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신흥시장 제외한 대다수 지역의 성장률 낮춰… 미국 주택경기가 문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파문으로 야기된 신용 위기가 마침내 세계 경제 성장률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17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2%에서 4.8%로 하향 조정했다.특히 신용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와 내년 각각 1.9%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비록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에 머무는 경기 침체(recession)까지를 예견하지 않았지만 성장률이 예상보다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문제는 이런 예상이 상당히 긍정적인 가설 아래 이뤄졌다는 점이다. IMF는 “이런 전망은 앞으로 수개월 동안 시장 유동성이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자금 사정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라며 “신용 위축 현상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미국과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성장률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미국에서 신용 위축의 다른 말은 주택 경기 침체다. 신용 위기를 불러온 주범이기도 한 주택 경기 침체는 신용 위기로 더욱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은 “세계 경제의 운명은 미 주택 경기에 달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택 경기에 관한한 ‘지존’으로 꼽히는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집값 폭락으로 세계 경제는 자칫하면 지난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그렇다면 미 주택 경기 침체와 맞물린 세계 경제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IMF는 지난 7월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는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각각 5.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의 5.4% 성장에 이어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 셈이다.그 뒤 석 달 만에 전망치를 수정했다. IMF로서는 일종의 치욕이지만 서브프라임 파문이란 사건이 돌출, 전망치를 수정해야 했다. IMF는 올해의 경우 당초 전망대로 5.2% 성장률을 기록하겠지만 내년 성장률은 4.8%로 당초 전망치(5.2%)보다 0.4%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근인은 역시 서브프라임 파문이요, 그에 따른 신용 위기다. 이에 따른 충격은 올해보다 내년, 신흥시장 국가보다 선진국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IMF의 전망이다. IMF는 구체적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 30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8%에서 2.2%로 0.6%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 국가는 7.4%로 비교적 높은 성장세를 구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IMF의 당초 전망치(7.6%)보다 0.2%포인트 낮아진 것이다.서브프라임 파문의 진원지인 미국의 타격이 상당할 것이란 게 IMF의 전망이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은 각각 1.9%에 그칠 것이라는 것. 특히 내년 성장률은 당초 2.8%에서 0.9%포인트나 낮춰 잡았다. 그만큼 미국 경제는 내년에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유로존의 경우에도 성장률이 올 2.5%에서 내년엔 2.1%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도 올해와 내년 각각 2.0%와 1.7%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IMF는 이에 비해 신흥시장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의 올 성장률은 당초 예상보다 0.3%포인트 높은 11.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내년 성장률은 10.0%로 다소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싱가포르 홍콩 한국 대만 등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4개 나라가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을 것이란 게 IMF의 예상이다. 이들 4개국의 내년 성장률은 4.4%로 지난 7월 전망치(4.8%)보다 0.4%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그렇지만 한국의 경우 제조업 경기가 전반적으로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어 성장률을 소폭 상향 조정했다. 올 성장률은 당초 4.4%에서 4.8%로, 내년 성장률은 4.4%에서 4.6%로 각각 높여 잡았다.IMF가 세계 경제성장률을 낮춰 잡은 것은 역시 신용 위기 때문이다. IMF는 “신용 위축 현상이 주택 시장에 대한 영향 등을 통해 미국과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용 위기가 경제에 영향을 주는 매개로 주택 경기를 적시한 셈이다.미 전문가들은 신용 위기보다 주택 경기 침체가 더 무섭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신용 위기도 무섭다. 돈이 돌지 않는 만큼 경제를 한순간에 마비 상태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환부를 도려내고 수술을 하면 극복할 수 있다. 지난 8월 최악의 신용 위기에 빠졌던 금융시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FRB가 유동성 공급과 금리 인하란 처방을 내린 덕분이다.주택 경기는 다르다. 일단 침체에 빠지면 살려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주택 경기는 소비와 고용에 직결돼 있다. 집값 하락에 따른 ‘역(逆)부의 효과(reverse wealth effect)’는 소비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홈에쿼티론(home equity loan)’이 유행한다. 집값이 오른 만큼 쓸 수 있는 한도가 늘어나는 대출이다. 집값이 내리면 문제다. 당장 현찰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모기지를 갚지 못해 압류당하는 집이 올해만 80만 채에 달할 것을 감안하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산술적으로도 그렇다. 현재 미 주택 자산 규모는 23조 달러에 달한다. 집값이 10%만 내려도 2조3000억 달러가 날아간다. 다른 부분에서 충당되지 않는 한 소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소비는 미 경제 성장에서 70%를 차지한다. 소비가 둔화되면 경제에 치명적이다.이뿐만 아니다. 집이 팔리지 않으면 집을 짓지 않는다. 주택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건 당연지사. 주택 건설 재료를 만드는 업종도 쉬어야 한다. 모기지 등 관련 업종도 파리를 날릴 수밖에 없다. 이는 감원으로 이어져 고용에 불안을 야기한다. 모기지 업종의 경우 이미 1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특히 미국 전체 일자리 8개 중 1개는 주택 업종과 관련돼 있다. 이러다 보니 주택 경기 침체로 줄잡아 1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고용 불안은 소비 둔화로 이어지고 결국 경제에 주름살을 드리울 수밖에 없다.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미국 경제는 고통을 받는다.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가량이다. 미국 경제가 재채기하면 상당수 나라가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다 보니 세계 경제는 미 주택 경기에 달렸다는 얘기가 나온다.최근 발표되는 주택 경기 관련 지표는 말 그대로 엉망이다. 도무지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태라면 일부가 우려하는 경기 침체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런데도 주가는 강세다. 골드만삭스는 올 S&P500지수가 1600을 기록하는 강세장을 예견하기도 했다.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희망론’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 증시가 강세를 보이지만 모든 주식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일정한 경향이 발견된다. 강세를 보이는 주식은 미 내수 비중보다 해외 비중이 높은 기업, 경기 침체에도 견딜만한 여력이 있는 대기업, 음식료 약품 등 경기를 덜 타는 업종이 주로 오른다. 반면 자동차나 주택 관련 업종, 중소기업의 주가는 아직도 비실비실 그 상태다. 금리 인하로 돈은 풀렸는데 주택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갈 데라곤 증시밖에 없다. 증시로 가는데 위험한 종목을 꺼리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결국 미 경제의 구원투수로 기댈 수 있는 건 현재로선 해외 경기다.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경기가 괜찮다 보니 해외 매출이 많은 다국적기업의 실적은 양호하다.이런 현상은 3분기 실적 시즌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만일 기업 실적이 해외 매출에다 달러화 약세 덕분으로 호조를 보인다면 주택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희망론’의 근거다.물론 이 희망론이 얼마나 득세할지는 아직 모른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이나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한목소리로 “현재 미국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주택 경기”라고 경고하고 있는 걸 보면 주택 경기 침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따라서 앞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을 보려면 당분간 미 주택 경기를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하영춘·한국경제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