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같아도 가치는 천양지차…과거 유사성보다 차이를 살펴야

잘 알려진 몇 가지 패러독스들은 우리가 간단히 무시했던 이야기들의 이면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면 ‘온 나라가 아들을 갖기 위해 남아를 낳을 때까지 출산을 하고, 남아를 낳으면 더 이상의 출산을 하지 않는 계획 출산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그 나라의 남녀 성비는 남자가 많아질 것이다’라는 말은 거짓이다.언뜻 생각하면 분명히 남아가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이다. 실제로는 첫 번째 출산에서 남아와 여아의 확률은 반반이고, 남아를 낳은 집에서 더 이상의 출산을 하지 않고 여아를 낳은 집만 추가 출산을 한다고 가정해도 결국 첫 세대는 남녀가 반반이 되고, 첫 번째 여아를 낳은 다음 세대의 출산 확률도 역시 반반이다. 즉, 남녀의 성비는 인위적으로 중절 수술을 통해 정해진 성비를 파괴하지 않는 한 자연 상태에서 확률은 늘 반반이 된다.이런 패러독스도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장남이 많다’라는 말은 일견 사실로 보인다. 고흐도 장남이고, 모네도 장남이며, 유명 미술가들의 상당수는 장남이다. 이것은 편견이 아니다. 실제 조사를 해봐도 그렇다.이 명제에서 역설은 바로 원래 사람은 장남이 많다는 전제를 무시한 것이다. 아이가 한 명인 집안에도 장남은 있고, 둘인 집에도 장남이 있으며, 셋인 집에서도 장남은 있다. 즉 차남과 3남, 4남은 점점 그 비율이 줄어들지만, 장남은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위대한 예술가 중에는 장남이 많은 것이다. ‘살인자 중에는 장남이 많다’ ‘위대한 현인은 장남이 많다’라는 명제들은 모든 전제가 다 참의 값을 가지는 것이다.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역설의 포로가 되어 있다. 그만큼 인간은 속기 쉬운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의 경험칙을 바탕으로 얼추 비슷한 조건을 가진 전제들은 모두 같은 결과를 가질 것이라는 착각과 오해를 하며 살아간다.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설득할 때 그가 겪었던 가장 유사한 상황을 떠올리게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단하게 하지만 사실 그 과정은 이미 ‘오해’라는 복선을 깔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역설적 편견이나 오해들을 벗어나 올바른 가치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늘 새롭게, 늘 다시, 늘 깐깐하게 상황을 살피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주식시장에서도 이런 이치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기술적 분석가들의 핵심 주장은 ‘과거에도 이랬으므로, 미래에도 이럴 것이다’라는 말이다. 가격의 패턴을 분석하고 가격의 추세를 살피면서 ‘예전에 이런 모양을 갖췄을 경우에는 주가가 올랐다거나 과거에 이런 형태를 취했을 때는 주가가 내렸다’라는 것을 전제로 미래에도 그런 움직임이 재현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사실 많은 일반 투자자들이 속고 있는 기술적 분석의 오류가 바로 이런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한 말은 바로 이 점을 간파한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 강은 그대로이고, 흐르는 강물은 어제도 오늘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어제 흘렀던 강물은 이미 바다로 흘러갔으며 지금 내가 발을 담그는 강물은 어제 산꼭대기에서 만들어져 흘러 온 새로운 강물이기 때문이다.주가를 살피는 이치도 그렇다. 같은 주식이 같은 가격대라고 해서 그 주식의 가치는 같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2년 전에 10만 원인 주식이 2만 원이 되었다가 오늘 다시 10만 원이 된 경우 이 두 주식의 가치는 같지 않다.2년 전에 10만 원인 이 주식은 당시 자산 가치가 주목을 받아서 그 가격대였다면 지금 10만 원인 동일 주식은 이익이 많이 나서, 성장성이 높아서, 혹은 놀라운 재료가 있어서 그 가격의 평가를 받는 것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주가지수 1000과 지난해의 1000은 다르고, 8월의 2000과 10월의 2000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이 때문에 우리가 단순히 두 개의 가격을 두고 작대기를 그어서(예를 들면 추세선 작도), 상승 추세대를 이탈했다라고 판단하건 혹은 2만 원과 10만 원의 양 가격대에 평행선을 그어서 박스라고 말하건 이미 그 전제는 틀렸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식 투자에서 가격을 두고 과거의 가격과 지금의 가격을 비교하는 방식, 혹은 과거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오르고 내리는 운동성)의 유사성을 찾으려는 방식이나 생각들은 2년 전과 지금, 유동성과 부동산 시장 세계 경제와 경기 등이 완벽하게 같고, 심지어는 그때와 같은 투자자들이 같은 자금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동일한 상황이 아니라는 전제를 무시하는 것이다.결국은 우리가 주식을 평가하고 그 가격을 매기는 행위에서 몇 가지 유사성만을 가지고 과거의 가격과 비교해서 지금 가격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과거 알려진 기술적 접근법은 모두 ‘참이 아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마찬가지다. 가치의 기준이 자산일 수도, 보이지 않는 영업력일 수도, 혹은 당시 세계 경기와 무역의 상황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므로 자산 가치나 기타 가치를 단순 비교해서 싸다 비싸다를 결정하는 것은 오류일 공산이 크다.이렇듯 우리는 가격을 평가할 때 이미 역설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변수 요인이 고정적이고 변수 값의 변화만 대입하면 얼추 비슷하게 가격을 평가할 수 있는 기업 분석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믿고 있는 대박의 황금률들은 모두 부질없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그렇다면 이런 식의 가격 분석에만 역설이 존재할까를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아니오’가 정확한 답이다. 예를 들어 금융 공황이나 주가의 급락을 이끌어낸 소위 ‘블랙 데이’들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발생할 때마다 예외 없이 반복돼 왔으므로 지금처럼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금융 공황의 위험이 크다는 논리도, 그 당시 신흥시장의 상황이나 세계정세가 다르고 미국의 적자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설령 당장 공황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이유에서 온 우연일 뿐, 이 주장이 말하는 것처럼 쌍둥이 적자가 공황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주가수익률(PER)이 평균 30배에 이르고 종목별로는 100배를 넘기는 종목이 수두룩하다는 관점에서 거품이라는 주장도, 중국 기업의 실적 호전이 워낙 빨라서 금세 고평가된 PER를 따라잡을 것이므로 거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이럴 바에야 지극히 단순한 핵심 변수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들어 가격 구성의 기본 원리는 수요와 공급이다. 이 논리는 그 어떤 현학적인 주장보다 시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려는 돈이 넘치면 가격은 오르고, 팔리는 물건이 적으면 가격이 오른다. 반대로 가격이 비싸지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있는 상품은 적어지고, 또 공급량이 많아지면 아무리 유동성이 커져도 가격은 하락한다.같은 관점에서 중국의 무역 흑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현재 상황에서는 가격이 오른 중국의 주식이 정당화될 수 있으나 중국의 물가가 한 해 20%씩 오르고 인플레가 생기면 상대방 시장의 구매력이 약해지고 주식의 가격은 하락한다. 게다가 주식의 가격마저 비싸진 상황이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지금 중국 시장이 거품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의미가 없지만, 앞으로도 중국 주식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장의 논리다.‘시골의사’ 박경철현직 외과의사이자 국내 최고의 투자전문가로 꼽힌다. 본명보다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유명하다. 투자 분석으로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전문가다. 명쾌한 논리와 유려한 문장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