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에 들어설 삼성타운 3개 건물 중 하나인 C동. 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입구에 들어서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바닥과 벽, 천장이 새하얀 빛을 내뿜는다. 그 끝에 놓인 하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안내 직원의 모습이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상담실은 최고급 호텔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고급스럽다. 각각의 방들이 서로 다른 콘셉트로 꾸며진 것이 특징이다.이곳은 지난 9월 17일 삼성생명 FP센터 강남점이 새로 이전한 곳이다. A, B동은 아직 공사가 한창이지만 C동은 올 5월에 입주를 시작했다. 선릉역에 있던 강남 FP센터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삼성생명은 거액을 들여 첨단 건물과 어울리도록 내부를 꾸몄다. 최근 PB센터들이 경쟁적으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미고 있지만 이들보다 더 공을 들인 것이 감지된다. “아무래도 거액 자산가들이 고객이다 보니 최고급 호텔 수준으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성재준 FP센터 지원파트장의 얘기다.‘투자 대비 효과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전국의 삼성생명 FP센터를 관할하고 있는 신성욱 상무는 “시설보다 우리가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들여다보면 그런 의문이 더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접적인 이익보다는 고객과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비전이라고 봐야지요”라는 말했다. 삼성생명은 강남센터 외에도 강북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FP센터를 두고 있다. 조만간 수원 센터를 오픈할 예정이다.생명보험사는 전통적으로 FP(파이낸셜 플래너-보험설계사, 생활설계사로 부르다 요즘은 FP로 부른다) 개개인의 영업력에 의존하고 있어 VIP 고객도 FP들이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VIP 고객을 많이 확보한 FP일수록 ‘보험왕’이 될 가능성도 높다. 생명보험사가 PB센터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삼성생명이 2002년 10월 처음으로 PB센터를 만든 데 이어 2005년 교보생명과 대한생명이 PB센터를 연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설문에서도 생명보험사들 중 자사에 PB센터가 없다는 이유로 설문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설문 결과도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 미래에셋생명에 집중돼 있다.그러나 최근 생명보험사 FP의 역할이 보험 판매에서 종합적인 자산 관리로 넓어지면서 고객의 복잡 다양한 요구를 소화하기 위한 전문 인력의 필요성이 늘어났다. FP가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생기면 고객을 FP센터로 데리고 와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일종의 FP ‘지원’ 센터인 셈이다.정확한 기준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센터로 오는 고객들의 자산은 대략 50억 원 이상이다. “강남에서 웬만한 집 한 채만 갖고 있어도 20억~30억 원이 됩니다. 거기에 금융자산이나 다른 부동산을 합하면 그 정도가 되지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하 규모는 지점 인력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센터로 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신성욱 상무의 말이다.굳이 상담과 보험 판매를 연결하지 않는 것도 영업 비결이다. “고객들이 처음에는 의심을 많이 합니다. 10명 예약하면 7명 정도가 실제로 방문하는데, 한 번 방문한 고객이 다시 찾는 비율은 100%입니다. 자신들의 가려운 부분을 해결해 주는 데다 상품 판매를 강요하지 않으니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주 찾아오다 보니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미안한 마음에 보험 상품에 가입하겠다는 고객이 많습니다.” 강남 FP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김종완 팀장은 이런 점이 은행이나 증권사 PB센터와 차별화되는 점이라고 설명한다.“은행이나 증권사의 상품은 단기성인데 비해 생명보험사는 생애 전체를 장기적으로 보기 때문에 단기 상품 판매보다는 고객의 생애에 맞춘 재무 컨설팅이 가능한 것입니다. 수십억 원 이상의 자산가들은 자산의 증식보다는 자산의 이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10년에서 3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손자, 손녀까지 3세대에 걸친 자산 이전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문제점이 나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김 팀장이 들려준 사례 하나. 제조업 및 임대업 법인을 4개 가지고 있는 한 60대 개인 사업자의 총 자산은 1000억 원이다. 그가 당장 사망할 경우 배우자 공제를 제외하더라도 470억 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그에 대한 해결책은 굉장히 복잡하지만 일례를 들면, 한 사업체의 공장을 정리하고 건물을 지어 임대업을 할 경우 세금이 달라진다. 제조업을 하는 ‘중소기업’일 때보다 임대 소득이 2분의 1이 넘는 ‘일반 기업’일 때는 평가 가치도 달라질뿐더러 양도 차익도 2배나 늘어난다. 그럴 때는 중소기업으로 지정돼 있을 때 자녀에게 양도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독자적으로 개발한 SAPS(Samsung Advisors Plannning System) 프로그램을 통해 투자, 상속, 증여, 은퇴, 생애, 토털 재무 설계의 6개 부문에 걸친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국세청 출신의 세무 전문가, 7년 경력 이상의 부동산 전문가, 5년 이상의 투자 전문가들을 영입했고 유명 로펌의 변호사가 상주해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현재 삼성생명 FP센터는 6개 센터에 상주하는 전문 FP 31명, 영업소 지원 인력인 PM(플래닝 매니저) 68명의 총 99명의 인력이 1만6000명의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수익보다 새로운 트렌드 정착이 목적’신성욱 상무는 미국의 푸르덴셜 생명보험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뒤 올해 4월부터 삼성생명에 영입돼 전국 6개의 FP센터를 책임지고 있다. 강남센터 확장 이전과 수원센터 오픈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새로 이전한 강남 센터의 시설이 좋아 보입니다.강남이 아무래도 국내 상권의 중심이자 가장 바삐 움직이는 곳이다 보니 새로운 트렌드에 부응하기 위해 신경을 좀 썼습니다. 벤치마킹하기 위해 다닌 곳도 많습니다.센터장이 되신 후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까.고객 분류(Customer Segmentation)를 통한 맞춤식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 중입니다. 예전엔 좀 제너럴(일반적)하게 했다면 의사, 변호사,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대기업 임원 등 직종에 맞춰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재무 설계를 하도록 할 것입니다. 또 플래너들의 수준 향상을 위해 투자 상담사, 공인중개사,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등의 자격증을 따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FP센터 운영이 직접적인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아 보입니다.은행과 증권사는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의 재무 설계를 해주지 못합니다. 삼성생명 FP센터에서는 무료입니다만, 미국에서는 일반인들이 재무 설계를 위해 돈을 주고 상담을 받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것들이 정착돼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업계 1위의 회사다 보니 수익보다는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겠다는 목적이 더 큽니다.영업에는 도움이 됩니까.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군인, 경제인, 교수 등의 단체와 특급호텔의 VIP 멤버십 클럽 등을 대상으로 강연도 많이 합니다. 무엇보다 입소문이 돌면서 찾아오는 고객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편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을 제공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탈세와 절세를 구분해야 합니다. 법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세금을 절약하자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요. 부자들은 재산 증식보다는 재산 이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상속세, 증여세 등 세금은 부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만큼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