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철이 일상생활에 폭넓게 쓰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골칫거리가 등장했다. 바로 철이 벌겋게 부식되는 현상인 녹이다. 우리가 쓰는 철은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산화물 광석(철광석)으로부터 산소를 강제로 떼어내고 얻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 산화물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 공기(산소) 중에 노출되거나 물을 만나면 쉽게 산화물로 되돌아가 버린다. 이것이 바로 녹이 스는 현상이다.녹은 신소재로 등장한 철 보급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1889년 에펠탑 건립 이후 각종 철 구조물이 건립되기 시작했지만, 유지 보수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당시 녹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철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페인트칠은 부식을 지연시킬 뿐 근본적인 방책은 되지 못했다. 더구나 페인트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벗겨내고 칠을 다시 해주어야만 했다. 유지 보수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칼, 그릇 등 주방 용품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했다. 철제 부엌 용품은 쉽게 녹이 슬어 주부들에게 외면 받았다.20세기 초 스테인리스 스틸의 발명으로 이런 문제는 말끔히 사라졌다. 철의 첫 번째 진화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탄생은 사소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영국의 한 제강회사 연구원이 어느 날 폐철 더미에서 반짝이는 쇳조각을 발견했다. 철과 크롬을 합금하다 실패해 버린 쇳조각이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 비가 내렸는데도 이 쇳조각은 녹슬지 않고 깨끗한 상태였다. 이 연구원은 몇 차례 실험을 통해 크롬을 13% 함유한 강철이 잘 부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후 크롬 말고도 니켈 등을 다양하게 합금하는 실험이 행해졌고, 그 결과 여러 종류의 스테인리스 스틸이 탄생했다.내구성이 강하면서도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스틸은 주방 용품의 혁명을 가져왔다. 값비싼 은 식기와 무겁고 쉽게 녹스는 놋쇠 식기를 스테인리스 스틸 식기가 빠르게 대체한 것이다. 최근에는 질소, 몰리브덴, 구리를 첨가해 소금물, 염산, 황산 등에 강한 ‘슈퍼 스테인리스 스틸’이 개발됐다. 또한 구리 함유량을 늘린 항균 스테인리스 스틸도 개발되고 있다.‘무도장 내후성강’의 등장으로 대형 철 구조물의 녹 문제도 해결됐다. 파주 출판단지의 출판문화센터와 서울에서 양평으로 가는 길에 건설된 용담대교의 상판은 언뜻 보면 벌겋게 녹이 슬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최근 친환경 소재로 각광 받고 있는 무도장 내후성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무도장 내후성강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도 대기 중에서 부식에 견디는 철’이라는 뜻이다. 철에 구리, 크롬, 니켈 등의 합금 성분을 첨가해 부식에 견디는 성질을 강화한 소재로, 1~2년이 지나면 표면에 녹이 생기지만 그 안에 치밀한 안정 녹층이 형성돼 부식을 유발하는 물이나 산소가 스며드는 것을 억제한다. 이 소재를 사용하면 처음부터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유지 관리 비용이 대폭 절감되고, 페인트로 인한 오염을 막을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표면이 자연스럽게 불그스름한 암갈색으로 변해 미적으로도 뛰어나다.형상기억합금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흥미로운 금속에 속한다. 주인의 체형을 기억하는 속옷에서부터 날씨가 더워지면 자동으로 말려 올라가는 셔츠,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언제든 원상회복이 가능한 자동차까지 형상기억합금은 이 모든 상상을 현실 속에서 가능하게 해준다. 현재까지 형상기억 효과가 확인된 합금은 20여 가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니켈과 티타늄을 절반씩 섞어 만드는 니티놀과 구리, 아연, 알루미늄 합금이다. 하지만 이들은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형상기억합금의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는 철계 합금의 실용화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일반적인 금속은 탄성 한계를 넘어선 변형이 가해지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지 않지만, 형상기억합금은 특정 조건만 만족되면 원래의 형상을 기억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형상기억합금의 비밀은 바로 원자의 배열 구조에 있다. 보통 금속은 구부리거나 늘리거나 열을 가해도 원자 배열이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형상기억합금은 온도를 높이거나 냉각하면 배열 자체가 바뀐다. 고온에서는 강철을 담금질할 때 형성되는 조직 구조의 일종인 ‘오스테나이트상’이라는 원자 배열 구조를 갖지만, 냉각하면 ‘마르텐사이트상’으로 변화한다.형상을 기억시키는 과정은 이렇다. 마르텐사이트상 상태일 때는 변형이 가능하므로 이때 원하는 형태를 만든 뒤, 고온을 가열해 오스테나이트상으로 그 모양을 기억시킨다. 그러면 이후 어떤 변형을 가하더라도 열만 가해주면 항상 오스테나이트상으로 돌아와 원래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형상기억합금의 이런 특성은 1969년 인류 최초의 달 착륙 탐사선 아폴로 11호에 사용된 형상기억합금 안테나에서 잘 확인된다. 니티놀로 위성 안테나를 만든 뒤 특정 온도에서 가열하면 이 모양이 그대로 기억된다. 이 안테나는 일상 온도에서는 뭉쳐놓거나 찌그러뜨려도 그대로 있지만, 특정 온도 이상으로 열을 가하면 어느새 위성 안테나의 모습으로 복원된다. 이로 인해 위성 안테나의 부피를 크게 줄일 수 있게 된다.이 밖에도 형상기억합금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일반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여성용 ‘메모리 브라 와이어’다.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이 제품은 피부에 닿으면 체온에 의해 처음 모양으로 복원되기 때문에, 세탁 때마다 브래지어 와이어가 휘고 구부러져 고민하던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개발한 블루투스 헤드셋(SBH170)은 형상기억합금을 활용해 밴드 부위가 목 뒤쪽에 밀착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말아서 접으면 손 안에 쏙 들어가는 크기가 된다. 밴드를 강제로 휘거나 구겨 접어도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최근 주목받는 새로운 활용 분야는 바이오 분야다. 형상기억합금은 원래 형상으로 회복할 때 큰 힘이 발생한다. 이런 현상을 이용해 기계 부품을 죄거나, 체온에 의해 치아를 단단히 묶어주는 치열 교정용 와이어에 사용되기도 한다. 게다가 형상기억합금은 인체 친화성이 높고 초탄성, 흡진성 등 인체 조직과 유사한 성질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철은 미래의 에너지원으로도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5년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는 철과 알루미늄, 붕소 등 금속 재료를 자동차 연료로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금속을 자동차 연로로 쓴다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금속에 불을 붙인다고 휘발유처럼 연소가 될 수 있을까. 금속을 먼지 크기로 잘게 부수면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금속 분말은 접촉 면적이 넓어져 산소와 결합해 쉽게 폭발을 일으킨다. 더구나 금속 연료는 같은 양의 휘발유나 디젤보다 열효율이 더 뛰어나다. 과학자들은 금속 연료 33리터면 휘발유나 디젤 50리터로 갈 수 있는 거리를 충분히 달릴 수 있다고 분석한다.금속 연료의 위력은 우주왕복선 발사 광경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주왕복선이 발사될 때 로켓에서 엄청난 양의 하얀 구름이 내뿜어져 나온다. 흔히 이 구름을 연료가 연소될 때 발생하는 연기나 가스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로켓의 연료에 포함된 알루미늄 분말이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알루미나라고 불리는 하얀색의 산화알루미늄 가루다. 로켓 연료에 알루미늄을 첨가하면 비추력이 10~20% 정도 향상된다.물론 금속 가루를 차량 연료로 실용화하려면 몇 가지 기술적인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우선 철을 산소와 결합시켜 활발하게 태우려면 섭씨 2000도 이상의 열로 뜨겁게 데워줘야 한다. 내부 온도가 수백 도에 불과한 자동차 엔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연료가 타고 난 뒤 남는 재도 골칫거리다.하지만 나노 기술의 발전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철가루를 머리카락 1000분의 1 굵기(50 나노미터)로 작게 만들면 섭씨 250도의 낮은 온도에서도 쉽게 탄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부피에 비해 공기와 접촉하는 면이 상대적으로 넓은 나노 철 입자는 같은 시간과 온도에서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철 입자보다 산소와 더 쉽게 반응한다. 게다가 나노 철은 연소 뒤 남는 재가 거의 없고, 산화 환원 과정을 통해 언제든 연료로 다시 만들 수도 있다. 최근에는 나노 철 입자가 충분히 탈 수 있도록 연소 시간을 늘리기 위해 입자를 ‘클러스트’로 만드는 기술도 개발됐다.같은 양으로 환산했을 때 알루미늄은 철의 4배, 붕소는 철의 6배 이상 에너지를 방출한다. 하지만 철은 가격이 알루미늄의 15분의 1, 붕소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그만큼 저렴한 에너지원이다. 또 같은 양의 철은 무공해 에너지로 주목받는 수소보다 12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다.철광석에서 철을 생산해 내는 제철법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지난 2003년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은 기존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제철법을 개발해 냈다. 전기 오븐에서 사용되는 마이크로미터파(파장이 100만 분의 1m)를 철광석에 쏘아 ‘뻥튀기’식으로 철강을 만드는 획기적인 방식이다. 강력한 마이크로파를 철광석에 쏘아 불과 몇 분 만에 섭씨 1000도까지 데워 철로 바꾸는 것이다. 이 방식은 열을 계속해서 빼앗기는 고로와 달리 짧은 시간에 높은 열을 내기 때문에 열효율이 훨씬 뛰어나다. 특히 고로를 가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이 없어 친환경적이다.또한 값비싼 코크스 대신 석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연구팀은 마이크로미터파를 이용한 제철법을 실용화하면 철강 생산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강도를 더 높인 첨단 철강 강화 제품도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철강 업체는 기존 철판보다 강도가 무려 11배 강한 철강 강화 소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소재는 구부리거나 펴기 쉬워 이미 완성된 차양이나 완공된 건물 등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건축회사는 이 소재를 이용해 워싱턴에 일명 ‘테러리스트의 목표’로 불리는 건물을 완공했다. 탄소 나노 섬유와 섞은 이 보강재는 건물 안에서 폭탄이 터져도 주변으로 충격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 준다.이 밖에도 기계 장치의 표면에 부착돼 진동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제진합금, 섭씨 700~1000도의 고온에도 견딜 수 있어 제트엔진용 부품에 쓰이는 내열합금, 수소를 흡수했다가 가열하면 수소를 방출하는 수소저장합금 등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철의 진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취재=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