령에서 허용하고 있는 최대치인 30%로 확대할 경우 휘발유에 붙는 교통세는 현행보다 64원 내려간 441원, 경유의 교통세는 41원 내려간 317원까지 떨어지고 LPG부탄의 특소세도 252원까지 떨어지게 된다. 전체 휘발유 가격은 13%의 인하효과가 발생한다.정부는 아울러 현재 6000억 원가량 적립돼 있는 유가완충준비금을 사용하는 것도 검토 대상에 올려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완충준비금은 유가급등으로 국가경제에 일시적인 충격이 가해졌을 때 3개월간 배럴당 9달러씩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